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4일 토요일

의미론의 세계화

의미론의 세계화를 논하기 이전에, 의미론의 변화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를 해보자.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의미론이 변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커뮤니케이션끼리의 연결(방식)이 바뀌는데 의미론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런 의미론은 사회 현실에 대한 접근통로를 잃는 것이고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방향을 조정할 수 없다. 구조와 의미론의 관계는 공진화적 혹은 순환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론의 변화는 구조변동에 달려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 커뮤니케이션 주제의 성공과 의미의 유형화를 결정하기도 한다.
구조와 의미론의 관계를 추적하려면 구조의 어떤 차원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그 점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대사회의 '지식사회'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면, 의미론도 거기에 맞춰서 변화한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내 경우 기능적 분화라는 세계사회의 구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차원의 기능적 분화, 지역 조직, 상호작용의 세계화라는 거시적 구조변화가 의미론의 세계화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기능적 분화는 어떤 유형의 의미론을 필요로 하는가? 세계체계의 특징은 끊임없이 그 경계를 스스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일상적을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가 보장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의미론적 발전은 체계 분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보아야 할 이다. 기능적 분화라는 구조적 차원의 변화를 볼 때 의미론의 가장 큰 기능은 체계의 경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것. 체계의 자기관찰, 성찰이론이 대표적이다. 또한 여러 형태의 윤리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필요하다. 경제윤리, 연구윤리, 정치윤리, 생명윤리... 체계가 자율적이되면 체계 유지에 해가 되는 경우를 배제하는 메카니즘은 윤리가 대표적이다. 세계차원에 대해 국가 단위로 영향력이 제한되는 공권력을 쓸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계차원에서 관철되는 의미론은 우선 매우 추상적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너무 분명하게 간섭해서는 극도로 상이한 지역적 커뮤니케이션을 조정해서 체계의 재생산을 보장할 수 없다. 이게 생명윤리의 확산과 동시에 지역적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다. [이것이 바로 매우 국지적일 것 같은 정치, 법, 혹은 윤리 같은 경우에 대해서도 수렴/분산의 동시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다. 이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이미 충분히 있음.]
하지만 세계사회는 이런 의미론적 수렴, 그리도 동시에 분산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한, 혹은 이전보다 더 활발한 지역적 의미론을 발견한다. 그것은 세계사회의 반작용인가? 아니면 세계사회의 구조에 내재되어 있는 특징인가?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힘들도 체계에 따라 다르게 이용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 의미론이 가장 설득력있게 작동하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정치, 매스 미디어. 물론 가장 큰 전제는 이들도 세계차원에서 작동하는 이상 생각이상 탈지역성을 띤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재생산을 위해서 지역 의미론이 필수적이다. 유권자들에게 호소해야 하고, 독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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