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26일 목요일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모처럼 식구들과 통화하던 중 대화 상대가 바뀌어 이제 조카들 차례가 되었다. 유치원생과 초등 2학년인... 그게 참 애매한 상황이다. 서로 공유하는 대화 주제를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나와 어린 조카들... 몇 마디 나누다가보니 스스로에게 전형적인 한국 어른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나를 발견: 동생(형)하고 싸우지 마라,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참... 내가 그런 '관습적' 얘길 남발하는 '어른들' 중 일인이되다니....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한국 어른들 잔소리란.... 나도 어쩔 수 없이.... 뭐 그런 걸까? 그보다는 조카들도 이해할만한 방식으로 대화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한 주제 아니었을까? 그 상황은 정색을 하고 내 인생관을 들려주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예컨대, 얘들아, 공부만 하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렴.... 그리고 자주 보는 사이라면 또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주로 그런 어른스런 멘트를 날리는 한국 어른들은 대개 명절 때나 가끔씩 보던 친척들이었던 것 같다. 대개 그 자리엔 그 멘트를 들어야 할 아이들 뿐 아니라 아이 부모 등, 다른 어른들도 함께 있다. 얘들은 물론 어른들이 들어도 수용할만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이끌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communicator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제 1 덕목, "분위기 파악"! 허나 '분위기 파악'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눈치보기'다. 그 경계? 매우 모호하다. 자, 난 어느 쪽인가? 분위기 파악할 줄 아는 센스있는 사람과, 대화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보는 비굴한 인간. 분위기 파악할 줄 모르는 센스 꽝인 사회부적응형 고집쟁이와, 어떤 굴복에도 자신의 신념, 소신을 굽히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 세상 일이란게 다 이런 식으로 구분되고, 어느 한 쪽에 서도록 요구받는다. 이런 구분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또 그에 걸맞는 구분이 주어진다: 한 편으로 '경계인' 혹은 '회색인', '성찰할 줄 아는...', '고뇌하는...', 다른 한 편으론 '회색분자', '박쥐', '절충주의자', '수정주의자' 가 된다.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이, 구분, 경계... 그것 없이 세상을 볼 수조차 없지만, 그 구분은 또 그것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결론은? 그러니 자-ㄹ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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