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우파 대중운동

오늘 프레시안에 실린 손호철 교수의 칼럼이 요즘 생각하던 바를 제대로 건드리고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1922년 로마. 검은 제목에 흰 완장을 찬 군중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역사를 암흑으로 몰고 갔다. 역사적인 파시스트 대중운동이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대중운동이 파시즘을 규정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인가는 논쟁적이다. 파시즘을 1930년대 대공황기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몰락한 중산층과 룸펜플로레타리아트 등 광범위한 대중적인 지지와 동원에 기초한 독재체제로 이해하는 일반적 방식에 비해 파시즘의 등장은 위로부터의 쿠데타 등 다양하며 대공황기에 남유럽과 동유럽 등 세계자본주의의 반주변부 전반에 생겨났던 체제로 인식하는 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문제의식에 기초해 일부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은 1980년대 피노체트 정권, 브라질 군사정권 등을 대중운동과 대중적 지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종속적) 파시즘이라고 주장했고 국내 학계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채택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종속적) 파시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시즘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던,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극우적 대중운동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역사의 가장 비극적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이와 관련,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의 경제공황과 관련해 국가폭력의 증가와는 별개로 독일과 같은 파시즘적인 대중운동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3월 출범한 애국기동단이다. 해병대 구국결사대, 여군 전우회, 특별경호단 등으로 구성된 이 민간 극우조직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진실, 정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며 "종북반역 세력을 공동체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는 섬뜩한 선서를 했다.

그리고 이들 애국기동단과 고엽제전우회 회원 40여명은 지난 24일 새벽 시청 앞 대한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에 난입해 강제 철거하는 폭력을 행사했다. 즉 공언한 대로 직접 폭력행사에 나선 것으로, 파시스트 대중운동의 단초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아직 이 같은 운동은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방공간에 나타났던 서북청년단과 같은 백색테러조직이 부활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좌파)신자유주의 정책과 최근에 터진 세계경제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우파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라 생존의 벼랑에 몰린 대중의 절망과 분노가 1930년대의 독일과 이탈리아처럼 엉뚱하게도 노동자계급과 진보세력으로 향할 경우 사태는 무서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말 것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이미 극우세력의 지지층인 영남, 50대 이상의 노령층,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이외에도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퇴출되고 있는 600만 명 수준의 자영업자, 1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와 850만명의 비정규직, 잠재적 실업층인 20대에 주목해야 한다. 26일 열린 맑스 코뮤날레의 종합토론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되었지만 이들의 분노가 이명박 정부로 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노동조합=노동귀족, 공기업=철밥그릇 같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에 호응해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을 공격할 수도 있다.

대중의 심리란 복잡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날 토론에서는 노동운동이 지금과 같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투쟁을 벗어나 이들 사회적 약지들의 이익을 보다 강력하게 대변하고 이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었지만 안타깝지만 딱 맞는 해답은 없다.

그러나 최근 극우단체들의 폭력를 보면서, 한국에도 파시스트 대중운동이 오는가 하는 불행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황우석 사태나 '디 워' 논쟁 때 '대중 파시즘' '대중 독재' 논의가 등장하기도 했었다. 유학생들끼리 가졌던 세미나에서 그런 내용을 언급했다가 대중을 무시하는 먹물근성, '파시즘'을 함부로 들먹이다니... 그런 반응을 접한 적이 있는 터라 2mb 정부 아래에서 드러나는 이런 변화가 새삼스럽다. 박정희 정권이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국민총동원체제를 벌였고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걸 두고 대중운동이라고 부르긴 힘들 것이다. 그러니 그 시기는 대중운동 없는 파시즘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파시즘적인 대중운동의 기미는 공교롭게도 민주주의 이후에 보이기 시작했다. 월드컵, 황우석, 디워 지지는 그 연장 선상에 있는 것들이다. 지난 해 촟불집회나 노무현 전대통령 애도의 물결은 오히려 민주화 운동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기준? 아직 모르겠다. 어쨌든 2002 월드컵에서 드러난 스포츠 민족주의는 자본, 국가, 매스미디어, 스포츠권력 등이 멍석을 깔긴 했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박스컵' 같은 정부가 만들어 낸 스포츠 민족주의와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과학민족주의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박정희 시절 '전국민의 과학화'와 '황우석 지지' 사이엔 일부 연결점도 있지만, 전자가 위로부터 민족주의였다면 후자는 아래로부터 민족주의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손 교수는 "특히 이미 극우세력의 지지층인 영남, 50대 이상의 노령층,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이외에도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퇴출되고 있는 600만 명 수준의 자영업자, 1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와 850만명의 비정규직, 잠재적 실업층인 20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들 중에는 빨간 마후라를 들고 나타나시는 '해병전우회'나 '반공...' 도 있지만 인터넷 등 매체를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세련된 논리를 만들어 내도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mb 정부가 그렇게 뻔뻔스럽게 나올 수 있는 데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80년 이후, 또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묵은 과제들이 조금씩 청산된 이후, 이젠 본격적으로 계급갈등, 이데올로기 갈등이 나올 수 있는 여러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 갈등이 '대중운동' 같은 힘 싸움, 길거리 위 세력대결의 형태로 불거나오지 않아야 할텐데... 어떤 목적을 위해서건 길거리 정치라는 방식을 통하는 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듯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정부에 궐기하고, 저항하라고 선동하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처방인 것 같다. 지금은 민주화운동기가 아니다. 기존 질서를 근원적으로 바꾸기 힘들 정도로 '안정된' 상황에서 운동이 가져오는 변화는 '반동'일 수도 있다. 우파 대중운동... Wer we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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