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4일 수요일
무지개는 몇 개의 색으로?
지난 일요일 교회 본당에 무지개를 그린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 색깔이 하나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직접 세본다. 빨주노초파남보... 엥? 하나가 모자란다. 다시. 빨주노초파남보... 어, 역시... '빨주노초파'는 분명한데 '남보...' 쪽에 한 색밖에 없는 것이다. 남색이라고 해도 좋고, 보라색이라고도 해도 좋을... 최근에 인터넷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찾아보니...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라고 배우는 나라는 몇몇 나라에 불과한데, 이 '무지개 7색설'은 1668년에 '뉴튼'이 프리즘을 통하여 무지개를 발견하면서부터. (...) 우리나라에는 일곱 색깔 무지개가 뜨지만 또 다른 나라에는 3색, 4색, 6색의 무지개가 뜬다." 찾다보니 또 무지개 색 수를 크세노폰이라는 그리스 철학자는 3가지, 아리스토텔레스는 4가지, 세네카는 5가지라고 주장했다는 내용도 발견했다. 하하. 그렇구나.
그럼 독일에서는 무지개가 여섯 색으로 이루어졌다고 가르치고 또 배우는 것인가? 애플사 로고로 1999년까지 사용되었던 그 '베어먹은 사과'를 이루고 있는 무지개 색도 여섯인데 어쩌면 그 배후에도.... 그렇다면 한반도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무지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색을 구분했을까? 한국에서는 왜, 언제부터 7색설이 널리 퍼졌을까? 동서고금, 인류라면 누구나 관찰하는 대상인 무지개 색의 다양한 이해방식에 대해서 재미있는 에세이 한 편 정도는 쓸 수는 있겠다. '색'은 사회적 구성물인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연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의 공동생산물 (co-production)이겠지 (여기서 '자연적 질서'라 함은 무지개가 생기는 메카니즘, 우리의 시신경 정도 되겠다). "무지개라는 자연현상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데 인간들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뿐... ", 그렇게 봐서는 왠지 허전하다는 입장이 바로 coproductionist 들의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Latour. 우리 La선생의 입장은 장선생이 더 잘 알텐데... (Latour 애기도 철학적 개념을 사용해 표현하지만 주체, 객체의 이원론을 벗어나자는 것. 이 쯤에 남겨 두고 싶은 글이 있어서 인용해 온다. '책'이라는 '객체'를 '주체'인 '내'가 읽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책이 완전한 객체일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책은 완전한 독립적 객체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독립적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접근할 수만 있을 뿐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읽는 책은, 읽을 수 있는 책은 읽을 수 있다면, 주객의 혼합물, 아니면 주객의 경계선에 있는 '물건아닌 것'이다. 책을 읽는 주관은 '근대의 주장'과는 달리 철저하게 독립적인 자기가 아니다. 그것은 대상의 일부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다른 주관들과 경계를 겹치고 있는, 집단의 일부이다. 실상을 인지하고 못하고 여전히 저 주장을 고수하는 것은 착각하는 근대인의 고집이요, 저 주장을 저만치 밀고나간 것은 근대의 심층적 자기 고립과 착각의 심화에 불과하다." (강유원). 이런 진술에 대해서 Latour는 '꼭 그렇지만도 않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한 번도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오..."라고 대꾸하겠지만... 어쨌든 무지개 뿐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진 현상, 우리가 관찰하는 여러 대상에 대한 분류가 달라지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관찰이 불가능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칙, 즉 구분, 분류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언급할 만한 에피소드... 푸코는 '말과 사물' 서문에 보르헤스가 그의 책에 소개한 고대 중국 백과사전에 실린 동물분류법을 읽으면 웃었던 일이 이 그 책을 쓰게된 동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자연과학에 기초한 색 연구에선 큰 진전이 있었나보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소리란 이러한 진동을 인류가 감지해서 뇌가 처리한 결과이며 빛이란 또 다른 진동을 인류가 감지해서 뇌가 느끼는 방법입니다. 소리와 빛은 인류의 뇌에서만 존재하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진동 그 자체이며 서로 다른 진동을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처리된 결과가 소리와 빛입니다. 진동은 실재하는 세계고 소리와 빛은 인지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사실은 뉴튼이 무지개를 보고서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견이라... 뉴튼 나름대로 구성한 것이겠지...). 결국, 빛, 색이란 것은 우리의 뇌, 시신경이 만들어 낸 상이고, 무지개가 몇가지 색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은 자연적 질서와 사회적 질서의 공동산물이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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