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1일 토요일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오마이뉴스'에서 가끔씩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는데, 최근에 만난 그닥 유명하지 않은 프랑스 화가에 대한 얘기가 그런 경우였다. 이름이 참 낯선데... 앙셀므 브와-비브 (Anselme Boix-Vives, 1899 - 1969). 우선 최근 열리고 있다는 그 양반 전시회 포스터를 소개한다.

무슨 외계인 그림 같지 않은가? 여하튼 그림 자체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 블로그에 시간과 품을 들여가며 이 화가에 대해서 쓰는 건 '우선' 이 화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 오마이뉴스 기사를 오리고 짜잡기 해서 소개하자면...

"평생을 과일상으로 일했던 노인이 은퇴를 1년 앞둔 63세에 아내를 병으로 잃는다. 갑자기 삶의 의욕을 상실한 그는 아들에게 잘 나가는 가게를 물려주고 할 일 없이 부엌에서 시간을 허송하고 있었다. 때마침 친구처럼 찾아온 천식이 그를 붙잡고 괴롭혔다.

그의 3남 중 당시 미대에 다니고 있던 아들 미셸이 아버지에게 소일거리로 그림을 권했다. 가끔 젊었을 시절, 가게의 영수증 뒤에 그림을 끼적거렸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잡게 된 붓, 이로 인해 그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에 제대로 된 붓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노인은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질색했지만 결국 아들의 권유에 넘어갔다. 그런데 소일거리로 시작했던 그림에 그는 광속도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사망하기 전까지 7년 동안 2400여 점의 그림을 그려냈다.

인간의 내적인 세계를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의 그림은 '원시예술'(art primitif) 혹은 '원생미술'(art brut, 다듬어지지 않은 예술)로 구분되는데 그의 야생화 그림은 또 다른 원시 예술 화가인 세라핀 드 상리스(Seraphine De Senlis)의 그림과 희한하게도 닮았다. 하녀 출신의 세라핀도 그처럼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신의 계시를 받고 그려진다고 말한 바 있다. 브와-비브도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저절로 그려져 나온다고 말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그저 이력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과 그 화가에 대한 글을 남길 리가 있겠는가. 결정적으로 나를 충동한 건 바로 브와-비브의 발언인데...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 경지가 있는 모양이다. 이 우주에 떠도는 그림, 언어, 음악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화가, 작곡가, 연주가, 시인 등등. 그림, 음악이야 어짜피 '영감'이 좌우하는 영역이니까 그렇다 치고, 언어의 세계는 벌써 차원이 많이 다르다. 허나 시인이 그런 고백을 하는 경우까지는 넉넉히 상상할 수 있겠다. 허나 학술논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철학이나 신학 같은 경우엔 그런 경우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시 말해 형이상학 아니던가. 허나 사회학에서도 가능할까? 이 세상을 떠도는 사회에 대한 언어, 아이디어가 내 몸을 빌어서 표현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영감 혹은 '필' (혹은 '휠'^^)을 받아서 신들린 듯이 논문을 써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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