私心을 표면적 의미로 이해하자면 私心을 갖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私心은 대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정도로 이해되어서 대개 공적인 일이나 혹은 아주 사사롭지 않은 경우나 관계에 개인적 욕심, 이해를 관찰하려는 상황을 서술하는데 사용된다. 私心이 개입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불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심지어 私心을 품은 그 당사자 스스로도 확인해 줄 수 없을 때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받고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하소연 하는 사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허나 지금껏 살아 오면서 경험한 바로 사람들은 사사로운 마음을 분별해 내는 기가 막힌 센서를 가지고 있다. 언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우리가 자주 '感'이라고 하는 그런... 굳이 '사심'은 아니지만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경우도 그러해서, 대개 '사심'이 개입되었거나 '집착'하는 경우 오히려 일을 그르칠 경우가 많다. 동서고금 그래서 고만고만한 격언들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지 않은가. 충무공의 生卽死 死卽生가 유명하지만, 수천년 전에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남겼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 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5). 남녀관계, 인간관계에서도 이 '법칙'이 통해서, "백번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정신이 통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대개는 붙잡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선 정치인이 私心없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권력'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보다는 정치가 싫다고 - 그 정치가 무엇이든 - 손사래를 치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기어코 붙잡아서 후보로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화하긴 힘들어서 우리는 대통령직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던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선생을 뽑기도 했고,'정치'를 잘 모른다는 2mb를 (앞으론 소문자로 쓰기로 했다. 대문자도 과분하다) 뽑기도 했다 (2mb를 뽑았을 때는 그의 노골적인 '정치 혐오증' 표출이 분명 도움이 되었으리라). 현대사회에선 私心이 제도화되어서, 예를 들어, 정치권력, 경제력을 추구하는 행동을 더 이상 私心있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 마련된 틀 안에서 '놀기만 한다면'. 그러니까 私心이란 의미론의 의미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달리 이해될 필요가 있다. 원래는 사적영역에 대한 얘기를 할 생각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현대사회' 운운하게 되었는데 (직업병!)... 어쨌든 私心을 갖지 않으려고 애쓸 일이다. 자유인의 필수 덕목이다. 私心이 있을 때 거리낌, 거리감이 생기고, 이런 저런 군말들에 신경쓰게 된다.
덧글: 私心을 갖는다는 건, '잔머리를 굴린다'고 얘기하는 그런 상황에 연결되는 것 같다. 차이가 있을텐데, 그게 무엇일까? 좀 더 생각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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