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8일 토요일

가난의 반대는?

몰트만이란 독일 신학자에 대해서는 민중신학에 심취했던 한국 대학 시절에 자주 들었고 또 읽기도 했다. 막상 독일에 온 후론 들은 적도, 읽을 기회도 갖지 못했는데, 어제 우연히 몰트만의 '공동체론'을 언급한 신문 기사를 발견하고서 좀 찾아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몰트만은 초대교회의 공동체가 가능했던 원인 중 하나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란 구절을 언급하면서 이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제안은 이렇다. 가장 좋은 것은 적절한 크기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며, 서로와 함께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 생활을 지향하려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다. 가난의 반대는 소유가 아니다. 가난과 소유의 반대는 공동체이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부유해진다. 친구와 이웃, 동무와 동지, 형제와 자매로 부유해진다. 공동체로 살아가면, 우리는 대개의 곤경 속에서도 자신을 도울 수 있다. 사람과 이념, 능력과 에너지는 실로 충분하다. 이 모든 것들은 단지 개발되지 않았고, 위축되었으며, 억압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부유함을 재발견하자. 우리의 연대성을 재발견하자. 공동체를 만들자"

요즘 경제위기 때문에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쉽게 얘기하면 그 위기때문에 더 가난해졌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처방들이 난무한다. '그린 뉴딜'은 그나마 점잖고, 심지어 멀쩡한 차를 폐차시키고 새차를 사면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는 그런 법도 시행되고 있나보다 (여기). 다른 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이런 모든 '짓거리'들을 조정하는 건 '천민 자본주의 정신'이다. 어떤 생태적, 사회적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제를 살리려는' 즉 더 많이 소비하게 하고, 더 많은 돈이 돌게 하려는, 한 마디로 더 부유한 상태로 만들려는... 그것이 생태계와 사회적 삶에 가져올 장기적 효과에 대해선 모른 척한다. 자본주의, 특히 금융자본주의적 파생상품이 만들어 낸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는데, 또 다른 거품을 만들어 내는 걸 위기극복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가난'을 참고, '무소유'의 덕을 칭송하는 건 남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게 인지상정이다. 재미있게도 자본주의의 천박성이 온천하에 그 어느 때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별로 저항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 많던 사회주의자들, 그 많던 맑시스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89년 이후 역사가 종말했다더니 (물론 후쿠야마는 '자본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승전가를 부른 거였지만) 이것도 일종의 역사 종말기의 그 증상인가... 요즘 그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라서 그런지, 몰트만의 경구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다."가난의 반대는 소유가 아니다. 가난과 소유의 반대는 공동체이다." 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생각인가. 이런 얘길 할 때 귀기울여 들을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심지어 교회, 즉 '나름' 공동체 안에서도 하루 빨리 경제위기를 극복해서 다시 흥청망청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형편아닌가. 이런 시대상황을 성찰하면서 난 이스라엘과 유대의 멸망을 예언하던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심정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라던 예수 가르침의 정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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