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6일 월요일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

최근 한국에서 나온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해서 뭔가를 써야 하는데, 도대체 밑천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조선말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박정희시대를 다룬 여러 논문을 '섭렵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논문들에 대한 접근 통로를 '열어 준' P군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비록 생각 이상 오래 걸려서 '데미지'도 적진 않지만, 얻은 게 훨씬 더 많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 동안 나름 한국 학계 동향을 좇아가려고 애쓴 편이긴 하나 그런 노력이 얼마나 미흡했는지 '처절하게' 반성하기도 했다. 한국 학계의 연구 수준, 논의 수준에 많이 놀랐다. 특히 내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 근대(성)'의 태동기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많아서 무척 반가웠다. '경제'나 '정치'가 아닌 '문화'적 접근이라고 할까. 그 동안 식민지 시기를 다루는 데 큰 방해였던 이념 혹은 규범적 굴레에서 퍽 자유로워 보이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민족' '국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매우 유연하게 다룬다. 그 중에서 특히 큰 '감동'을 준 소장 학자 두 명만 언급한다: 권보드래, 천정환. 그들의 단행본 저작을 소개하면...

권보드래 (2000),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소명출판
권보드래 (2003),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천정환 (2003),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천정환 (2005), 끝나지 않은 신드롬: 친일과 반일을 넘어선 식민지 시대 다시 읽기. 푸른역사
천정환 (2008), 대중지성의 시대. 푸른역사.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강박증 비슷한 걸 '소유'하게 된 나로선 이처럼 '꼼꼼한' 연구들이 많이 쌓이는 건 무척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연애'의 의미변화에 대한 권보드래의 언급을 읽으면서 루만의 "Liebe als Passion"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반도 맥락에서 '발굴'된 사실들을 - 루만이 했던 것처럼 - 하나의 이론으로 꿸 수는 없을까... 허나 이런 연구들은 한 편으로는, 예를 들어, 친일/반일 같은 선경험적인 이해틀을 넘어 서길 요구하지만, 동시에 성급한 이론화도 경계하는 것 같다. 이 시기 민중 삶의 다양한 지층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일차적' 의의를 두는 것 같고... 이런 입장이 이른 바 '탈식민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여전히 분명한 '입장' 밝히기를 요구받는 한국 풍토에서 보면 분명 이쪽 저쪽에서 두루 '욕 먹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관심과 지향에 대해선 '성급한 이론화'라는 비난의 전형적 사례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접근의 물꼬를 튼 연구로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김진송, 1999, 현실문화연구)를 들 수 있겠다. 이 책을 서점에서 들어 보고선 '흥. 누가 이런 가벼운 책을 읽는다고...' 류의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원래 기억은 늘 현재형이니 알아서들...). '트렌드'를 읽는 감각이 참으로 둔했던 것.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신명직, 2003, 현실문화연구)도 '연애의 시대'와 같은 해에 나왔다. 이런 류의 식민지 문화적 일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영화로 'spill over'되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경성 스캔들 (2007), 기담 (2007), 원스 어폰 어 타임 (2008), 라듸오 데이즈 (2008), 모던보이 (2008), 그림자 살인 (2009). 금시초문이나 '경성기방 영화관'(2008)이란 TV 드라마도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계 '경성 트렌드'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를 보니 문학 쪽에서도 그런 듯. "출판계에서는 이미 앞서 말한 [경성애사]나 [경성 트로이카], [경성기담],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처럼 소설 혹은 교양인문서적의 형태로 경성을 그리는 책들이 스테디셀러에 오른 지 오래이며, 이런 책들에 일종의 선구자격 노릇을 했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이미 1999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10년 가까이 경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축적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글에서 보니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대중문화콘텐츠의 제작은 세계적인 유행"이란 견해도 있는 모양이다. 내 '나와바리'가 아니니 남들이 얘기하는 장단에 맞춰 춤을 출 밖에...

좀 다른 맥락에서 적어 놓을 이야기 하나. 며칠 전 읽은 논문이 민족주의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더불어 깔끔하고 세련된 문장을 지니고 있어서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윤혜준 (1999), '스포츠'와 대중민족주의, 사회비평 제20권: 194~208. 저자는 현재 연세대 영문과 교수 (그 무렵엔 외대). 그러고 보니 제목은 너무도 범상해서 유려한 문체와 어울리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권보드래, 천정환의 경우에도 문장이 좋다. 빼어난 내용에 외양까지 멋들어지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능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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