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 연재되는 기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름하야 "소준섭의 正名論". 오늘 확인한 4회 기사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독일어는 단어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의 신조어를 생성함으로써 오늘날 가장 원래의 의미를 잘 표현하는 문자로 발전하였다. 예를 들어 '과학'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 온 개념으로서 영어 'science'와 프랑스어 'science' 모두 '자연과학'의 의미이다. 다만 독일어인 'Wissenschaft'에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사용하는 단어에는 마땅히 독일어 중의 'Wissenschaft'로써 이해해야만 비로소 타당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의 경우에는 거의 두 글자로 조어가 진행되어 의미를 담아내는 데 현저한 제한성이 존재한다. 이는 용어에 있어 개념의 불명확성과 중복, 혼선을 초래하며 결국 언어생활 및 일상생활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대표자회의'라는 말은 처음 들을 때에도 곧바로 '대표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조직'이라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 '국회'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된다면 우선 한자어인지 순 우리말인지부터 생각해야 하고, 또 나라 국(國)자인지 판 국(局) 자인지 아니면 국화 국(菊) 자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회'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람은 세계적으로 말의 속도가 늦는 편이다. 이는 한국어가 대개 두 단어로만 조어가 진행되어 동일한 발음이 많음으로 하여 말의 속도가 빠를 경우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번역어의 성립, 전파나 개념의 의미변화 등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탓에 이런 기사를 만나는 일은 무척이나 반갑다. 위 인용문에서 특별히 눈에 띈 내용은 새로운 단어,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 독일어는 기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신조어 형성이 진행되는 편이고 (그 예가 Wissen -> Wissenschaft. "-schaft'라는 '추상' '총합' 등의 의미를 만들어 주는 접미사 이용) [독일어의 특징 중 하나는 접두사, 접미사 따위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는 것], 한국어의 경우 - 특히, 한자말 - 대개 두 단어로 단어, 개념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런 경우 단점은 동일한 발음을 갖는 단어가 많은 것. (중국어의 성조 따위도 없는 탓에) 동일하거나 비슷한 단어들 구분하는 방식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말의 속도가 느리다! 물론 검증이 필요한 발언이다. 근러로 삼을 연구가 있는지 아니면 그저 추측인지... 말의 속도가 실제로 느린지, 그렇다면 그게 두 단어 조어 경향 탓인지 아니면 문장 구조 탓인지, 아니면 음성학적 문제인지. 아무리 인터넷에 실리는 기사라지만 좀 더 신중하게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두 단어 조어법 못지 않게 - 혹은 그 이상 - 음성학적 요인이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을런지. 성악을 전공한 탓에 발성, 발음 등을 나름 주의깊게 관찰해 온 분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개 '자음'을 또렷하게 발음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소리가 커진다고... 아닌 게 아니라 독일어나 영어에선 자음음을 더 분명하게 구분할 것이 요구된다. b,p,v 등등. 실제로 작은 소리로도 잘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허나, 생각해 보면 한국어 자음에도 만만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물','불','뿔' 같은 경우. 대화에서 우리가 그걸 우선 발음으로 구분하는지 의미로 구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사투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특정 단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걸 봐서 일리 있는 설명이라고 봐도 될 듯 하다. 다만 모음 쪽은 한국말이 훨씬 더 분화되어 있는 것 같고. 예를 들어 'ㅓ' 발음을 제대로 내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의 세계! 알면 알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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