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거사 박선생과 대화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인데 한국 과기정책을 내 나름대로 시대구분해본다 (과학정책과 기술정책, 학술 정책 등을 구분해야 하겠으나 일단은 '패스'). 보통 정책기조를 중심으로 10년 단위 혹은 정권 중심으로 구분하는데, 나는 체계이론적 접근을 원용해 보았다. 과학/정치 관계의 변화와 혹은 연속성을 한 편으로 기능적 분화라는 틀 속에서 보고, 그 과학/정치 관계가 어떻게 기술되는지는 의미론 차원으로 이해한다. 사회구조와 의미론의 연속과 변화를 중심으로 하면 개항 이후 지금까지 크게 네 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개항이후 1950년대까지: 과학 정책이랄 것은 없고, 그저 기술인력 정책, 고등교육 정책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시기. '과학'이라고 경계를 그을만한 활동 자체가 한반도 내에서 극히 제한적이었고... 강한 국가, 없다시피한 과학, 기술... 허나 의미론적으로는 이미 과학을 도구로 여기는 '과학주의' '과학민족주의'가 구한말, 일제시대에 형성되지만, '독립' 같 큰 문제들이 있어서 지배적 담론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2) 박정희 시대 (1960,70년대: 국가 주도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을 지원하려는 목적에서 기술정책, 과학정책을 펼친 것으로 이해되고, 그 이후 국가와 과학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하나의 패러다임이 만들어진 시기.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를 뒷받침할 기술 개발, 기술인력 창출에 더 큰 관심이 있었지만 [특히 초기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설립 등 과학연구 활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틀을 마련한다. 구조적으로 강한 국가, 자율성을 누리는 국가가 과학체계 후견인으로 나선 상황이고, 과학활동은 국가 결정에 크게 좌우된다.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는 과학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담론이 발달됨. 의미론적 연속성이 발견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박정희처럼 민족주의/국가주를 통치이념으로 삼던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사회구조적으로 또 의미론적으로 국가 - 발전지향적 국가 - 의 영향력이 지대함.
(3) 박정희 패러다임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시기 (1988 - 2007): 그 이후 정부는 의미론적으로는, 그러니까 정책 목표랄까..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우에도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이전 정권과 차별적 정책을 추구했지만, 과기정책에서만큼은 옛 아디이어에에 의존한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 '제2 과학기술입국' 담론이 좋은 사례다. 과기정책 만큼 여야, 보수, 진보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드물었다. 정당성과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과기에 대한 투자강화를 내건 것. 이런 측면은 의미론적 차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위로부터의 의미론적 작업의 영향력은 박정희 시기와 비교하면 매우 약해졌다. 구조적 차원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으로 - 특히 민주화 이후 - 정치체계가 여럿 중 하나인 체계로서 그 경계를 만들어 나간다. 즉 '국가' 중심에서 '정치' 중심으로... [다른 정책 분야와는 다르게 과학과 관련해선 국가 주도 과학'정책'이 아닌 과학'정치'의 등장은 매우 늦은 편이었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생명과학/생명공학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인 의미로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 역시 독자적 체계로서 그 입지 혹은 경계를 분명히 만들어 간다. 하지만 국가는 정책 패러다임 혹은 의미론에 있에서 여전히 박정희식 틀을 좇는다. 의미론적 연속성, 구조적 불연속성! 이런 위로부터 의미론적 작업은 큰 반향을 얻지 못한다. '약발'이 떨어진 것... 실제 세계적인 과학 업적을 낸 황우석 같은 이가 - 일견 시대착오적으로 보이이는 - 민족주의 담론을 구사할 때 비로소 그 담론이 '먹힌다'. 과학민족주의, 애국주의적 감수성이 만들어 지는 것. 과학민족주의라는 외형은 달리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만들어지고, 지배적 담론화되는 메카니즘이 달라지는 것. 황우석은 민주화 이후로 열려진 공간을 이용한다.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대중에 직접 접근. 그것을 국가는 자신들의 정책에 이용.
다른 한편 과학/정치의 사회구조적 변화는 의미론적 복잡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생명공학과 관련된 생명윤리 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 이런 과학, 정치 관계의 변화, 의미론 간의 갈등/긴장이 극적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 황우석 사건이다.
(4) 2008 이후 2mb 정부. 우리 이명박 정부는 참으로 한국 과기정책의 한 장을 새로 '여셨다'. 이전 정부들이 해 오던 과학, 기술의 중요성 강조, 과학기술 대중화 등을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낀다. 심지어 과기부를 없애려고 하려다, 교육과학기술부로 겨우 살려두지 않았던가. 두 가지 이유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당성의 결함이나 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한국 최초의 본격적 계급정권답게 국가주의/민족주의 같은 건 '전체주의'나 과거 유산으로 이해하고 '계신 듯'. 친미, 친일 성향도 이젠 감출 의사도 없는 듯하다. Wie cool! 어쩌면 기능적 분화, 과학-정치의 분화가 한국사회에서 절정에 다다른 듯. 다른 한편 일부 발전국가적 속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후퇴, 파시즘의 전조가 보인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 과기정책에 있어서도 학술진흥재단, 과학재단을 합쳐서 한국연구재단을 만들려고 하고 이는 국가 개입 여지를 더 넓히는 의도임을 지적하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 편 '삽질'에 대한 본원적 신뢰 때문에 '과기정책' 따위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혹은 '삽질'도 고도기술, 정밀과학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누가 2mb 정부가 퇴행적이라고만 몰아부치는가. 이 정부는 개항이후 한반도를 지배하던 '과학기술입국'이라는 '낡은 패러다임'과 작별을 고하며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삽질입국'의 새 장을 열어 젖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2mb여, 소인배들의 비판에 너무 슬퍼마시라. 역사가 그대를 평가할 것이다!
ps) '삽질 우대'에 밀려 '과기정책'이 찬밥 신세지만 요즘 뜨는 정책분야가 있다. '문화정책'. 그 동안 문화부가 제대로 대접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2mb의 문화를 중시하는 '마인드'는 아무리 격려해도 부족할 터. 언론보도를 보시라. 하루 건너 유인촌 장관 얘기가 나오질 않는가. 심지어 차관까지 유명해졌다. 신재민. 다른 부서는 장관 이름도 기억 못하질 않나. 김구 선생인가? 문화를 아는 국민,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오랜 꿈이 드디어 2mb 아래에서 이루어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문화부 장관이 이렇게 유명한 나라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2mb여. 그대는 진정한 문화대통령이올소이다.
ps2: [2009.9.1]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 적어도 내게는^^ - 2mb 정권에서도 과기쪽에 대한 지원은 상당한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747 공약을 가지고 있다면,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577 기본계획이라는 게 있다. 2012년까지 연구개발비를 GDP의 5%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삽질 경제’라고 불리는 현 경제 기조에서 각종 복지 지출이 알게 모르게 삭감되고 있으며, 돌봄 노동에 대한 지출은 위기에 처해 있고, 각종 공기업 및 공적 장치가 민영화 위기에 놓인 데 비하면, 연구개발의 경우는 어쨌든 걱정이 없다. 실제로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GDP에서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5%까지 올라간다면 정말로 과학기술 분야 지출만은 세계 최고가 되는 셈이다." 오늘은 또 IT 쪽에 대한 수십조원 투자계획을 확인하였다. 과기정책 쪽의 연속성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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