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5일 수요일

벡 선생 한국에 훈수두다

울리히 벡 선생이 현 한국 시국에 대해 한 말씀하셨다. 한겨례 특별기고 형식으로. 허나 '특별기고'라는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분량도 적고 내용도 빈약하기 그지 없다. 그래도 어딘가,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께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톤이 좀 시니컬해도 이해하시라. 그 양반 지명도에 거품이 많이 꼈다고 생각하는 쪽이니까...). 왜 '특별'히 '기고'할 생각을 했을까? 본인의 표현을 빌면 "한국의 현 갈등 상황은 내가 쓴 책 <글로벌 위험사회>(Weltrisikogesellschaft)에서 묘사한 체계의 모든 특징을 빼닮았"다는게 신기했나보다. 그 양반 테제는 대개 매우 추상적이어서 한국 아니라 지구 그 어디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 두마디 거들 수 있을 터이니 그것 자체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딱히 그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Beck 교수의 기본 테제는 내가 이미 읽은 다른 책을 통해서 충분히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런 내 추측이 틀리지 않음은 본문에서 입증된다. "재난이 아니라 재난에 대한 예견이" 문제이고 "이 모든 것은 초국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게 이 짧은 '기고'에서 그가 "묘사한 체계의 특징"으로 제시된다. 제목도 좀 자극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장·미국에 충성…절대적 국민 건강권 내버렸다”. 한겨레신문 편집자가 달았겠지만 마음에 안 든다. 아닌게 아니라 한겨레도 그렇지, 벡 교수가 예를 들어 New York Times나 Sueddeusche Zeitung에 기고할 때 이렇게 무성의하게 썼을까, 그걸 덮썩 받아가지고선...특별기고 운운... (나만 그렇게 보는건가?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나?)
사실 내용의 핵심은 (워낙 글이 짧아서 핵심이란 표현도 우습지만) - 어쩌면 이것도Weltrisikogesellschaft 테제에 포함되는 내용일 수도 있겠다 - 신자유주의 국가 비판이다. 인용: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글로벌 위험사회 문제에 직면해 실패의 위협을 받고 있는가? 국가는 이런 갈등을 통해 국민이 점점 거세게 요구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적 책임을 떠맡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이로써 전통적 좌우 대립이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인가?" 이런 질문은 이명박 정부 뿐 아니라 메르켈 정권, 부시 정권은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구상에서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부는 글쎄 차베스나 카스트로, 김정일 정도? 그러니까 벡 선생은 노무현 정권의 특정 정책에 대해서도 똑 같은 얘기를 했을 거란 말이지. 한국학자도 아닌 이에게 더 정확한 분석, 해설을 요구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건 완전히 '하버마스에게 남북관계에 대해 묻기'-식 아닌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서 이런 내용을 인터넷 토론장에 올렸다고 생각해보라. 아니면 내가 한 번 실험해볼까?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러지 않을까? 그런 하나 마나한 소리 집어치워, 어이 초딩, 방학 언제하니..., 아, 괜히 아침부터...
[p.s. 좀 부연하면, 벡 교수가 한국 전문가가 아니니 침묵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특히 그로서는 (세계)위험사회라는 자신의 평소 주장에 맞아떨어지는 듯한 사례를 발견했으니 이런 저런 얘기 할 수 있다. 다만 그게 대한민국 한겨레 신문에 특별기고라는 형태로 실릴려면 어느 정도 질은 담보해야 하지 않냐는 거다. 점심식사 후 커피마시면서 한 두마디 언급한 것 같은 내용을 세계적 석학의'고견'인양 실어주고 수용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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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새 덧글이 44개 달려있다. 그 중 몇 개를 골라 옮겨놓는다.

silver8203(211.XXX.35.203)
2008/06/26 13:16:24
저분이 저런말 할 정도면..... mb는 저분이 누군지는 알까?? 왜 독일인이 선동한다고 그러겠지?? 저런분의 말을 알아먹을리가 없지~ㅉ ㅉ

11215(210.XXX.80.241)
2008/06/25 10:08:17

울리히 백 같은 유명 사회학자의 한국문제 언급을 환영한다.녹색당이 강한 독일의 입장에서 전 세계적 자본주의 물결에 대한 광범위한 발언은 상당히 고민해봐야할 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위기와 폭력의 정치성과 재난과 재난의 예고에 대한 역학적 생각은 좋은 사회학적 모델로 보여진다..

11215(210.XXX.80.241)
2008/06/25 10:09:19

그러나 아직 이번 촛불 시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 경향에 대한 정확한 숙고가 모자란 듯이 보인다.. 즉 서구 사회가 제시한 민주주의 틀안에서 한국을 대상화해서 바라보고 있는 측면으로 , 이 운동의 내막은 이미 자신이 제단한 미래상의 일부로서 묘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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