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7일 토요일

욕설의 의미론

오랜만에 중앙일보의 그 인터넷 공간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욕설에 대한 것. 아, 원래는 인터넷, 휴대전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른 바 '외계어'를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욕설에 대한 부분이 특히 눈에 띄인 것. 자, 풀고자 하는 퍼즐은 이렇다. "'한국인만큼 욕(막말)이 발달한 민족은 없다' ... 기껏해야 ‘빠가야로(바보)’ 정도의 욕밖에 없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욕은 다양하고 거칠다. ‘육시(戮屍)를 할’ 등의 표현의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했던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육시(戮屍)는 이미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어 머리를 베는 형벌을 말한다.)

언제 어디에선가 일본에서 일본어로 '더빙'된 한국 조폭 영화를 봤던 자의 소감을 읽은 적이 있다. 국산 조폭영화에서 빼놓기 힘든 볼 거리 중 하나가 우리 말의 그 화려한 욕설 잔치인데 일본어 버전으로는 도무지 그 맛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 예를 들어, 더 이상 살벌하기 힘든 맞짱 뜨는 그 순간에, '이 바보야' '바보 같은 녀석...' 이는 곧 장르전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코미디로...

어쨌든 기사는 나름 설득력 있는 분석을 한다. 비교문화론에서 나름 일가를 이루신 이어령 님의 말씀과 기타 '전문가들'의 고견을 소개하면서... 결론은 한 마디로, 유교탓. 유교라는 의미론은 그저 조선시대 사회구조를 포맷하는데 시종일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구조와 의미론의 관계는 공진화로 보는 게 설득력 있는데, 조선시대의 경우 의미론이 구조를 만들어 내는 그쪽 방향도 '상당히' 강하지 않았을까?

"이 고문은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말을 부정적 힘에만 주목했지, 긍정적 힘에는 주목하지 않았고, 그 결과 부정의 언어는 매우 발달한 데 반해 긍정의 언어는 발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막말뿐만 아니라 일상어에서도 긍정적 표현보다 부정적 표현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성인 전용 극장을 표시할 때도 영어권에서는 ‘성인전용(Adult only)’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소자출입금지’라는 표현을 쓰는 식이다.

같은 뜻이지만 긍정의 표현을 쓰는 민족과 부정의 표현을 쓰는 민족의 말의 힘에 대한 인식과 활용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왜 말의 긍정적 힘보다 부정적 힘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정확한 답은 없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기아 등 사회적 환경이 각박해지면 ‘ㅋ’나 ‘ㄲ’ 등 거센소리, 즉 된소리가 많아지는 경향을 두고 각박했던 근대화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말이 거세졌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이는 아직 학술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변가를 선호하지 않았던 유교의 영향으로 말을 삼가는 문화가 발달한 것을 이유로 꼽는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유교문화에서는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며 “선비의 자세를 뜻하는 말에 ‘신독(愼獨)’이 있는데, 이는 혼자 있을 때도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라는 뜻이다.

이런 유교문화가 은연중에 한국 민족을 말 못하는 민족으로 만든 것 같다”고 말한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시 “말의 속성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자기 주장을 전파하는 것인데, 유교에서는 이런 말의 속성을 자기 이해관계를 위한 기술로 생각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지적한다.

유교에서는 말이 많은 사람을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이처럼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자 하는 유교의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터부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교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역시 선동가라고 생각해서 좋지 않게 봤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말하는 것, 말 많은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관습이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말의 긍정적 힘보다 부정적 힘이 부각됐고, 긍정적 언어보다 부정적 언어, 즉 막말이 발달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

같은 기사에서 요즘 저자거리에 횡행하는 외계어도 소개해 놓았는데, '소장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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