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7일 금요일

bittere Wahrheit

"(...)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선물이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라 교환의 시작이며, 그것이 거저 주는 것이라면 그 또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가 거지에게 돈을 줄 때 선물을 준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주고받아온 것일까? (...)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애초에 선물이란 말 그대로 ‘논리적 모순’이지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선물 교환은 교환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 차이를 두고 교환을 하는 행위다. 그래서 베풂의 성격을 담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란 ‘비연속적인 베풂의 행위’인 셈이다. 어느 사회나 받은 선물에 대해 곧바로 답례하는 것은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례’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답례를 하지만 그 자리에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교환을 하는데, 그 시간 차이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 )(정재승, "선물, 그 음험한 전략", 한겨레 21)

찔리지 않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이런 '계산'을 하면서 살아간다. 내색을 안할 뿐이지... 이런 얘긴 그래서 bittere Wahrheit에 속한다.
사회이론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모든 사회관계로 확장한 것이 합리적선택이론, 교환이론 아닌가? 그런 접근의 설명력 자체를 부인하진 않지만, 그것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또 있는 것이고... 우리 삶을 '계산, '교환', '합리적 선택'으로 다 돌릴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은 bittere aber nur halbierte Wahrheit 아닌가 싶다, Gott sei dank... 좀 다른 맥락에서.... 언제 동료들과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 뇌물과 선물 그 구분도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맙게도 우리에겐 우리 고민을 덜어주는 정의의 사도, 심판관, 기자들이 있다. 그들은 '뇌물'일 때만 알려준다 ('선물'은 뉴스가치가 없다). 그렇다. 그게 언론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거야 말로 bittere Wahrhei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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