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 오른 생각을 잃기 아까워서 크게 마음이 동하진 않지만 숙제하는 마음으로 써 본다. 아침부터...
하나는 이명박 정부 성격 논경,'독재'에 대하여...
특별히 찾아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 언론을 들추다 보면 자연스럽게 접하는 내용들이다. 그 중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는 두 글만 특별히 적어 두기로 한다.
우상호: 왜 독재라는 말이 나올까
김원: 다시 ‘독재’를 생각한다. 김대중-노무현 때도 비슷…추모 머문 대안의 후퇴
우상호의 주장은:
흔히 독재냐 아니냐를 따질 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느냐, 그리고 비판세력, 반대세력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판단한다. 어느 나라의 독재자도 자기 지지세력을 괴롭히거나 탄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법에 의한 통치는 독재적 행태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다. 독재자들은 다 법을 이용한다. 기존 법으로 반대세력의 입과 발에 재갈을 물리다가, 해당 법규정이 없으면 황당한 법(가령 마스크 금지법, 무차별 도청법 등)을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전두환 정권 때 감옥 간 수많은 민주인사들도 다 법의 심판을 받았다. 사형선고를 받고 숨진 인혁당 사건 관계자들도 다 법에 의해 끌려간 것이다. 무리한 수사와 고문, 정권의 눈치를 본 사형선고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법에 의한 지배가 독재가 아니라는 주장은 몰역사적인 주장이다. (...)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규정하는 데에는 아직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후퇴 수준이 과거의 독재적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금의 국정운영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이명박 정권은 점점 더 헤어날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틀린 얘긴 분명 아닌데 좀 뭐가 많이 빠진 듯하다. 시원한 분석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그렇담 김원의 얘기는 어떤가?
그럼 '독재'란 무엇일까? 담론 수준에서 독재는 '군부지배', '일당-일인의 전횡적 통치', '억압적 통치' 등이 아닐까? 요즘 보수정당이나 일부에서 자주 쓰는 '소통의 부재'란 아마도 시민사회와 반대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부와 다수 여당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
되돌이켜 보면 이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기에는 소통이 잘 이루어졌나 질문하면 그 역시 아니다. 포퓰리즘적 통치에 기초한 정당제와 대의제의 약화는 2000년대 내내 지속된 현상이다. 그래서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고 비판했고, 시민들에게 지적인 충격을 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
MB정권은 이전 정권에 비해 공권력으로 상징되는 억압적 국가기구의 사용이 잦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강력하다 등이 이를 보여주는 주된 현상들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 정권에도 사회운동 등에 대한 탄압은 존재했고, 억압적 국가기구도 작동했다. 불안정노동, 구조조정, 노사관계로드맵 등을 기억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을 뿐이다. 물론 억압적 국가기구 작동이 이전보다 노골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독재라고 부르는 근거는 아니다.
(...) '대안'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재를 부르는 순간, 그 대안은 민주주의가 되고, 대안-담론 수준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 소통의 원활 등으로 좁혀진다. 다시 1987년 수준의 민주주의로 회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독재라는 담론을 사용하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 담론 수준에서 독재에 대항해 투쟁하자고 대중들에게 외치면, 대중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고, 그 민주주의는 87년 제8차 개헌에서 규정한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즉 민주주의의 계급성이 아주 쉽게 망각된다는 것이다. 지금 운위되는 민주주의는 이른바 독점자본의 정치적 외피로서 민주주의이다. 그 외피에 상처를 내는 반동적 부르주아지들의 지배에 대항하자는 것이 현재 시점이다. (...)
현재 억압적 국가기구의 작동은 '독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가 총자본의 장기적 정치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타난 상황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국선언이 확대되는 와중에 '시민사회는 독재에 맞서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는 이념적인 면에서나, 조직적인 면에서 분화가 공고화된 상태이다. 지금 시국선언은 시민사회내 MB정권의 공권력의 과잉 사용과 시민사회내 이익매개 기능의 단절을 비판하며 나온 - 모두가 아니지만 적어도 최대 반대연합이란 의미에서 -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재와 소통의 부재라는 현실 진단은 매우 제한적이고 현재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을 스스로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안이 퇴영적인 만큼 설득력을 시민사회에서 좀 더 넓게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혹자는 87년 6월 이전을 회고하며, '좀 더 대중적인 슬로건'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별로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내 존재하는 대항세력의 입지를 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옛 민주당 대변인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단상'에 비하면 훨씬 던 시원한 분석이다. 역시 '레디앙'에 실린 글 답게 결론이 과격하다. 결국, "국가가 총자본의 장기적 정치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율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나타난" 아주 "자연스러운 작동"인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고작 87년으로 회귀하는 소극적 대안 제시를 못마땅하면서 자본제적 질서를 뿌리째 뒤집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도 또 언제적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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