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 연재되는 기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름하야 "소준섭의 正名論". 오늘 확인한 4회 기사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독일어는 단어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의 신조어를 생성함으로써 오늘날 가장 원래의 의미를 잘 표현하는 문자로 발전하였다. 예를 들어 '과학'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 온 개념으로서 영어 'science'와 프랑스어 'science' 모두 '자연과학'의 의미이다. 다만 독일어인 'Wissenschaft'에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사용하는 단어에는 마땅히 독일어 중의 'Wissenschaft'로써 이해해야만 비로소 타당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의 경우에는 거의 두 글자로 조어가 진행되어 의미를 담아내는 데 현저한 제한성이 존재한다. 이는 용어에 있어 개념의 불명확성과 중복, 혼선을 초래하며 결국 언어생활 및 일상생활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대표자회의'라는 말은 처음 들을 때에도 곧바로 '대표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조직'이라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 '국회'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된다면 우선 한자어인지 순 우리말인지부터 생각해야 하고, 또 나라 국(國)자인지 판 국(局) 자인지 아니면 국화 국(菊) 자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회'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람은 세계적으로 말의 속도가 늦는 편이다. 이는 한국어가 대개 두 단어로만 조어가 진행되어 동일한 발음이 많음으로 하여 말의 속도가 빠를 경우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번역어의 성립, 전파나 개념의 의미변화 등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탓에 이런 기사를 만나는 일은 무척이나 반갑다. 위 인용문에서 특별히 눈에 띈 내용은 새로운 단어,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 독일어는 기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신조어 형성이 진행되는 편이고 (그 예가 Wissen -> Wissenschaft. "-schaft'라는 '추상' '총합' 등의 의미를 만들어 주는 접미사 이용) [독일어의 특징 중 하나는 접두사, 접미사 따위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는 것], 한국어의 경우 - 특히, 한자말 - 대개 두 단어로 단어, 개념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런 경우 단점은 동일한 발음을 갖는 단어가 많은 것. (중국어의 성조 따위도 없는 탓에) 동일하거나 비슷한 단어들 구분하는 방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말의 속도가 느리다! 물론 검증이 필요한 발언이다. 근러로 삼을 연구가 있는지 아니면 그저 추측인지... 말의 속도가 실제로 느린지, 그렇다면 그게 두 단어 조어 경향 탓인지 아니면 문장 구조 탓인지, 아니면 음성학적 문제인지. 아무리 인터넷에 실리는 기사라지만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두 단어 조어법 못지 않게 - 혹은 그 이상 - 음성학적 요인이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을런지. 성악을 전공한 탓에 발성, 발음 등을 나름 주의깊게 관찰해 온 분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개 '자음'을 또렷하게 발음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소리가 커진다고... 아닌 게 아니라 독일어나 영어에선 자음음을 더 분명하게 구분할 것이 요구된다. b,p,v 등등. 실제로 작은 소리로도 잘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허나, 생각해 보면 한국어 자음에도 만만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물','불','뿔' 같은 경우. 대화에서 우리가 그걸 우선 발음으로 구분하는지 의미로 구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사투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특정 단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걸 봐서 일리 있는 설명이라고 봐도 될 듯 하다. 다만 모음 쪽은 한국말이 훨씬 더 분화되어 있는 것 같고. 예를 들어 'ㅓ' 발음을 제대로 내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의 세계! 알면 알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분야다.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어른증후군
이런 얘길 들은 기억이 난다. 아무리 공부를 오래 했어도 한국에 돌아가서 조금만 지나면 밑천이 금새 떨어지고 바닥을 보인다고. 그래서 귀국 뒤 몇 년이 지나면 자료조사, 재충전차 한 번씩 나오고... 그런 상황을 학문수입국, 학문식민지의 비애로 연결시키기도 하면서...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한대서야 나름 오랜 시간 '내공'을 쌓았다는 기대를 은연 중에 받게 될 나로선 좀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얘기해야 할 상황을 상상해 볼 수는 하다. 다른 경험을 통해서...
내 속에 들어가서 차곡 차곡 쌓여있는 지식, 생각의 단편들이 고구마 줄기 처럼 엮여서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겨우 대개 대화 상대가 기여한 바가 크다. 나도 모르게 어떤 말들이 정리가 되어서 나올 때면 '도를 깨우치는' 그런 상태 언저리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얻기도 하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것마저 '레파토리'가 된 것 같다. 오늘도 사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국 그 레파토리를 풀어야 했는데 입술만 바짝타고 별 감동이 없었다. 오히려 좀 더 많이 들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어쨌든 그 상황을 정리하다가 앞에서 언급한 공부 밑천이 떨어져서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투덜거리게 되는 그런 상황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 모습은 이른 바 '어른'들이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어른증후군'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싶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나름 세상을 이해하는 틀, 세계관, 철학을 가지게 되는데, 그런 얘기는 한 번 들으면 '좋은 말씀'이지만 몇 번 반복되면 '잔소리'에 가까워지고, 상대의 의식세계로 침투하지 못한다. 워낙 그런 상황을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탓에 내게서 그런 '어른증후군'의 일면을 발견할 때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흠. 아무리 애써봐야 인간은 다 고만고만한가?
허나 지금도 계속 '투입'하고 있고, 그때 그때 드는 생각을 메모도 하고 이곳에 풀기도 하니 곧 새로운 레파토리가 생기지 않겠는가.'학문' 레파토리도 마찬가지일테고...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한대서야 나름 오랜 시간 '내공'을 쌓았다는 기대를 은연 중에 받게 될 나로선 좀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얘기해야 할 상황을 상상해 볼 수는 하다. 다른 경험을 통해서...
내 속에 들어가서 차곡 차곡 쌓여있는 지식, 생각의 단편들이 고구마 줄기 처럼 엮여서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겨우 대개 대화 상대가 기여한 바가 크다. 나도 모르게 어떤 말들이 정리가 되어서 나올 때면 '도를 깨우치는' 그런 상태 언저리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얻기도 하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것마저 '레파토리'가 된 것 같다. 오늘도 사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국 그 레파토리를 풀어야 했는데 입술만 바짝타고 별 감동이 없었다. 오히려 좀 더 많이 들었다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어쨌든 그 상황을 정리하다가 앞에서 언급한 공부 밑천이 떨어져서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투덜거리게 되는 그런 상황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 모습은 이른 바 '어른'들이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어른증후군'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싶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나름 세상을 이해하는 틀, 세계관, 철학을 가지게 되는데, 그런 얘기는 한 번 들으면 '좋은 말씀'이지만 몇 번 반복되면 '잔소리'에 가까워지고, 상대의 의식세계로 침투하지 못한다. 워낙 그런 상황을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탓에 내게서 그런 '어른증후군'의 일면을 발견할 때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흠. 아무리 애써봐야 인간은 다 고만고만한가?
허나 지금도 계속 '투입'하고 있고, 그때 그때 드는 생각을 메모도 하고 이곳에 풀기도 하니 곧 새로운 레파토리가 생기지 않겠는가.'학문' 레파토리도 마찬가지일테고...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인사를 잘 하자! 그리고 잘 받자!
이번 달에도 겨우 10건을 넘기는구나... 쓸 거리가 없진 않으나 하나 같이 다 무거워서... 어느 새 무겁고 가벼운 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인지... '소수'의 독자층을 의식한 탓인지.. 흠... 그나마 좀 가벼운 얘기거리가 마침 오늘 생겨서 10을 넘길 수 있게 되었다. Thanks to Niklas...
오늘부로 이사 나간 옆 방 친구의 친구로 사회학 BA 과정에 있던 슬로바키아 출신 남학생이 있었다. 동구권 특유의 남성다움 과시인지 매우 호기롭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 가끔씩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인사가 끝나고선 대뜸 묻는 말이 "논문 몇 장이나 썼니?". 허 참. 물론 그 친구 나름 나에 대한 관심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했으라 생각했지만 만날 때마다 그러니 참 곤혹스러웠다. 나중에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내가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알아달라는 메세지를 간접적으로 전한 바가 있다. 오늘은 바로 그 친구 입장에 내가 처하게 되었다. 자주 볼 일 없고 한 다리 건너서 알고 지내는 독일 역사학도. 나처럼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일에 苦戰을 하고 있는 터라 同病相憐의 정을 느끼던 사이인데, 오늘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내 첫 말이 'Wie geht's dir?" 그 친구 답이 가관이다. "넌 만날 때마다 '어떻게 지내니'라고 묻더라..." 내 참, 황당해서. 그래서 부연 설명해줬지. "너도 알잖아. 그냥 아무 뜻없이 하는 인사 같은 거잖아..." 그 친구 매우 예민한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나중에 하는 말이, 자긴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불평할 수 밖에 없고, 어쩌고... 내가 느낀 당혹감을 얘기했을 때 그 슬로바키아 친구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을까?
사회학 중 'Ethnomethodology' 분야 연구자들이 했다는 '실험' 얘기를 사회학 교과서를 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How are you?"라고 물을 때 정색을 하고 되묻는 실험. '도대체 내 무엇이 궁금한 거니? 내 건강상태? 재정상태? 학업상황? 가족관계? 등등' 우리 표현은 대개 - 처음부터 - 여러 의미를 담고 있거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 중 어떤 해석을 취하느냐는 '대개' 약속되어서 그냥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하며 살아간다. 그게 깨지는 경우는, 앞서서 얘기한 실험상황이나 오늘 그 독일친구와의 만남. 그 밖에 다른 경우가 있다면 '유머'가 아닐까 생각한다. 썰렁한 유머 (빌레펠트 '냉장고 학파' 고수들이 자주 쓰는...)는 대개 어떤 표현에 대해서 약속된 이해를 거부함으로서 어이없는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최근 들었던 경우로는...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가 잠시 방문한 일인의 경우... 며칠 동안 머물러 있으면 사람들이 묻는다. '안 가세요?'라고. 물론 그 도시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의미로. 그에 대한 그 양반 대답인즉슨. '전 김간데요'. 과연 냉장고학파의 거두답다.
어쨌든 인사를 잘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내 인사를 이해할 지 고려해 가면서.. 이중우연성... 루만이 늘 강조하지만 우리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살아가는 것,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오늘부로 이사 나간 옆 방 친구의 친구로 사회학 BA 과정에 있던 슬로바키아 출신 남학생이 있었다. 동구권 특유의 남성다움 과시인지 매우 호기롭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 가끔씩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인사가 끝나고선 대뜸 묻는 말이 "논문 몇 장이나 썼니?". 허 참. 물론 그 친구 나름 나에 대한 관심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했으라 생각했지만 만날 때마다 그러니 참 곤혹스러웠다. 나중에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내가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알아달라는 메세지를 간접적으로 전한 바가 있다. 오늘은 바로 그 친구 입장에 내가 처하게 되었다. 자주 볼 일 없고 한 다리 건너서 알고 지내는 독일 역사학도. 나처럼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일에 苦戰을 하고 있는 터라 同病相憐의 정을 느끼던 사이인데, 오늘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내 첫 말이 'Wie geht's dir?" 그 친구 답이 가관이다. "넌 만날 때마다 '어떻게 지내니'라고 묻더라..." 내 참, 황당해서. 그래서 부연 설명해줬지. "너도 알잖아. 그냥 아무 뜻없이 하는 인사 같은 거잖아..." 그 친구 매우 예민한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나중에 하는 말이, 자긴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불평할 수 밖에 없고, 어쩌고... 내가 느낀 당혹감을 얘기했을 때 그 슬로바키아 친구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을까?
사회학 중 'Ethnomethodology' 분야 연구자들이 했다는 '실험' 얘기를 사회학 교과서를 통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How are you?"라고 물을 때 정색을 하고 되묻는 실험. '도대체 내 무엇이 궁금한 거니? 내 건강상태? 재정상태? 학업상황? 가족관계? 등등' 우리 표현은 대개 - 처음부터 - 여러 의미를 담고 있거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 중 어떤 해석을 취하느냐는 '대개' 약속되어서 그냥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하며 살아간다. 그게 깨지는 경우는, 앞서서 얘기한 실험상황이나 오늘 그 독일친구와의 만남. 그 밖에 다른 경우가 있다면 '유머'가 아닐까 생각한다. 썰렁한 유머 (빌레펠트 '냉장고 학파' 고수들이 자주 쓰는...)는 대개 어떤 표현에 대해서 약속된 이해를 거부함으로서 어이없는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최근 들었던 경우로는...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가 잠시 방문한 일인의 경우... 며칠 동안 머물러 있으면 사람들이 묻는다. '안 가세요?'라고. 물론 그 도시로 돌아가지 않느냐는 의미로. 그에 대한 그 양반 대답인즉슨. '전 김간데요'. 과연 냉장고학파의 거두답다.
어쨌든 인사를 잘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내 인사를 이해할 지 고려해 가면서.. 이중우연성... 루만이 늘 강조하지만 우리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살아가는 것,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근대인, 존재감
어떤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당신 투명인간이야, 왜 ...." 그런 내용이 오가는 장면을 관찰했다. 그런 맥락에서 '투명인간'이란 표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그래서 좀 씁쓸해 했던 기억이 있다. 신분제 사회에선 - 주로 영화 등을 통해서 간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 실제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거나 그렇게 행동하도록 기대되던 신분, 계층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신 앞이나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생각은 근대의 출발점이자 전제이기도 했다. 이제 인간은 누구나 그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제'일 따름이고 여러 의사소통 상황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흔하디 흔하다. 위 사례는 'interaction' 상황에서 배제의 경험을 지적하는 경우였고... 물론 그 배제는 신분제 사회와 비교 할 때 훨씬 더 은밀한 - 혹은 '세련된 -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인정투쟁'이라는 표현까지 쓸까... [Kampf um Anerkennung (A. Honneth)]. 실제로 자기 존재의 무게가 가볍다고 느낄 때 찾아오는 상실감은 또 얼마나 큰지... 그러니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서 모두들 얼마나 애를 쓰는지... 때로는 그 속이 뻔히 보여서 안스러울 정도로. 존재감 인정 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안 좋은 방식 중 하나는 타인의 존재감을 해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방식 아닐까? 대개 목적 지향적, 성취 지향적인 사람일수록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이들의 존재감을 가장 인정치 않[으려]는 편이니, 적어도 내겐 오히려 역효과.... 아니,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들은 존재감은 이미 드러났으니 그것만으론 성공한 셈일 수도...). 어쨌든 근대인으로서 우리는 투명인간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관찰해 본다. 내 방식을 포함해서... 흥미롭다.
ps1) 존재감, 특히 '특별한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이는 무엇보다 체계를 통해서 주어진다. 이 경우 '특별한 존재감'은 '대접'이나 '명성'과 연결된다. 은행이나 경제활동 영역에서는 돈 많으면 대접받고, 스포츠에서라면 뛰어난 실력을 보일 때 등등. 물론 한 체계에서 얻은 존재감, 명성이 다른 쪽에서 존재감을 인정 받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 상승효과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어쨌든 원칙적으로... 이런 방식은, 바꾸어서 얘기하면, 그만큼 존재감의 기반이 허약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서 돈이 없거나, 실력이 없으면 금새 잊혀진다. 한 인간이 전인격적으로 그 존재감을 인정받는 경우는 없는가? 현대사회에선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가 그런 기능을 담당하는 것 같다. 현대로 오면서 가족이 해체된다거나 약화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던 것 같은데 [see also SF movies], 가족, 친밀한 관계, 연애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다. 이혼이 잣다는 것은 결혼이나 친밀한 관계에서만큼은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커진 것의 반영이고. 애정, 특별한 감정이 식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자식을 낳는 것에도 갈수록 그런 욕구가 투영되는 것 같다. 지난 수년부터 연예계 유명인사들 중 여자들이 - 특히, 미국에서 - 경쟁적으로 아이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인기고 남편과 애정이고 모두 한 순간이고, 세상에 믿을 것 자기 자식밖에 없다는 그런 심리 아닐까? 너무 나간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마음도 그런 것 같고. 누구에겐가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그런 욕망...
ps2) B.Latour 같은 이는 우리는 한 번도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고 하는데, 그가 근대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는데, 그런 방식은 이제 좀 식상하다. 심지어 내겐 짜증감(?) 유발 원인이기까지 하다. 그런 입장을 'anything goes'ism이라고 불러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네들, 그러니까 'anything goes'ist들은 대개 문제를 제기하거나 뭔가 잔뜩 파헤쳐 놓기만 하고 나머진 "알아서 하셔, 내 알 바 아님" 그러면서 빠진다. 좀 무책임하지 않은가? 처음 시도는 신선한다. 니체나 푸코 정도는 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허나 그 이후론... 내가 여기에서 '근대인'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하니 그 '근대(인)'이란 건 없다던 라투어가 걸려서 뱀발을 달아 둔다.)
ps1) 존재감, 특히 '특별한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이는 무엇보다 체계를 통해서 주어진다. 이 경우 '특별한 존재감'은 '대접'이나 '명성'과 연결된다. 은행이나 경제활동 영역에서는 돈 많으면 대접받고, 스포츠에서라면 뛰어난 실력을 보일 때 등등. 물론 한 체계에서 얻은 존재감, 명성이 다른 쪽에서 존재감을 인정 받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 상승효과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어쨌든 원칙적으로... 이런 방식은, 바꾸어서 얘기하면, 그만큼 존재감의 기반이 허약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서 돈이 없거나, 실력이 없으면 금새 잊혀진다. 한 인간이 전인격적으로 그 존재감을 인정받는 경우는 없는가? 현대사회에선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가 그런 기능을 담당하는 것 같다. 현대로 오면서 가족이 해체된다거나 약화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던 것 같은데 [see also SF movies], 가족, 친밀한 관계, 연애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다. 이혼이 잣다는 것은 결혼이나 친밀한 관계에서만큼은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커진 것의 반영이고. 애정, 특별한 감정이 식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자식을 낳는 것에도 갈수록 그런 욕구가 투영되는 것 같다. 지난 수년부터 연예계 유명인사들 중 여자들이 - 특히, 미국에서 - 경쟁적으로 아이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인기고 남편과 애정이고 모두 한 순간이고, 세상에 믿을 것 자기 자식밖에 없다는 그런 심리 아닐까? 너무 나간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마음도 그런 것 같고. 누구에겐가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그런 욕망...
ps2) B.Latour 같은 이는 우리는 한 번도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고 하는데, 그가 근대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는데, 그런 방식은 이제 좀 식상하다. 심지어 내겐 짜증감(?) 유발 원인이기까지 하다. 그런 입장을 'anything goes'ism이라고 불러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네들, 그러니까 'anything goes'ist들은 대개 문제를 제기하거나 뭔가 잔뜩 파헤쳐 놓기만 하고 나머진 "알아서 하셔, 내 알 바 아님" 그러면서 빠진다. 좀 무책임하지 않은가? 처음 시도는 신선한다. 니체나 푸코 정도는 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허나 그 이후론... 내가 여기에서 '근대인'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하니 그 '근대(인)'이란 건 없다던 라투어가 걸려서 뱀발을 달아 둔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2009 여름: 구름, 무지개

산책 나갔다 눈에 띈 풍경. 구름을 헤집고 나오려는 햇볕의 저 기세를 보라!

같은 날, 약 200미터를 더 가서... 이제껏 저렇게 큰 무지개를 본 적이 없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머물러 있던... '우정출연'해준 이름 모를 커플에게도 감사를... ㅎㅎ
ps) 요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특히 구름, 하늘이 변하는 모양새가... 몰랐는데 내가 이런 날씨를 무척 즐긴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면서 '세계'가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덤으로 그런 장면을 찍은 사진 하나... 이건 집 창 밖으로 보였던 장면. (유감스럽게도 조금 흔들렸다).

2009년 7월 11일 토요일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오마이뉴스'에서 가끔씩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는데, 최근에 만난 그닥 유명하지 않은 프랑스 화가에 대한 얘기가 그런 경우였다. 이름이 참 낯선데... 앙셀므 브와-비브 (Anselme Boix-Vives, 1899 - 1969). 우선 최근 열리고 있다는 그 양반 전시회 포스터를 소개한다.

무슨 외계인 그림 같지 않은가? 여하튼 그림 자체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 블로그에 시간과 품을 들여가며 이 화가에 대해서 쓰는 건 '우선' 이 화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 오마이뉴스 기사를 오리고 짜잡기 해서 소개하자면...
"평생을 과일상으로 일했던 노인이 은퇴를 1년 앞둔 63세에 아내를 병으로 잃는다. 갑자기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는 아들에게 잘 나가는 가게를 물려주고 할 일 없이 부엌에서 시간을 허송하고 있었다. 때마침 친구처럼 찾아온 천식이 그를 붙잡고 괴롭혔다.
그의 3남 중 당시 미대에 다니고 있던 아들 미셸이 아버지에게 소일거리로 그림을 권했다. 가끔 젊었을 시절, 가게의 영수증 뒤에 그림을 끼적거렸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잡게 된 붓, 이로 인해 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에 제대로 된 붓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노인은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질색했지만 결국 아들의 권유에 넘어갔다. 그런데 소일거리로 시작했던 그림에 그는 광속도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사망하기 전까지 7년 동안 2400여 점의 그림을 그려냈다.
인간의 내적인 세계를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원시예술'(art primitif) 혹은 '원생미술'(art brut, 다듬어지지 않은 예술)로 구분되는데 그의 야생화 그림은 또 다른 원시 예술 화가인 세라핀 드 상리스(Seraphine De Senlis)의 그림과 희한하게도 닮았다. 하녀 출신의 세라핀도 그처럼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신의 계시를 받고 그려진다고 말한 바 있다. 브와-비브도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저절로 그려져 나온다고 말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그저 이력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과 그 화가에 대한 글을 남길 리가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나를 충동한 건 바로 브와-비브의 발언인데...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 경지가 있는 모양이다. 이 우주에 떠도는 그림, 언어, 음악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화가, 작곡가, 연주가, 시인 등등. 그림, 음악이야 어짜피 '영감'이 좌우하는 영역이니까 그렇다 치고, 언어의 세계는 벌써 차원이 많이 다르다. 허나 시인이 그런 고백을 하는 경우까지는 넉넉히 상상할 수 있겠다. 허나 학술논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철학이나 신학 같은 경우엔 그런 경우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시 말해 형이상학 아니던가. 허나 사회학에서도 가능할까? 이 세상을 떠도는 사회에 대한 언어, 아이디어가 내 몸을 빌어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영감 혹은 '필' (혹은 '휠'^^)을 받아서 신들린 듯이 논문을 써 낸다?

무슨 외계인 그림 같지 않은가? 여하튼 그림 자체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 블로그에 시간과 품을 들여가며 이 화가에 대해서 쓰는 건 '우선' 이 화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 오마이뉴스 기사를 오리고 짜잡기 해서 소개하자면...
"평생을 과일상으로 일했던 노인이 은퇴를 1년 앞둔 63세에 아내를 병으로 잃는다. 갑자기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는 아들에게 잘 나가는 가게를 물려주고 할 일 없이 부엌에서 시간을 허송하고 있었다. 때마침 친구처럼 찾아온 천식이 그를 붙잡고 괴롭혔다.
그의 3남 중 당시 미대에 다니고 있던 아들 미셸이 아버지에게 소일거리로 그림을 권했다. 가끔 젊었을 시절, 가게의 영수증 뒤에 그림을 끼적거렸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잡게 된 붓, 이로 인해 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에 제대로 된 붓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노인은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질색했지만 결국 아들의 권유에 넘어갔다. 그런데 소일거리로 시작했던 그림에 그는 광속도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사망하기 전까지 7년 동안 2400여 점의 그림을 그려냈다.
인간의 내적인 세계를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원시예술'(art primitif) 혹은 '원생미술'(art brut, 다듬어지지 않은 예술)로 구분되는데 그의 야생화 그림은 또 다른 원시 예술 화가인 세라핀 드 상리스(Seraphine De Senlis)의 그림과 희한하게도 닮았다. 하녀 출신의 세라핀도 그처럼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신의 계시를 받고 그려진다고 말한 바 있다. 브와-비브도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저절로 그려져 나온다고 말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그저 이력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과 그 화가에 대한 글을 남길 리가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나를 충동한 건 바로 브와-비브의 발언인데...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 경지가 있는 모양이다. 이 우주에 떠도는 그림, 언어, 음악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화가, 작곡가, 연주가, 시인 등등. 그림, 음악이야 어짜피 '영감'이 좌우하는 영역이니까 그렇다 치고, 언어의 세계는 벌써 차원이 많이 다르다. 허나 시인이 그런 고백을 하는 경우까지는 넉넉히 상상할 수 있겠다. 허나 학술논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철학이나 신학 같은 경우엔 그런 경우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시 말해 형이상학 아니던가. 허나 사회학에서도 가능할까? 이 세상을 떠도는 사회에 대한 언어, 아이디어가 내 몸을 빌어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영감 혹은 '필' (혹은 '휠'^^)을 받아서 신들린 듯이 논문을 써 낸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들...
세상에 '자유'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유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물론 시인 한용운은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라고 얘기하긴 했다. 그 복종은 이유가 있는 복종이다.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내 얘기는 복종하고 싶은 것들에 복종할 수 있는 그 자유를 가로막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내적인 것들이야 어떻게 해 보겠는데, 외적 조건들... 그리 대단한 걸 기대하지도 않는데 신경쓰이게 하는 일들이 있다. 어쩌면 여기 이 자리에선 끈적끈적 따라 붙는 그런 생각이 오히려 적은 편일 것이다. 어떤 분 표현대로 'Nerven'을 더 강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는 '자유롭지 않음' 덕에 비로소 의미를 갖는 상태다. 그러니 가끔씩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그런 상황을 너무 타박할 일만도 아니다.
2009년 7월 9일 목요일
한국 과학기술정책 시대구분
은둔거사 박선생과 대화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인데 한국 과기정책을 내 나름대로 시대구분해본다 (과학정책과 기술정책, 학술 정책 등을 구분해야 하겠으나 일단은 '패스'). 보통 정책기조를 중심으로 10년 단위 혹은 정권 중심으로 구분하는데, 나는 체계이론적 접근을 원용해 보았다. 과학/정치 관계의 변화와 혹은 연속성을 한 편으로 기능적 분화라는 틀 속에서 보고, 그 과학/정치 관계가 어떻게 기술되는지는 의미론 차원으로 이해한다.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연속과 변화를 중심으로 하면 개항 이후 지금까지 크게 네 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개항이후 1950년대까지: 과학 정책이랄 것은 없고, 그저 기술인력 정책, 고등교육 정책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시기. '과학'이라고 경계를 그을만한 활동 자체가 한반도 내에서 극히 제한적이었고... 강한 국가, 없다시피한 과학, 기술... 허나 의미론적으로는 이미 과학을 도구로 여기는 '과학주의' '과학민족주의'가 구한말, 일제시대에 형성되지만, '독립' 같 큰 문제들이 있어서 지배적 담론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2) 박정희 시대 (1960,70년대: 국가 주도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을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기술정책, 과학정책을 펼친 것으로 이해되고, 그 이후 국가와 과학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하나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진 시기.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를 뒷받침할 기술 개발, 기술인력 창출에 더 큰 관심이 있었지만 [특히 초기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설립 등 과학연구 활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틀을 마련한다. 구조적으로 강한 국가, 자율성을 누리는 국가가 과학체계 후견인으로 나선 상황이고, 과학활동은 국가 결정에 크게 좌우된다.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는 과학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담론이 발달됨. 의미론적 연속성이 발견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박정희처럼 민족주의/국가주를 통치이념으로 삼던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사회구조적으로 또 의미론적으로 국가 - 발전지향적 국가 - 의 영향력이 지대함.
(3) 박정희 패러다임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시기 (1988 - 2007): 그 이후 정부는 의미론적으로는, 그러니까 정책 목표랄까..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우에도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이전 정권과 차별적 정책을 추구했지만, 과기정책에서만큼은 옛 아디이어에에 의존한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 '제2 과학기술입국' 담론이 좋은 사례다. 과기정책 만큼 여야, 보수, 진보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드물었다. 정당성과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과기에 대한 투자강화를 내건 것. 이런 측면은 의미론적 차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위로부터의 의미론적 작업의 영향력은 박정희 시기와 비교하면 매우 약해졌다. 구조적 차원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으로 - 특히 민주화 이후 - 정치체계가 여럿 중 하나인 체계로서 그 경계를 만들어 나간다. 즉 '국가' 중심에서 '정치' 중심으로... [다른 정책 분야와는 다르게 과학과 관련해선 국가 주도 과학'정책'이 아닌 과학'정치'의 등장은 매우 늦은 편이었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생명과학/생명공학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인 의미로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 역시 독자적 체계로서 그 입지 혹은 경계를 분명히 만들어 간다. 하지만 국가는 정책 패러다임 혹은 의미론에 있에서 여전히 박정희식 틀을 좇는다. 의미론적 연속성, 구조적 불연속성! 이런 위로부터 의미론적 작업은 큰 반향을 얻지 못한다. '약발'이 떨어진 것... 실제 세계적인 과학 업적을 낸 황우석 같은 이가 - 일견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이는 - 민족주의 담론을 구사할 때 비로소 그 담론이 '먹힌다'. 과학민족주의, 애국주의적 감수성이 만들어 지는 것. 과학민족주의라는 외형은 달리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만들어지고, 지배적 담론화되는 메카니즘이 달라지는 것. 황우석은 민주화 이후로 열려진 공간을 이용한다.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대중에 직접 접근. 그것을 국가는 자신들의 정책에 이용.
다른 한편 과학/정치의 사회구조적 변화는 의미론적 복잡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생명공학과 관련된 생명윤리 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 이런 과학, 정치 관계의 변화, 의미론 간의 갈등/긴장이 극적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 황우석 사건이다.
(4) 2008 이후 2mb 정부. 우리 이명박 정부는 참으로 한국 과기정책의 한 장을 새로 '여셨다'. 이전 정부들이 해 오던 과학, 기술의 중요성 강조, 과학기술 대중화 등을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낀다. 심지어 과기부를 없애려고 하려다, 교육과학기술부로 겨우 살려두지 않았던가.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당성의 결함이나 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한국 최초의 본격적 계급정권답게 국가주의/민족주의 같은 건 '전체주의'나 과거 유산으로 이해하고 '계신 듯'. 친미, 친일 성향도 이젠 감출 의사도 없는 듯하다. Wie cool! 어쩌면 기능적 분화, 과학-정치의 분화가 한국사회에서 절정에 다다른 듯. 다른 한편 일부 발전국가적 속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후퇴, 파시즘의 전조가 보인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 과기정책에 있어서도 학술진흥재단, 과학재단을 합쳐서 한국연구재단을 만들려고 하고 이는 국가 개입 여지를 더 넓히는 의도임을 지적하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 편 '삽질'에 대한 본원적 신뢰 때문에 '과기정책' 따위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혹은 '삽질'도 고도기술, 정밀과학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누가 2mb 정부가 퇴행적이라고만 몰아부치는가. 이 정부는 개항이후 한반도를 지배하던 '과학기술입국'이라는 '낡은 패러다임'과 작별을 고하며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삽질입국'의 새 장을 열어 젖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2mb여, 소인배들의 비판에 너무 슬퍼마시라. 역사가 그대를 평가할 것이다!
ps) '삽질 우대'에 밀려 '과기정책'이 찬밥 신세지만 요즘 뜨는 정책분야가 있다. '문화정책'. 그 동안 문화부가 제대로 대접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2mb의 문화를 중시하는 '마인드'는 아무리 격려해도 부족할 터. 언론보도를 보시라. 하루 건너 유인촌 장관 얘기가 나오질 않는가. 심지어 차관까지 유명해졌다. 신재민. 다른 부서는 장관 이름도 기억 못하질 않나. 김구 선생인가? 문화를 아는 국민,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오랜 꿈이 드디어 2mb 아래에서 이루어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문화부 장관이 이렇게 유명한 나라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2mb여. 그대는 진정한 문화대통령이올소이다.
ps2: [2009.9.1]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 적어도 내게는^^ - 2mb 정권에서도 과기쪽에 대한 지원은 상당한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747 공약을 가지고 있다면,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577 기본계획이라는 게 있다. 2012년까지 연구개발비를 GDP의 5%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삽질 경제’라고 불리는 현 경제 기조에서 각종 복지 지출이 알게 모르게 삭감되고 있으며, 돌봄 노동에 대한 지출은 위기에 처해 있고, 각종 공기업 및 공적 장치가 민영화 위기에 놓인 데 비하면, 연구개발의 경우는 어쨌든 걱정이 없다. 실제로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GDP에서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5%까지 올라간다면 정말로 과학기술 분야 지출만은 세계 최고가 되는 셈이다." 오늘은 또 IT 쪽에 대한 수십조원 투자계획을 확인하였다. 과기정책 쪽의 연속성은 정말 대단하다.
(1) 개항이후 1950년대까지: 과학 정책이랄 것은 없고, 그저 기술인력 정책, 고등교육 정책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시기. '과학'이라고 경계를 그을만한 활동 자체가 한반도 내에서 극히 제한적이었고... 강한 국가, 없다시피한 과학, 기술... 허나 의미론적으로는 이미 과학을 도구로 여기는 '과학주의' '과학민족주의'가 구한말, 일제시대에 형성되지만, '독립' 같 큰 문제들이 있어서 지배적 담론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2) 박정희 시대 (1960,70년대: 국가 주도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을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기술정책, 과학정책을 펼친 것으로 이해되고, 그 이후 국가와 과학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하나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진 시기.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를 뒷받침할 기술 개발, 기술인력 창출에 더 큰 관심이 있었지만 [특히 초기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설립 등 과학연구 활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틀을 마련한다. 구조적으로 강한 국가, 자율성을 누리는 국가가 과학체계 후견인으로 나선 상황이고, 과학활동은 국가 결정에 크게 좌우된다.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는 과학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담론이 발달됨. 의미론적 연속성이 발견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박정희처럼 민족주의/국가주를 통치이념으로 삼던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사회구조적으로 또 의미론적으로 국가 - 발전지향적 국가 - 의 영향력이 지대함.
(3) 박정희 패러다임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시기 (1988 - 2007): 그 이후 정부는 의미론적으로는, 그러니까 정책 목표랄까..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우에도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이전 정권과 차별적 정책을 추구했지만, 과기정책에서만큼은 옛 아디이어에에 의존한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 '제2 과학기술입국' 담론이 좋은 사례다. 과기정책 만큼 여야, 보수, 진보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드물었다. 정당성과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과기에 대한 투자강화를 내건 것. 이런 측면은 의미론적 차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위로부터의 의미론적 작업의 영향력은 박정희 시기와 비교하면 매우 약해졌다. 구조적 차원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으로 - 특히 민주화 이후 - 정치체계가 여럿 중 하나인 체계로서 그 경계를 만들어 나간다. 즉 '국가' 중심에서 '정치' 중심으로... [다른 정책 분야와는 다르게 과학과 관련해선 국가 주도 과학'정책'이 아닌 과학'정치'의 등장은 매우 늦은 편이었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생명과학/생명공학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인 의미로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 역시 독자적 체계로서 그 입지 혹은 경계를 분명히 만들어 간다. 하지만 국가는 정책 패러다임 혹은 의미론에 있에서 여전히 박정희식 틀을 좇는다. 의미론적 연속성, 구조적 불연속성! 이런 위로부터 의미론적 작업은 큰 반향을 얻지 못한다. '약발'이 떨어진 것... 실제 세계적인 과학 업적을 낸 황우석 같은 이가 - 일견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이는 - 민족주의 담론을 구사할 때 비로소 그 담론이 '먹힌다'. 과학민족주의, 애국주의적 감수성이 만들어 지는 것. 과학민족주의라는 외형은 달리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만들어지고, 지배적 담론화되는 메카니즘이 달라지는 것. 황우석은 민주화 이후로 열려진 공간을 이용한다.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대중에 직접 접근. 그것을 국가는 자신들의 정책에 이용.
다른 한편 과학/정치의 사회구조적 변화는 의미론적 복잡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생명공학과 관련된 생명윤리 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 이런 과학, 정치 관계의 변화, 의미론 간의 갈등/긴장이 극적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 황우석 사건이다.
(4) 2008 이후 2mb 정부. 우리 이명박 정부는 참으로 한국 과기정책의 한 장을 새로 '여셨다'. 이전 정부들이 해 오던 과학, 기술의 중요성 강조, 과학기술 대중화 등을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낀다. 심지어 과기부를 없애려고 하려다, 교육과학기술부로 겨우 살려두지 않았던가.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당성의 결함이나 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한국 최초의 본격적 계급정권답게 국가주의/민족주의 같은 건 '전체주의'나 과거 유산으로 이해하고 '계신 듯'. 친미, 친일 성향도 이젠 감출 의사도 없는 듯하다. Wie cool! 어쩌면 기능적 분화, 과학-정치의 분화가 한국사회에서 절정에 다다른 듯. 다른 한편 일부 발전국가적 속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후퇴, 파시즘의 전조가 보인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 과기정책에 있어서도 학술진흥재단, 과학재단을 합쳐서 한국연구재단을 만들려고 하고 이는 국가 개입 여지를 더 넓히는 의도임을 지적하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 편 '삽질'에 대한 본원적 신뢰 때문에 '과기정책' 따위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혹은 '삽질'도 고도기술, 정밀과학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누가 2mb 정부가 퇴행적이라고만 몰아부치는가. 이 정부는 개항이후 한반도를 지배하던 '과학기술입국'이라는 '낡은 패러다임'과 작별을 고하며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삽질입국'의 새 장을 열어 젖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2mb여, 소인배들의 비판에 너무 슬퍼마시라. 역사가 그대를 평가할 것이다!
ps) '삽질 우대'에 밀려 '과기정책'이 찬밥 신세지만 요즘 뜨는 정책분야가 있다. '문화정책'. 그 동안 문화부가 제대로 대접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2mb의 문화를 중시하는 '마인드'는 아무리 격려해도 부족할 터. 언론보도를 보시라. 하루 건너 유인촌 장관 얘기가 나오질 않는가. 심지어 차관까지 유명해졌다. 신재민. 다른 부서는 장관 이름도 기억 못하질 않나. 김구 선생인가? 문화를 아는 국민,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오랜 꿈이 드디어 2mb 아래에서 이루어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문화부 장관이 이렇게 유명한 나라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2mb여. 그대는 진정한 문화대통령이올소이다.
ps2: [2009.9.1]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 적어도 내게는^^ - 2mb 정권에서도 과기쪽에 대한 지원은 상당한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747 공약을 가지고 있다면,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577 기본계획이라는 게 있다. 2012년까지 연구개발비를 GDP의 5%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삽질 경제’라고 불리는 현 경제 기조에서 각종 복지 지출이 알게 모르게 삭감되고 있으며, 돌봄 노동에 대한 지출은 위기에 처해 있고, 각종 공기업 및 공적 장치가 민영화 위기에 놓인 데 비하면, 연구개발의 경우는 어쨌든 걱정이 없다. 실제로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GDP에서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5%까지 올라간다면 정말로 과학기술 분야 지출만은 세계 최고가 되는 셈이다." 오늘은 또 IT 쪽에 대한 수십조원 투자계획을 확인하였다. 과기정책 쪽의 연속성은 정말 대단하다.
2009년 7월 8일 수요일
이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 (?)
이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 시사 IN 최근호 기사 제목이다.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서는 무척 무식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층 더... 일부 내용을 오려 둔다.
"이란은 아랍 국가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아랍이라고 하면 이집트,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22개국을 뜻하는 말이다. 아랍어를 쓰며 서로를 ‘형제 국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 아랍 국가와 민족·언어·역사가 다르다. 이란인은 ‘파르시’라고 해서 아랍어와 전혀 다른 언어를 쓴다. 외모도 차이가 난다. 역사도 달라 이란은 스스로를 페르시아의 후예라고 믿는다.
이란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위는 이란에 사는 유태인들이 유월절을 기념하는 장면.
이란은 유대교를 탄압한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이란 모슬렘 사회가 유태인이나 유대교를 탄압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이란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현재 이란에는 유태인이 5만명가량 사는 것으로 추산되고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곳곳에 유태인 사원이 있다. 유태인들은 전통에 따라 유대교 예배를 본다. 유태인 국회의원도 있다.
이란계 유태인들은 스스로가 이스라엘 국가보다 더 오랜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데, 이란계 유태인의 역사는 구약성서에 나와 있다. 올해 초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을 비판했다.
이란은 최악의 독재국가다? 최근 민주화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모습을 보면 이란은 분명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주변 중동 국가와 비교해보면 이란은 이 지역에서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나라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이번 대선 캠페인 때에도 후보들은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했다.."
이란은 핵무기 때문에 북한과 더불어 미국에게 찍힌 나라다(맞나?). 그러니 너무도 미국 편향적인 한국 대중매체에선 더더욱 이란 우호적 뉴스를 접할 기회가 적을 것이다. "아랍에는 왕정 국가가 많은데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왕과 왕자들이 석유로 얻은 부를 독식하며 권력을 세습한다. 하지만 백악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민주화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기는 힘들다" '민주주의', '자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것처럼 얘기하는 이들의 말과 실제 정책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음이 '뽀록'난지오래 되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ps) 왠지 시사IN 기사에서 이란이 내 상식/지식에 비추어 볼 때 너무 긍정적으로 묘사되어서 찜찜하던 차에 프레시안 기사를 만났다.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아자르 나피지 지음, 한숲) 소개 기사 (여기). 일부를 인용한다.
1979년 이란의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서구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팔라비 왕조를 축출했다. 호메니이 옹은 최고 정치 지도자로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신정(神政)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삼고 이란을 통치하기 시작한다. 팔라비 왕조 시대가 받아들였던 서구의 가치들을 일소하였고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그때그때의 명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했던 정치적 반대파들은 잔혹하게 숙청하였다.
호메니이 옹의 정치 기조에 반대했던 많은 이들이 끌려가 고문당하고 공개 처형되거나 암살되어 길거리에 버려졌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들은 금지된다. 서방의 노래나 영화를 듣거나 보아서도 안 되고 팔라비 왕조 시대에 비교적 큰 자유를 누렸던 여성들은 주어졌던 자유를 빼앗긴다. 팔라비 왕조에서 장관직을 맡았던 한 여성은 길거리에서 돌을 맞고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앞 기사에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이번 대선 캠페인 때에도 후보들은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했다"라고 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언젠가 본 이란혁명기 전후를 다룬 흑백애니메이션 "Persepolisi"(2007)의 시선은 '아자르 나피지'에 훨씬 가까웠다.
내친 김에 이란 현대사에 대해서 좀 더 찾아 보았다 (여기). 그랬더니 (현재) 결론은... 팔레비왕조(1926∼79)나 이슬람 혁명 이후 공화국이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공화국 시절이 낫지 않나 하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르세폴리스'의 경우 소년의 시선이라서 그런지 이슬람 혁명 이후가 더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가족사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공산주의자인 마잔의 할아버지는 팔레비 왕조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죽었다. 마잔의 삼촌 역시 9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이란 혁명 이후 풀려난다." 허나 그 삼촌도 결국 호메이니 치하에서 처형당하니까...). 어쨌든 마잔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있는 집'이긴 하다.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만,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로 좀 더 분명해졌다.^^ 물론 영화는 역사도 정치도 아니다. '페르세폴리스'는 매우 잘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의 미적 성취를 한 단계 높인 영화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자전적 내용이고, 초점을 개인에 맞추면 감상하고 감동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이란 현대사에 대해 극명하게 엇갈린 시선 속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를 영화로만 보기가 쉽지 않다.
독재가 또 다른 독재를,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 그런 악순환이 중동 현대사에선 너무도 자주 관찰된다. 이란,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는 2mb 정권이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너무 안이한 평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누가 정권을 잡든 군사 쿠테타가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불과 30년 전인 1979년에 '12.12.'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진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mb 정부 들어서 퇴행적인 모습이 자주 관찰되고 심지어 우파파시즘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있지만, 그래도 30년 전, 혹은 그 이전 상태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진 못하리라.
"이란은 아랍 국가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아랍이라고 하면 이집트,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22개국을 뜻하는 말이다. 아랍어를 쓰며 서로를 ‘형제 국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 아랍 국가와 민족·언어·역사가 다르다. 이란인은 ‘파르시’라고 해서 아랍어와 전혀 다른 언어를 쓴다. 외모도 차이가 난다. 역사도 달라 이란은 스스로를 페르시아의 후예라고 믿는다.
이란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위는 이란에 사는 유태인들이 유월절을 기념하는 장면.
이란은 유대교를 탄압한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이란 모슬렘 사회가 유태인이나 유대교를 탄압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이란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현재 이란에는 유태인이 5만명가량 사는 것으로 추산되고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곳곳에 유태인 사원이 있다. 유태인들은 전통에 따라 유대교 예배를 본다. 유태인 국회의원도 있다.
이란계 유태인들은 스스로가 이스라엘 국가보다 더 오랜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데, 이란계 유태인의 역사는 구약성서에 나와 있다. 올해 초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을 비판했다.
이란은 최악의 독재국가다? 최근 민주화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모습을 보면 이란은 분명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주변 중동 국가와 비교해보면 이란은 이 지역에서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나라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이번 대선 캠페인 때에도 후보들은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했다.."
이란은 핵무기 때문에 북한과 더불어 미국에게 찍힌 나라다(맞나?). 그러니 너무도 미국 편향적인 한국 대중매체에선 더더욱 이란 우호적 뉴스를 접할 기회가 적을 것이다. "아랍에는 왕정 국가가 많은데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왕과 왕자들이 석유로 얻은 부를 독식하며 권력을 세습한다. 하지만 백악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민주화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기는 힘들다" '민주주의', '자유'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것처럼 얘기하는 이들의 말과 실제 정책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음이 '뽀록'난지오래 되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ps) 왠지 시사IN 기사에서 이란이 내 상식/지식에 비추어 볼 때 너무 긍정적으로 묘사되어서 찜찜하던 차에 프레시안 기사를 만났다.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아자르 나피지 지음, 한숲) 소개 기사 (여기). 일부를 인용한다.
1979년 이란의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서구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팔라비 왕조를 축출했다. 호메니이 옹은 최고 정치 지도자로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신정(神政)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삼고 이란을 통치하기 시작한다. 팔라비 왕조 시대가 받아들였던 서구의 가치들을 일소하였고 어지러운 정치 상황에서 그때그때의 명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했던 정치적 반대파들은 잔혹하게 숙청하였다.
호메니이 옹의 정치 기조에 반대했던 많은 이들이 끌려가 고문당하고 공개 처형되거나 암살되어 길거리에 버려졌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들은 금지된다. 서방의 노래나 영화를 듣거나 보아서도 안 되고 팔라비 왕조 시대에 비교적 큰 자유를 누렸던 여성들은 주어졌던 자유를 빼앗긴다. 팔라비 왕조에서 장관직을 맡았던 한 여성은 길거리에서 돌을 맞고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앞 기사에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했고, 이번 대선 캠페인 때에도 후보들은 자유롭게 정부를 비판했다"라고 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언젠가 본 이란혁명기 전후를 다룬 흑백애니메이션 "Persepolisi"(2007)의 시선은 '아자르 나피지'에 훨씬 가까웠다.
내친 김에 이란 현대사에 대해서 좀 더 찾아 보았다 (여기). 그랬더니 (현재) 결론은... 팔레비왕조(1926∼79)나 이슬람 혁명 이후 공화국이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공화국 시절이 낫지 않나 하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페르세폴리스'의 경우 소년의 시선이라서 그런지 이슬람 혁명 이후가 더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가족사로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공산주의자인 마잔의 할아버지는 팔레비 왕조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죽었다. 마잔의 삼촌 역시 9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이란 혁명 이후 풀려난다." 허나 그 삼촌도 결국 호메이니 치하에서 처형당하니까...). 어쨌든 마잔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있는 집'이긴 하다.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만,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다는 사실로 좀 더 분명해졌다.^^ 물론 영화는 역사도 정치도 아니다. '페르세폴리스'는 매우 잘 만든 영화, 애니메이션의 미적 성취를 한 단계 높인 영화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자전적 내용이고, 초점을 개인에 맞추면 감상하고 감동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이란 현대사에 대해 극명하게 엇갈린 시선 속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를 영화로만 보기가 쉽지 않다.
독재가 또 다른 독재를,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 그런 악순환이 중동 현대사에선 너무도 자주 관찰된다. 이란,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는 2mb 정권이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너무 안이한 평가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누가 정권을 잡든 군사 쿠테타가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불과 30년 전인 1979년에 '12.12.'가 있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진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mb 정부 들어서 퇴행적인 모습이 자주 관찰되고 심지어 우파파시즘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있지만, 그래도 30년 전, 혹은 그 이전 상태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진 못하리라.
2009년 7월 6일 월요일
민족주의...
일단 조선/한국의 근대를 개항/갑오경장/대한제국 무렵에서 시작되어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적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볼 때, 의미론적 변화, 그 중에서도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선 민족주의의 변화는 아주 거칠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1) 일제시대 때 대중민족주의 (2) 박정희 시대와 그 전후로의 관주도 민족주의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 반미, 저항 민족주의] (3) 90년대 이후 대중 민족주의 [2002 월드컵, 황우석 사태 등]. 동시에 일제 시대라고 해서 늘 '독립'만 얘기했던 것은 아니니 - '서울에 딴스홀을 허라라' 등을 볼 것 - 여러 근대적 의미론의 성립은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지속성을 찾아 볼 수 있기도 할 것이다.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
최근 한국에서 나온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해서 뭔가를 써야 하는데, 도대체 밑천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조선말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박정희시대를 다룬 여러 논문을 '섭렵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논문들에 대한 접근 통로를 '열어 준' P군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비록 생각 이상 오래 걸려서 '데미지'도 적진 않지만, 얻은 게 훨씬 더 많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 동안 나름 한국 학계 동향을 좇아가려고 애쓴 편이긴 하나 그런 노력이 얼마나 미흡했는지 '처절하게' 반성하기도 했다. 한국 학계의 연구 수준, 논의 수준에 많이 놀랐다. 특히 내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 근대(성)'의 태동기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많아서 무척 반가웠다. '경제'나 '정치'가 아닌 '문화'적 접근이라고 할까. 그 동안 식민지 시기를 다루는 데 큰 방해였던 이념 혹은 규범적 굴레에서 퍽 자유로워 보이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민족' '국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매우 유연하게 다룬다. 그 중에서 특히 큰 '감동'을 준 소장 학자 두 명만 언급한다: 권보드래, 천정환. 그들의 단행본 저작을 소개하면...
권보드래 (2000),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소명출판
권보드래 (2003),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천정환 (2003),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천정환 (2005), 끝나지 않은 신드롬: 친일과 반일을 넘어선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 푸른역사
천정환 (2008), 대중지성의 시대. 푸른역사.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강박증 비슷한 걸 '소유'하게 된 나로선 이처럼 '꼼꼼한' 연구들이 많이 쌓이는 건 무척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연애'의 의미변화에 대한 권보드래의 언급을 읽으면서 루만의 "Liebe als Passion"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반도 맥락에서 '발굴'된 사실들을 - 루만이 했던 것처럼 - 하나의 이론으로 꿸 수는 없을까... 허나 이런 연구들은 한 편으로는, 예를 들어, 친일/반일 같은 선경험적인 이해틀을 넘어 서길 요구하지만, 동시에 성급한 이론화도 경계하는 것 같다. 이 시기 민중 삶의 다양한 지층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일차적' 의의를 두는 것 같고... 이런 입장이 이른 바 '탈식민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여전히 분명한 '입장' 밝히기를 요구받는 한국 풍토에서 보면 분명 이쪽 저쪽에서 두루 '욕 먹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관심과 지향에 대해선 '성급한 이론화'라는 비난의 전형적 사례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접근의 물꼬를 튼 연구로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김진송, 1999, 현실문화연구)를 들 수 있겠다. 이 책을 서점에서 들어 보고선 '흥. 누가 이런 가벼운 책을 읽는다고...' 류의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원래 기억은 늘 현재형이니 알아서들...). '트렌드'를 읽는 감각이 참으로 둔했던 것.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신명직, 2003, 현실문화연구)도 '연애의 시대'와 같은 해에 나왔다. 이런 류의 식민지 문화적 일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영화로 'spill over'되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경성 스캔들 (2007), 기담 (2007), 원스 어폰 어 타임 (2008), 라듸오 데이즈 (2008), 모던보이 (2008), 그림자 살인 (2009). 금시초문이나 '경성기방 영화관'(2008)이란 TV 드라마도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계 '경성 트렌드'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를 보니 문학 쪽에서도 그런 듯. "출판계에서는 이미 앞서 말한 [경성애사]나 [경성 트로이카], [경성기담],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처럼 소설 혹은 교양인문서적의 형태로 경성을 그리는 책들이 스테디셀러에 오른 지 오래이며, 이런 책들에 일종의 선구자격 노릇을 했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이미 1999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10년 가까이 경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축적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글에서 보니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대중문화콘텐츠의 제작은 세계적인 유행"이란 견해도 있는 모양이다. 내 '나와바리'가 아니니 남들이 얘기하는 장단에 맞춰 춤을 출 밖에...
좀 다른 맥락에서 적어 놓을 이야기 하나. 며칠 전 읽은 논문이 민족주의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더불어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을 지니고 있어서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윤혜준 (1999), '스포츠'와 대중민족주의, 사회비평 제20권: 194~208. 저자는 현재 연세대 영문과 교수 (그 무렵엔 외대). 그러고 보니 제목은 너무도 범상해서 유려한 문체와 어울리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권보드래, 천정환의 경우에도 문장이 좋다. 빼어난 내용에 외양까지 멋들어지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능력, 부럽다.
권보드래 (2000),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소명출판
권보드래 (2003),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천정환 (2003),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천정환 (2005), 끝나지 않은 신드롬: 친일과 반일을 넘어선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 푸른역사
천정환 (2008), 대중지성의 시대. 푸른역사.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강박증 비슷한 걸 '소유'하게 된 나로선 이처럼 '꼼꼼한' 연구들이 많이 쌓이는 건 무척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연애'의 의미변화에 대한 권보드래의 언급을 읽으면서 루만의 "Liebe als Passion"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반도 맥락에서 '발굴'된 사실들을 - 루만이 했던 것처럼 - 하나의 이론으로 꿸 수는 없을까... 허나 이런 연구들은 한 편으로는, 예를 들어, 친일/반일 같은 선경험적인 이해틀을 넘어 서길 요구하지만, 동시에 성급한 이론화도 경계하는 것 같다. 이 시기 민중 삶의 다양한 지층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일차적' 의의를 두는 것 같고... 이런 입장이 이른 바 '탈식민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여전히 분명한 '입장' 밝히기를 요구받는 한국 풍토에서 보면 분명 이쪽 저쪽에서 두루 '욕 먹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관심과 지향에 대해선 '성급한 이론화'라는 비난의 전형적 사례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접근의 물꼬를 튼 연구로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김진송, 1999, 현실문화연구)를 들 수 있겠다. 이 책을 서점에서 들어 보고선 '흥. 누가 이런 가벼운 책을 읽는다고...' 류의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원래 기억은 늘 현재형이니 알아서들...). '트렌드'를 읽는 감각이 참으로 둔했던 것.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신명직, 2003, 현실문화연구)도 '연애의 시대'와 같은 해에 나왔다. 이런 류의 식민지 문화적 일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영화로 'spill over'되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경성 스캔들 (2007), 기담 (2007), 원스 어폰 어 타임 (2008), 라듸오 데이즈 (2008), 모던보이 (2008), 그림자 살인 (2009). 금시초문이나 '경성기방 영화관'(2008)이란 TV 드라마도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계 '경성 트렌드'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를 보니 문학 쪽에서도 그런 듯. "출판계에서는 이미 앞서 말한 [경성애사]나 [경성 트로이카], [경성기담],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처럼 소설 혹은 교양인문서적의 형태로 경성을 그리는 책들이 스테디셀러에 오른 지 오래이며, 이런 책들에 일종의 선구자격 노릇을 했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이미 1999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10년 가까이 경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축적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글에서 보니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대중문화콘텐츠의 제작은 세계적인 유행"이란 견해도 있는 모양이다. 내 '나와바리'가 아니니 남들이 얘기하는 장단에 맞춰 춤을 출 밖에...
좀 다른 맥락에서 적어 놓을 이야기 하나. 며칠 전 읽은 논문이 민족주의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더불어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을 지니고 있어서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윤혜준 (1999), '스포츠'와 대중민족주의, 사회비평 제20권: 194~208. 저자는 현재 연세대 영문과 교수 (그 무렵엔 외대). 그러고 보니 제목은 너무도 범상해서 유려한 문체와 어울리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권보드래, 천정환의 경우에도 문장이 좋다. 빼어난 내용에 외양까지 멋들어지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능력, 부럽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로쟈 블로그에서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을 다룬 책 '운명의 날'(니콜라스 시라디, 2009) 출간 소식을 접했다. 원제는 "The Last Day: Wrath, Ruin, and Reason in the Great Lisbon Earthquake of 1755" (Nicholas Shrady)이고 지난 해 4월에 출간되었다. '해리포터'도 아닌 이런 인문학 분야 책도 1년 만에 한글어 번역이 나온다니... 그동안 조국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로 높았졌다고 생각하며 좋아해야 할까? 그러기엔 뭔가 석연찮다는 느낌을 '자아내는' 드는 그런 '시츄에이션' 아닌가? 어쨌든 1755년에 리스본 대지진에 대해서 쓴 책, 그 책 소개 기사를 갈무리 해두는 데엔 나름 이유가 있다. 며칠 전에 우연히 읽었던 루만 논문에 이 지진이 언급되었던 것.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대략 '리스본 이후 세계는 더 이상 그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류의 내용이었던 듯. 책(기사)에서는 "리스본 대지진이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사건"이었다고 얘기한다.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 칸트, 루소 등 유럽 당대의 지식인들이 신의 섭리로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낙관주의를 버리게 됐고 자애로운 신이 세상과 인간을 주관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됐다고 설명한다." 로쟈에 따르면 지그문트 바우만도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에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고 한다. 이네들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는 사건들을 '교양' 혹은 '상식'이라고 챙기는 건 이젠 청산해야 할 구습으로 치부되는 형편이지만, 이네들이 얘기하는 얘기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은 갈수록 더 중요해지지 않는가.
연합뉴스(09. 07. 05) 유럽을 뒤흔든 1755년 리스본 대지진
1755년 11월1일 오전 9시30분. 기독교 축일인 만성절을 맞아 포르투갈 리스본의 성당들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신자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예배가 시작된 직후, 진동이 리스본 전체를 강타했다. 이어 지진과 해일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국제도시 리스본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당시 리스본 인구는 25만명. 그 중 10%인 2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기사와 판화로 접한 유럽 사람들은 집단적인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괴테는 리스본 지진이 불러일으킨 반향에 대해 "그 어떤 악령도 이만큼 신속하고 강력하게 세상을 공포에 빠뜨리진 못할 것이다"라고 썼다.
건축비평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인 최근 번역 출간된 '운명의 날'(에코의서재 펴냄)에서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 칸트, 루소 등 유럽 당대의 지식인들이 신의 섭리로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낙관주의를 버리게 됐고 자애로운 신이 세상과 인간을 주관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됐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하느님의 신성한 계획 어디에 이런 재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비로운 하느님이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폐허에 깔려 죽게 하고 성난 파도와 화마의 불길로 죽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신앙의 도시로 유명한 리스본에 왜 그런 재앙을 내리셨을까?"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의 영향은 유럽의 사상계에만 미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포르투갈 총리 폼발 후작의 지휘 아래 근대적 재난 피해조사가 실시됐고 근대적인 도시계획으로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전 유럽 시민들의 관심을 모은 이 사건은 국제적 재난 구호 원조의 시발점이자 유럽 국가들이 사회제도와 도시를 재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이 뿌리깊은 종교적 통념의 권위를 뒤흔들었으며 계몽주의 사상의 낙관주의에도 타격을 입혔다면서 자연재해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징벌로 해석하는 견해가 아직 남아있다고 경계한다. "리스본 지진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재앙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신의 섭리고(sic, -> 도?), 형이상학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분노도 아닌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다."(김윤구기자)
09. 07. 05
연합뉴스(09. 07. 05) 유럽을 뒤흔든 1755년 리스본 대지진
1755년 11월1일 오전 9시30분. 기독교 축일인 만성절을 맞아 포르투갈 리스본의 성당들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신자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예배가 시작된 직후, 진동이 리스본 전체를 강타했다. 이어 지진과 해일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국제도시 리스본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
당시 리스본 인구는 25만명. 그 중 10%인 2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기사와 판화로 접한 유럽 사람들은 집단적인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괴테는 리스본 지진이 불러일으킨 반향에 대해 "그 어떤 악령도 이만큼 신속하고 강력하게 세상을 공포에 빠뜨리진 못할 것이다"라고 썼다.
건축비평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인 최근 번역 출간된 '운명의 날'(에코의서재 펴냄)에서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 칸트, 루소 등 유럽 당대의 지식인들이 신의 섭리로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낙관주의를 버리게 됐고 자애로운 신이 세상과 인간을 주관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됐다고 설명한다.
"도대체 하느님의 신성한 계획 어디에 이런 재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비로운 하느님이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폐허에 깔려 죽게 하고 성난 파도와 화마의 불길로 죽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신앙의 도시로 유명한 리스본에 왜 그런 재앙을 내리셨을까?"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의 영향은 유럽의 사상계에만 미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포르투갈 총리 폼발 후작의 지휘 아래 근대적 재난 피해조사가 실시됐고 근대적인 도시계획으로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전 유럽 시민들의 관심을 모은 이 사건은 국제적 재난 구호 원조의 시발점이자 유럽 국가들이 사회제도와 도시를 재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이 뿌리깊은 종교적 통념의 권위를 뒤흔들었으며 계몽주의 사상의 낙관주의에도 타격을 입혔다면서 자연재해를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징벌로 해석하는 견해가 아직 남아있다고 경계한다. "리스본 지진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재앙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신의 섭리고(sic, -> 도?), 형이상학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분노도 아닌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다."(김윤구기자)
09. 07. 05
2009년 7월 2일 목요일
'척'하기...
아,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갔단 말인가... 시간은 가고, 나이는 먹고... 게다가 나이는 이제 피부나 배살로 먹을 뿐 내 심성이나 성품은 언제부터인가 정체상태인 것 같다. 그리 어른스러워지지 않는 듯... '어른스럽다'는 건 긍정적, 부정적 의미를 모두 담고 있으니 반드시 슬퍼할 일만은 아니긴 하지만... 어릴 적엔 어른들도 계속 더 성숙하는 줄 알았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실제로 그랬다간 모든 인간이 노년에 이르면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겠지.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싫고, 좋은 것, 각양각종 감정을 잘 못감춘다는 것. 그러니 '어른스럽다'는 건 자기 감정을 - 좋은 표현으로는 - 잘 '조절'하거나 '절제'하는 상태, 때로는 '척하기'도 해야 하는 그런 상태를 일컫는다. 사람에 대한 좋음/싫음, 상황에 대한 인정/불인정의 쌍 중에 후자 쪽으로 기우는 상황이고 그것을 잘 감추지 못하는 경우 위기, 갈등이 발생한다 (내적, 외적...).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좋아하고, 인정하는 '척'을 하는 '어른스러운' 방식도 있지만, 그게 잘 안 될 경우엔 차라리 좋아해 버리고, 인정해 버리는 쪽을 택하는 수도 있다.
2009년 7월 1일 수요일
Systemtheorie Remix
체계이론은 사실 가장 '쿨'하게 표현될 수 있는 사회이론 중 하나이다. 스스로 여타 학문과 소통을 강조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라 오히려 본류 사회이론과 교집합이 적은 것 같기도 하지만 - 특히, 그 독특한 개념들 때문에 - 바로 그게 장점이고 그 장점을 잘 살리면 이른 바 '통섭 학문' 시대에 크게 각광받을 수 있는 학문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듣고 있다^^. 여러 '장르'로 변형, 변이되는 사례들을 꽤 길게 나열할 수 있을텐데 여기 그 목록에 덧붙일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나름 쿨한 체계이론을 만들어 나가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Dirk Baecker의 인터뷰를 가지고서 누군가가 멋진 그래픽과 편집 기술을 이용해서 작품 하나를 만들어 낸 것. Weiter so...! (Baecker 인터뷰 영상은 여기). Baecker 작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겠으나 그가 독특한 체계이론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
Cicero-Ranking 2007
Ciceroa라는 잡지가 독일 '지식인들'의 영향력 순위를 매년 매기는 모양이다 (Die Liste der 500 führenden deutschsprachigen Intellektuellen). 2007년도 결과를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결과 보기). '정치문화를 위한 잡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Cicero'가 얼마나 신뢰할만한지 잘 모르겠지만, 대략 조사 방법 등을 읽어보니 아주 허접하진 않은 것 같다. 이 결과를 내기 위해서 160개에 달하는 독일어권 신문과 잡지에서 그 인물이 얼마나 자주 다뤄지는 지를 조사했다고 한다. 인터넷 인용도도 조사했다고 하는데, 구체적 방법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Intellektuelle'(지식인?)이란 카데고리 자체가 매우 모호하기 그지 없다는 것이 그 리스트에 오른 인사를 면면을 살펴 보면 분명해진다. 비슷한 '짓'을 Frankfurter Allgemeine Sonntagszeitung 도 해서 지난 2007.1.27 신문에 발표한 모양이다. 이 경우는 100명을 선정했다. 주로 google 등 인터넷 검색 결과 수로 매긴 모양인데, Dirk Baecker가 80위에 올랐다고 '자랑스럽게' 기록해 두어서 알게 되었다 (여기). Cicero-Ranking 2007에선 478위를 기록했다.
Cicero 2007년도 리스트에서 10위까지만 기록해 둔다 (2008년도 리스트는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순위 옆은 전년도와 비교한 등락폭).
1. + 13 Joseph Ratzinger,Papst Benedikt XVI.
2. + 2 Martin Walser, Schriftsteller
3. - 2 Günter Grass, Schriftsteller
4. - 2 Harald Schmidt, Satiriker
5. - 2 Marcel Reich-Ranicki, Literaturkritiker
6. - 1 Peter Handke, Schriftsteller
7. + 1 Elfriede Jelinek, Schriftstellerin
8. + 4 Elke Heidenreich, Publizistin
9. ± 0 Alice Schwarzer, Journalistin
10. - 4 Jürgen Habermas, Philosoph
Harald Schmidt 같은 예능인이 4위에 등극해 있는 것만 봐도 벌써 신뢰도가... 학계 인사들 순위를 따로 뽑던 지. '사회학자'(Soziologe, Soziologin)란 '직업명'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 모두 15개 있는데 이를 따로 모아본다. 모르는 이들이 꽤 많다. 역시나 체계이론 쪽에선 Dirk Baecker가 대표선수로 뛰고 있는 양상이다.
37. - 8 Ralf Dahrendorf, Soziologe
63. - 13 Ulrich Beck, Soziologe
146. + 56 Wolf Lepenies, Soziologe
192. - 3 Jean Ziegler, Soziologe
207. + 11 Hans Albert, Philosoph, Soziologe
242. + 34 Christoph Schmidt, Soziologe
280. - 19 Hans Bertram, Soziologe
338. - 7 Peter Gross, Soziologe
374. - 2 Heinz Bude, Soziologe
382. - 2 Barbara Duden, Soziologin
415. NEU Klaus Theweleit, Soziologe
425. NEU Harald Welzer, Soziologe
428. NEU Jutta Allmendinger, Soziologin
437. - 98 Günter Amendt, Soziologe
478. + 10 Dirk Baecker, Soziologe
'철학자'(Philosoph)로는 23명이 검색되는데 아주 유명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개 처음 접하는 이름이다. 독일 '지성계'('지식인 사회')에 대한 내 지식이 얼마나 빈약한지 여지없이 드러나 당황스럽기까지하다. 흠... 이런 얘긴 '교수신문' 독일통신용으로 쓰기에 딱 좋은 기사거리인데...
Cicero 2007년도 리스트에서 10위까지만 기록해 둔다 (2008년도 리스트는 온라인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순위 옆은 전년도와 비교한 등락폭).
1. + 13 Joseph Ratzinger,Papst Benedikt XVI.
2. + 2 Martin Walser, Schriftsteller
3. - 2 Günter Grass, Schriftsteller
4. - 2 Harald Schmidt, Satiriker
5. - 2 Marcel Reich-Ranicki, Literaturkritiker
6. - 1 Peter Handke, Schriftsteller
7. + 1 Elfriede Jelinek, Schriftstellerin
8. + 4 Elke Heidenreich, Publizistin
9. ± 0 Alice Schwarzer, Journalistin
10. - 4 Jürgen Habermas, Philosoph
Harald Schmidt 같은 예능인이 4위에 등극해 있는 것만 봐도 벌써 신뢰도가... 학계 인사들 순위를 따로 뽑던 지. '사회학자'(Soziologe, Soziologin)란 '직업명'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 모두 15개 있는데 이를 따로 모아본다. 모르는 이들이 꽤 많다. 역시나 체계이론 쪽에선 Dirk Baecker가 대표선수로 뛰고 있는 양상이다.
37. - 8 Ralf Dahrendorf, Soziologe
63. - 13 Ulrich Beck, Soziologe
146. + 56 Wolf Lepenies, Soziologe
192. - 3 Jean Ziegler, Soziologe
207. + 11 Hans Albert, Philosoph, Soziologe
242. + 34 Christoph Schmidt, Soziologe
280. - 19 Hans Bertram, Soziologe
338. - 7 Peter Gross, Soziologe
374. - 2 Heinz Bude, Soziologe
382. - 2 Barbara Duden, Soziologin
415. NEU Klaus Theweleit, Soziologe
425. NEU Harald Welzer, Soziologe
428. NEU Jutta Allmendinger, Soziologin
437. - 98 Günter Amendt, Soziologe
478. + 10 Dirk Baecker, Soziologe
'철학자'(Philosoph)로는 23명이 검색되는데 아주 유명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개 처음 접하는 이름이다. 독일 '지성계'('지식인 사회')에 대한 내 지식이 얼마나 빈약한지 여지없이 드러나 당황스럽기까지하다. 흠... 이런 얘긴 '교수신문' 독일통신용으로 쓰기에 딱 좋은 기사거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