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7일 금요일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촛불집회'에 대해서 진중권씨같은 시사 평론가가 할 얘기들은 다 나온 것 같고, 이제 좀 더 전문적, 학술적 담론의 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허나 전문적 담론이란 걸 한 두 개념을 만들어 쓰거나 비트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겠다. 위험사회 개념 빌려다 한국을 '복합위험사회'라고 하거나, 2000년 이후 월드컵 이후 신공동체를 발견해냈던 맥락에서 촛불집회를, 예컨대 '미시적 생활정치'라고 부르는 것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 좋다. 허나 산뜻한 개념중심으로 뭔가를 정의할 때 한편으로 언론이나 대중이 사회전문가에 대해 갖는 기대, 혹은 일부, 혹은 대다수의 전문가들끼리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 갖는 기대를 더 쉽게 충족시킬 수 있을 지는 모르나,계속 그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일회성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으로 만족하기엔 좀 아쉽지 않은가? 좀 큰 규모의 사건이 발생하면 매번 놀라고, 새로 발견하는 그런 역할은 언론이나 진중권씨에게 맡기고 사회전문가들은 좀 거시적, 역사적 시각을 가지고 접근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역사적이란 표현을 붙이기도 뭣하지만, 내가 보기에 황우석 사태와 촛불집회는 매우 유사한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예컨대 일부 사회평론가들에게 황우석 사태의 주역은 과학의 메카니즘을 잘 모르고 애국주의에 경도된 대중이었고 촛불집회의 주역은 미시적 관심과 이해도 표출할 줄 아는 정치의식 높은 시민들인 모양이다. 오해마시라. 그게 틀린 관찰이라는게 아니라, 그렇게만 볼 때 놓치는 것들이 많다는 걸 지적하는 거니까. 적어도 사회학자들은 좀 높은 데서 내려다 볼 필요가 있다 ("구름 위 비행").
그런 의미에서 오늘 확인한 한겨레 21 기사가 반가우면서도 아쉽다. <한겨레21>이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소장 박길성 사회학과 교수) 갈등연구센터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 333명(중학생 33.8%, 고등학생 66.2%)을 대상으로" "최초의 체계적 면접조사를 벌였다"고 한다."진행한 설문조사는 6월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실시됐다. 이번 조사연구의 책임을 맡은 김철규 갈등연구센터장(사회학과 교수)은 '촛불집회를 촉발한 10대 참여자의 특성과 의식에 대한 객관적인 측면들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촛불 소녀(여학생 70.6%)와 소년(남학생 29.4%)에게 43개 항목에 걸쳐 물었다.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 음.... 광장에 앉아 있는 333명의 중고생에게 여러 질문을 던졌구나. 답변을 보니까 설문문항은 5점 척도로 구성했고... 허나 처음에 반가운 마음으로 기사를 읽기 시작하다 서서히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문결과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내가 원칙적으로 양적 조사, 통계학적 분석을 불신하는 건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의견, 태도를 묻는 설문조사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물론 대통령 후보로 누굴 지지하는지 정도는 물을 수 있다. 또 참석자들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양적으로 조사하는 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들도 잘 모르고 있을 촛불 집회 참석 동기같은 걸 물어서 나온 결과가 과연 얼마나 의미있는 지식을 제공해 줄까? 본문 인용: "먼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촛불을 들게 되었나. ‘처음 촛불집회에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6.1%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고 응답한 비율(14.0%)을 훨씬 상회했다." 이것도 분명히 제시된 답변 중 선택하는 방식으로 설문한 결과일텐데, 항목이 제시되지 않았다. 인간은 한 가지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대개 정부 정책에 대한 부노,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친구가 가니까, 그냥, 놀러, 심심해서, 뭐 하나 궁금해서, 대략 이런 여러 생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 중에서 그래도 어떤 게 가장 중요한 동기였는지를 끄집어 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런 설문에 대고 "그냥 왔어요"라고 대답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설문과정도 하나의 상호작용인데 특히 한국사람들은 설문자가 기대하는 대답을 하려고 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 아닌가. 재미있는 결과, "참석자 중 56.1% 촛불 든 후 61% 자기 만족도 높아져” 하하. 재미있지 않은가? '자기 만족도'라? ... 다시, 정리하자. 이런 설문조사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21이 주관 혹은 참여한 건 벌써 문제의 소지가 있다. 또 설문항목 구성에 좀 아쉬움이 있고, 이런 복합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차라리 포커스그룹인터뷰를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또 이번 사건처럼 이슈변화나 참여자 구성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경우엔 몇 번에 걸쳐서 조사를 했을 때 훨씬 더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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