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당신 투명인간이야, 왜 ...." 그런 내용이 오가는 장면을 관찰했다. 그런 맥락에서 '투명인간'이란 표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그래서 좀 씁쓸해 했던 기억이 있다. 신분제 사회에선 - 주로 영화 등을 통해서 간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 실제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거나 그렇게 행동하도록 기대되던 신분, 계층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신 앞이나 법 앞에서 평등하다라는 생각은 근대의 출발점이자 전제이기도 했다. 이제 인간은 누구나 그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제'일 따름이고 여러 의사소통 상황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흔하디 흔하다. 위 사례는 'interaction' 상황에서 배제의 경험을 지적하는 경우였고... 물론 그 배제는 신분제 사회와 비교 할 때 훨씬 더 은밀한 - 혹은 '세련된 -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인정투쟁'이라는 표현까지 쓸까... [Kampf um Anerkennung (A. Honneth)]. 실제로 자기 존재의 무게가 가볍다고 느낄 때 찾아오는 상실감은 또 얼마나 큰지... 그러니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서 모두들 얼마나 애를 쓰는지... 때로는 그 속이 뻔히 보여서 안스러울 정도로. 존재감 인정 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안 좋은 방식 중 하나는 타인의 존재감을 해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방식 아닐까? 대개 목적 지향적, 성취 지향적인 사람일수록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이들의 존재감을 가장 인정치 않[으려]는 편이니, 적어도 내겐 오히려 역효과.... 아니,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들은 존재감은 이미 드러났으니 그것만으론 성공한 셈일 수도...). 어쨌든 근대인으로서 우리는 투명인간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선택지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관찰해 본다. 내 방식을 포함해서... 흥미롭다.
ps1) 존재감, 특히 '특별한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이는 무엇보다 체계를 통해서 주어진다. 이 경우 '특별한 존재감'은 '대접'이나 '명성'과 연결된다. 은행이나 경제활동 영역에서는 돈 많으면 대접받고, 스포츠에서라면 뛰어난 실력을 보일 때 등등. 물론 한 체계에서 얻은 존재감, 명성이 다른 쪽에서 존재감을 인정 받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 상승효과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지만, 어쨌든 원칙적으로... 이런 방식은, 바꾸어서 얘기하면, 그만큼 존재감의 기반이 허약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서 돈이 없거나, 실력이 없으면 금새 잊혀진다. 한 인간이 전인격적으로 그 존재감을 인정받는 경우는 없는가? 현대사회에선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가 그런 기능을 담당하는 것 같다. 현대로 오면서 가족이 해체된다거나 약화될 거라는 전망도 있었던 것 같은데 [see also SF movies], 가족, 친밀한 관계, 연애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지는 것 같다. 이혼이 잣다는 것은 결혼이나 친밀한 관계에서만큼은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커진 것의 반영이고. 애정, 특별한 감정이 식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 자식을 낳는 것에도 갈수록 그런 욕구가 투영되는 것 같다. 지난 수년부터 연예계 유명인사들 중 여자들이 - 특히, 미국에서 - 경쟁적으로 아이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인기고 남편과 애정이고 모두 한 순간이고, 세상에 믿을 것 자기 자식밖에 없다는 그런 심리 아닐까? 너무 나간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마음도 그런 것 같고. 누구에겐가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그런 욕망...
ps2) B.Latour 같은 이는 우리는 한 번도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고 하는데, 그가 근대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겠는데, 그런 방식은 이제 좀 식상하다. 심지어 내겐 짜증감(?) 유발 원인이기까지 하다. 그런 입장을 'anything goes'ism이라고 불러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네들, 그러니까 'anything goes'ist들은 대개 문제를 제기하거나 뭔가 잔뜩 파헤쳐 놓기만 하고 나머진 "알아서 하셔, 내 알 바 아님" 그러면서 빠진다. 좀 무책임하지 않은가? 처음 시도는 신선한다. 니체나 푸코 정도는 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허나 그 이후론... 내가 여기에서 '근대인'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하니 그 '근대(인)'이란 건 없다던 라투어가 걸려서 뱀발을 달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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