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5일 월요일

갈릴레오 시대 (자연)철학자와 수학자에 대한 이야기. 철학자가 자연과학자 역할을 하고 있었구만.

"왜 갈릴레오는 메디치가의 관심을 끌고 후원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까? 그가 베네치아 의회와 총독에 접근한 것을 보면, 그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더 많은 보수, 더 큰 명성을 바랬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메디치 가문의 궁정은 그에게 베네치아 총독은 제공할 수 없었던 다른 매력적인 이점을 제공했다. 그것은 파두아 대학교의 수학교수인 갈릴레오가 메디치 궁정에서는 “수학자 겸 철학자”로 임명된 점이다. 당시에는 수학자와 철학자의 구분이 매우 엄격했다. 예를 들어, ‘자연이 실제로 이렇다’는 식의 얘기는 (자연)철학자들의 몫이었다.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 논할 때에도, (자연)철학자들만이 ‘실제 물체의 운동이 이렇고 저렇게 이러난다’고 논할 수 있었고, 수학자들의 분석은 실제 세상이 아니라 단지 수학을 사용한 가설이나 모델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갈릴레오는 1590년대와 1600년대 초엽의 연구를 통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옳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의 대부분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수학과 실험을 통해서 자유낙하 운동법칙과 같은 자신만의 독특한 운동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그가 수학 교수였기 때문에, 당시 자연철학자들은 갈릴레오의 이론이 실제 세상이 아닌 추상적인 수학적 세상에서나 가능한 이론적 논의라고 생각하고, 이를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갈릴레오는 세상이 수학의 언어로 씌어졌고, 물체의 운동은 수학을 통해서만 가장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믿음은 소수의 수학자들 사이에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지, 수학자들의 집단 밖에서는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이 갈릴레오에게 부여한 공식 직위는 “수학자 겸 철학자”였다. 파두아 대학교의 수학자가 궁정에서는 이제 철학자가 되었고, 세상의 운동과 물질의 본질에 대해서도 철학자들과 동등하게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과학사학자 비아지올리의 용어를 빌자면, 갈릴레오는 메디치 궁정에서 수학자와 철학자라는 두 개의 ‘잡종적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궁정 내에서는 수학의 언어로 모델이 이닌 실제 자연 세계에 대해서 논할 자격을 부여 받았다. 궁정에서 수학은 단지 자연에 대한 가설적 모델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과 운행 그 자체를 드러내는 좋은 언어가 되었다.
1610년 이후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들은 갈릴레오의 수학을 쉽게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가장 막강하고 영향력있는 궁정에서 갈릴레오가 철학자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의 급격한 지위 상승은 1633년에 벌어진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을 새롭게 해석하는 데 열쇠가 될 수 있는데..." 
1. 둘만 만나도 오랜 시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오래 묵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처한 상황에서 비슷한 점도 있고 해서 더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도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2. 오늘 일은 치욕이나 모욕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진 않지만... 내 심리상태는 그런 해석 쪽으로 기운다. 뭔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인 것같긴 하다. 누구 책임인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거의 전적으로 내 탓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밖에 없을 뿐.

3. 기아는 한화에 0:9로 졌나보다. 다행스럽게도 친구와 만나느라 전혀 보지 못했다.
"세월호"도 그렇지만 "천안함" "광우병" "4대강" 등 일련의 시사적 사건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대개 공식 입장에 대한 대개 합리적, 상식적 의심에서 출발했다. 그 의심이 때론 허황된 음모론으로 확장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정보와 설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만들어진 설명방식 중 하나다. 과소 정보와 과잉 상상력 그 중간쯤에서 합리적, 상식적 질문이 제기되고 그에 대한 답이 구해질 것이다.
모든 책임이 내게 귀속되는 상황에선 싸움이 성립될 수가 없다. 자책만이 남을 뿐.
Bora (2007, Die disziplinären Grundlagen der Wissenschaft)에 등장하는 이야기. 미국에서 대학 랭킹 중간에 위치한 대학들이 학제간, 초학제적 연구와 교육 과정을 도입하고 관련 연구 센터를 육성함으로서 랭킹에서 이전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게 되는 사례들... .

"So lässt sich beispielsweise zeigen (Brint 2005, 46), wie eine große Zahl ehemals eher mittelmäßiger Universitäten in den USA versucht, mittels neuer inter- und transdisziplinärer Forschungs- und Lehrgebiete und der Gründung entsprechender „Zentren“ den Sprung auf die vorderen Plätze der Universitäts-Rankings zu schaffen, bisweilen sogar mit beachtlichem Erfolg."


Brint, S., 2005, Creating the Future: ‚New Directions’ in American Research Universities, Minerva 43(1), 25-50.
페북 등을 통해서 이러저러한 테스트가 자주 소개된다. 그 중 하나. "What career were you actually meant for?" 해 본 결과는..

Therapist

 You are a caring and selfless individual. Your compassion, warmth, and sensitivity can heal others in the most authentic way possible. You help and inspire others, and can really touch people's lives. You truly understand others and can make them happy by just being yourself.

결과엔 공감하지만 테스트 자체엔 별로... 10개 질문이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 구성된 것 같지 않기 때문.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1. 아웅다웅. 아이들 놀이터에선 가장 인기있는 놀이기구는 그네다. 그네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이만저만 치열하지 않다. 오늘도... 딸과 함께 한참을 기다리다 그네에 도달하기 직전 어떤 어린아이가 달려와서 그네를 움켜쥔다. 그전에 한참 동안 그네를 탔던 아이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힘으로 그 어린아이를 밀쳐냈고 화를 버럭 냈다. 아웅다웅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어린이들에게도 투영된 것 같다. 그 전에 얼마 동안 그네를 탔는 지의 여부, 나이도 상관없이 그저 1초라도 먼저 달려와서 차지하면 된다는...

2. 씁쓸하다. 어른이라도 넉넉함, 포용력, 여유를 보여주지 못하면 인정, 존경받기 힘들다.

3. 한의원에 갔는데 한의사가 관상을 보는지 한 마디를 건넨다. 지금 목표로 삼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아주 근거가 없진 않은... 어쩌면 피하고 싶은...

4. 얼마 전 양천구에 사는 조카가 놀러왔다. 자전거로 한강을 거슬러서... 고 2인데다 또 원래 고민이 많은 아이. 영화평론가 이동진씨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한다는.... 한의사 이야기를 듣고서 그 이야가 떠올랐다. 지금 집중하는 일, 주제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은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일, 주제가 없는 게 아닌데. 이제라도? ㅎㅎ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1. 요 며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려고 시계를 맞춰두지만 번번이 일어나지 못했다. 6시라 사실 마음먹기 나름이고, 아버지 서울에 올라와 계실 때 몇 번 가보기도 했지만 혼자선... 악순환이다. 일찍 잠들기가 힘들고 그래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되고... 그 고리를 깨야할텐데. 내일은 과연?

2.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다. 그냥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선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서 그냥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하고, 적지 않은 비용을 줘야하는 놀이학교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또 너무 많은 것을 시킬려고 해서... 오늘 들러 본 "베베궁" - 그렇다. 독일어 Bewegung에서 가져 온 ... - 이라는 이름의 놀이학교는... 시설도 별로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교육프로그램도 독일식과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한참 멀다. 학급 이름을 독일어 단어로 만들어 붙여서 뭔가 색다른 냄새가 풍기려고 하지만 내 이 예민한 후각의 판단에 따르면 짝퉁이다. 결정적인 근거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찾았다. 베베공 본사에서 교육철학이라고 얘기하는 내용이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확 깨게 만드는...

"교육은 광고가 아닌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유아 시기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교육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교육은 광고? 믿음?

3. 오늘 LG와의 경기는 선감독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선 감독의 가장 큰 문제는 선수 기용을 잘 못한다는 점이다. 스타급 선수 출신 감독들이 갖는 전형적 문제.선감도도 선감독이지만 상위권에 있는 팀 감독들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도대체 프로야구 감독들은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냐 버텨낼 수 있을까 싶다. 여하튼 아무리 그래도 선감독은 아니다. 누군가 어찌어찌 4등을 하면 연임이야기가 나올텐데 그 꼴 보느니 차라리 지금처럼 못하는게 낫다고 얘기하던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기본소득과 도덕경제 (김종철)

경향신문, 2014.4.2.

“마을의 공유지에 참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여름이면 그 나무 그늘은 양치기와 양들의 쉴 곳이 되고, 도토리들은 인근 농민들이 키우는 돼지의 먹이가 되며, 마른 나뭇가지들은 마을의 과부들에게 땔감을 제공한다. 봄철에 새로 생긴 잔가지들은 성당을 꾸미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그 참나무 밑에서 마을 의회가 열린다.” 

 이것은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쓴 어떤 글의 한 대목이다. 이 시적인 묘사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지’라는 개념일 것이다. 산업사회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대개 공유지(commons)라는 것은 특정인에게 귀속된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에게 개방된 공공재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전승되어온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을 적절히 자유롭게 이용함으로써 아무리 가난한 살림살이일지라도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최소한의 생존·생활을 영위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하여 가난한 민중은 비록 물질적 생산력이 낮은 삶의 환경 속에서도 이웃과 더불어 나름대로 생을 즐기면서 인간다운 문화를 일구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오늘날처럼 배타적인 경쟁 논리가 아니라 공유지를 기반으로 상부상조하며 살았던 옛사람들의 이러한 삶의 방식을 ‘도덕경제’라고 부른다. ‘도덕경제’의 원리는 조선의 민중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통용되었다. 구한말 이 나라를 찾았던 서양인들은 나중에 그들이 남긴 기록에서 거의 이구동성으로 조선의 백성들이 게으르고 불결한 ‘비문명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백성들의 상호부조 관습과 타인에 대한 환대의 풍습에 주목했다. 

 “이 나라에서는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잔치가 벌어지면 이웃을 초청해서 모든 것을 나눈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여비를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은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다블뤼 주교 <조선사입문을 위한 노트>) 

 조선의 백성들이 게으르게 살고 있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이 근대적 노동규율에 묶여 쫓기듯 살 필요가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당시 서양인들이 조선 백성들의 생활에서 나태와 불결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오히려 근대적 이기주의에 깊숙이 젖어 있던 서양인들 자신의 편견을 드러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도덕경제’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근대적 산업이나 자본주의 경제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 경제는 엄청난 생산력을 발휘하여 전대미문의 물질적 안락과 번영을 가져왔고, 그 결과 온갖 놀랄 만한 문명적 성취와 실험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번영에 따르는 혜택이 고르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보다 엄격히 말하면, 물질적 혜택의 불균등 분배라는 이 결함은 불평등 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내재적 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연구자에 의하면, 자본주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실제로 이 문명의 수혜자는 인류 전체의 15%를 넘어본 적이 없다. 나머지 다수는 늘 소수의 안락과 행복을 위한 제물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희생의 시스템’도 어쨌든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그 성장의 덕분으로 언젠가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는 ‘환상’이 꺼지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세계경제는 더 이상의 성장을 허용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난 수백년간의 자본주의 근대문명을 이끌어온 기본 동력은 화석연료였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문명은 ‘탄소문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탄소문명의 끊임없는 팽창의 필연적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전대미문의 위기, 즉 기후변화라는 기막힌 사태에 봉착했다. 인류사 최대의 이 위기상황에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탄소문명의 성장·확대를 계속 추구한다면 대파국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경제성장 논리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사회적 공공성과 난개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철폐하려는 난폭한 시도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자세로는 물론 ‘대안’을 찾을 수 없다. ‘대안’이란 시대적·사회적 조건이 허용하는 틀 속에서 최대한 인간다운,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구상할 수 있는 대안다운 대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현 상황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기본소득제의 도입이다. 사회 구성원 전원에게 아무 조건 없이 기초생활비를 지급하는 이 방안은, 기왕의 시장논리를 존중하면서, 대다수 민중에게 그들의 잃어버린 생존 기반, 즉 ‘공유지’를 되돌려주고 ‘도덕경제’를 복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현대적 상황에서 ‘공유지’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즉 토지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가스, 철도, 통신, 방송주파수, 의료, 교육, 금융제도 등등이 그렇다. 이러한 것은 영어식 표기(public utility)대로 원래 누군가의 사익 확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공유재 혹은 공동자산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공공재는 그동안 특권층의 치부 수단이 되어왔고,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절박한 생태적 위기, 부의 극심한 편중, 또 수많은 말세적 징후들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공유재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게 급선무이다. 그리고 주요 공유재의 운용에 의한 재정적 이익의 일부 혹은 전부는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지금 기본소득에 관한 관심과 논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성장이 멈추고, 과잉발달한 자동화 기술로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지는 시대 상황을 볼 때,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최근 어떤 강연에서 기본소득제는 이제 ‘거의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도덕경제

 'Moral Economy'

Moral은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도덕과 관련된' 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경제분야에서는 이 단어 뒤에 Economy가 붙어서 '도덕경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도덕경제는 선량함(goodness), 공정(fairness), 평등(justice)에 기초한 경제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18세기 말 역사학자 에드워드 팔머톰슨이 최초로 체계화한 개념입니다. 당시 영국 농민들이 불공정한 폭리를 취하는 상인들에 대항해 소요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요. 상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 시장경제와는 다른 시스템이었던 Moral Economy는 농민의 생존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윤리를 우선시 한 경제구조였습니다. 이러한 윤리는 농촌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농촌에는 위기에 처한 타인을 돕는 제도가 만들어져 왔습니다.하지만 그 후 시장경제의 부흥으로 잊혀졌던 도덕경제가 2013 다보스포럼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Moral Economy가 또다시 부각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칼 폴라니라는 비주류 경제사상가의 이름이 세상에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칼 폴라니는 당시 주류였던 시장경제 시스템을 비판하고, Moral Economy를 강조한 인물인데요. 그는 경제활동을 교환(exchange), 호혜성(reciprocity), 재분배(redistribution) 세가지 형태로 나누어봤을 때 시장경제는 단지, 교환의 한 형태에 불과한 불완전한 시스템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호혜성이나 재분배와 같은 도덕적 경제활동, 즉 Moral Economy는 전근대적인 것이라며 맞섰지만 칼 폴라니는 그것이 교환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규제없는 시장경제는 1930년대 세계대공황과 같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불안정한 시스템이라고 언급하며, "보다 안정적인 Moral Economy가 구축될 수 있도록 사회 자체적으로 제도와 규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호황과 함께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경제는 또다시 무너졌고 Moral Economy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세계적인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점에서 열렸던 2013 다보스 포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거론 된 방안들 중 하나가 Moral Economy였던 것인데요.  특히 다보스 포럼 현장에서는 Moral Economy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꼽았습니다. 다보스 포럼에서 한 전문가는, 모든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것을 존중할 수 있어야하고, 경제 구조로 인해 이것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둘째, 사회 구성원들이 공익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사회분위기가 형성되면 '공익'이라는 말 그대로,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힘쓰게 되고 정치, 경제적 문제해결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필수요소는 책임의식입니다.우리가 하는 경제활동이 우리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책임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과연 Moral Economy가 세계 경제의 역동적 반등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요?다보스포럼 참석자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Moral Economy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동시에, 안정적인 경제 시스템 구축을 위해 세계적으로 폭넓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불확실성으로 가득한 2013 글로벌 경제. Moral Economy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연구와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It is always easier to fight for one's principles than to live up to them." Alfred Adler
1. 역시 노트북, 아니 그보다는 인터넷이 문제. 오후엔 노트북을 치우고 수작업 모드로 전환할 예정.

2. 바뀐 환경은 사실 이전보다 더 좋다. 핑계를 댈 수도 없다. 나머지는 모두 내 몫이다. 때론 등떠밀려서라도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

3. 미련? 없다. 지금, 그리고 앞이 중요할 뿐...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1. 삼 년여 동안 내 삶의 중심이 되었던 공간을 떠났다. 주말에 한 번 더 가서 짐을 빼 오면 완벽한 이별이다. 적어도 연말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적을 두려면 둘 수 있었을 테지만 떠나기로 결심했다. 위태로운 인연을 억지로 이어가느니 깨끗하게 단절하고 새출발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다시 광야로 나선 느낌이다. 마음을 더 독하게 먹어야 할 것이다.

2. 기아는 3연승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오늘 아쉽게 졌다. 수비 실수도 있었지만 더 결정적이었던 것 감독의 선수 교체 실수다. 야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지적할 수 있는 그런 실수. 선 감독은 투수로서는 자질을 타고난 천재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감독으로서의 자질은 평균 이하인 것 같다. 선수의 상태와 심리를 읽는 능력, 경기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

3.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보다.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종교와 과학(혹은 철학)의 상보성’

 “보잘것없는 천박한 지식은 인간의 정신을 무신론으로 기울게 하지만 지식을 쌓아가다 보면 정신은 다시 종교로 되돌아온다.”(프란시스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에서.)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책세상, 이태하)

 “종교란 철학에 의해 부정되고 계몽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종교란 하나의 현실이며, 현실을 부정하는 철학은 말장난에 불과한 지적 유희로 흐를 수밖에 없다. 종교가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라면 철학은 삶의 양식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반성적이며 비판적인 작업이 되어야 한다. 철학은 이러한 반성적이며 비판적 활동을 통해 종교의 정체성을 밝힘으로써 종교를 더 종교답게 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과학과 종교가 경쟁적인 관계에 있지 않고 서로 구별되는 영역에서 기능한다면 동일한 대상에 관한 상이한 설명 체계라는 점에서 그들 간의 관계는 보완적(supplementarity)이라기보다는 상보적(complementarity)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경험적인 현상들을 정확하고 엄밀하게 설명함으로써 사건들의 원인을 추적하지만, 신학은 사건들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적 세계에 관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의 활용에 관한 지혜를 얻으려 한다면 과학적인 설명뿐만이 아니라 그것과 상보적 관계에 있는 종교적인 설명이 필요하다.”(35쪽.)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이건 오글거림의 정도가 강한 편이지만..

 "우연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다."

‘엽기적인 그녀’ 견우의 마지막 대사.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 없다.”
“Speed is irrelevant if you are going in the wrong direction.” – M. Gandhi
한국 언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 중 "중계방송"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깊은 취재나 평가, 논평 없이 사실을 기계적으로 보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보도마저 조악한 경우가 많고, 다양한 혹은 상반된 견해라고 소개하는데 그 기준을 기계적으로 설정해 놓고서 균형을 맞췄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겨우 사실 보도나 하는데 그것도 조악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논조를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취재의 부족, 성찰의 부족, 기계적 중립, 정치의 과잉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적 입장을 제외하곤 기사들의 하나같이 비슷하다. 남들이 보도하는 만큼 취재해오기를 '데스크'에서 지시하고 간섭한다고 한다. 기자들의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가장 짜증나는 기사들에는 스포츠 관련 기사들이 포함된다. 아무래도 프로야구 관련 기사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역시 중계방송 기사다. 지루한 사실 나열. 그리고 그에 따른 단기적 판단이 결론부를 이룬다. 연승, 연패의 원인은? 상승세, 하락세의 이유는? 어쩌다 강팀이 되었나? 어쩌라 몰락하게 되었나 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치밀한 분석이 없으니, 이런 기사들의 논조와 평가는 드러나는 현상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어쩌다 강팀이 되었는지를 설명했는데, 그 팀이 후반기에 몰락한다던지... 같은 지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쩌다 몰락했나"를 또현상에 대한 단순하고 소박한 옅은 서술로 설명하는 것이다. 기레기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국내에서는 여전히 연구 계획서에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가 뭐냐'고 묻는 항목이 있다"

수학자 황준목의 이야기 중에서.
이범 선생(?)의 흥미로운 한겨레 칼럼. "‘사람’ 중심의 정치를 집어치워라"

"진보의 도덕이 늘 구호의 수준에 머물고, 진보의 정치가 늘 뭔가를 반대하는 일에 그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진보에게 식량과 자동차와 전기를 정치화시킬 비전과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무능과 무감각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응도 그르쳤다.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승객과 어민이 해경조직과 방재정책을 평가하는 식의 메타구조를 만들어 공적 영역의 개혁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관피아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정책 없이 정권심판론을 주장하니, 시간이 흘러 분노의 수위가 낮아지자 “너희가 정권 잡는다고 한들 별수 있어?”라는 냉소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가장 심각한 공백은 산업정책에 있다. 미국의 석유업계가 공화당을, 정보통신(IT)업계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두 정당의 변별적인 산업정책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산업과 정치를 짝짓는 데 서투르다. 그래서 정보통신도, 전기자동차도, 탈원전도 제것으로 삼지 못한다. 지난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선을 거치면서 정책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는데 유독 경제와 교육 쪽은 미흡한 느낌”이라고 토로하는 걸 들었다. 그도 뭔가 중요한 공백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장하준 교수에 따르면 산업정책을 강조하면 영국에서는 좌파라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이범 선생에 따르면 미국은 다른 것 같고, 글쎄 독일도 그 정도는 아닌듯...


여하튼 이범 선생 주장은 산업정책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강력한 주장. 영국에서 산업정책을 좌파정책으로 친다는 사정 역시 이해할만하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강조하고, 국가개입을 꺼려하는 전통 때문아니겠는가. 경제활동의 자유를 강조하고 보장받을 수 있는 여타 조건들도 있을 테고. 알아서 잘 하면 뭣하러 국가가 개입하려 할까. 또 산업정책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사정 또한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없거가 강조되지 않는 선진국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적일 수도 있고 덜 그럴 수도 있고... 지나쳐서 개입하지 못한만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범 선생은 산업정책의 중요성이나 성공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짧은 글에서 깊은 논지를 전개하긴 어려웠겠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산업 주체들의 자율적 역량도 부족하고, 정부의 개입도 시원찮고... 그런 것 같다.

과기정책은 어떠한가? 사실 과기정책, 특히 기초 과학에 대한 정책의 위치는 좀 애매모하하다. 산업정책의 일환이기도 하고, 또 럭셔리한, 선진국만이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1. 중요한 결정인 내려졌다. 퇴로가 막혔다. 옆 길도 막혔다. 내 앞에 놓인 길은 한 길 밖에 없다. 당황스럽지만 그 한 길을 가기 위해선 꼭 필요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2. 익숙해지면 변화를 선택하기 어렵다. 상황이 극적으로 만들어져야 겨우 변화를 선택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감당해야 할 변화가 내키지 않지만 역시 시간이 해결사인지라도 이내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렇게 한 단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3.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로 시작되는 노래 "희망사항"은 "그런 여자에게 너무 잘어울리는 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로 끝났다. 남을 평가하기 이전에 자기 스스로를 잘 평가해 보라는 얘기다. 자기 성찰... 남을 평가하고 탓하려하다가고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다른 사람에겐 또 어떻게 했나 생각해 보면 결국 탓할 사람이 없다. 그런 성찰을 한다고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자기성찰이 필요하지만 그게 큰 변화를 가져오지도 못한다. 그냥 생긴대로 살 수밖에... 그럼에도 뭔가 잘 맞아서 부침은 있을지언정 오래가는 관계가 있다. 며칠 전 그 경우에 속하는 선배를 만났다. 최근에 사람에 대해서 크게 실망할 일들이 있었는데... 그런 탓에 그 선배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선배... "아낌없이 주는 것 같은" 나무가 아니라 그냥 "아낌없이 주는 ..." 하지만 내가 그 선배처럼 그런 나무가 되긴 힘들다. 그럼에도 좋게, 긍정적으로 유지될 관계는 유지되는 것이다.

4. 이승환의 노래 중 공감하고 또 공감하는 가사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분명히 다른 곳에서도 봤을 내용인데 내겐 이승환 노래의 가사로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는 그런... 최근에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경험했고, 또 내 신변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도 경험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역도 옳은 경우가 많다. 긍정적 예감도 틀린 적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슬픈 예감이 현실화된 이후 긍정적 예감을 얻게 되었다. 슬픈 예감이 맞아떨어졌던 것처럼 긍정적 예감도 맞아떨어지길 희망한다.

5. 이솝 우화의 신포도 이야기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본 정말 탁월한 견해다. 지금이야말로 이 신포도 기제를 마음껏 발휘할 때다. 정신승리를 위해서!


ps)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란 제목의 책이 있었네. 다만 원제는 "The Sense of Ending"이라는 점.

2014년 8월 9일 토요일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찾았다. 산책하다 잠시 앉았는데 그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빠져 나왔던 모양이다. 카페에서 커피 계산하려다 핸드폰과 그 케이스에 넣어두었던 카드가 없음을 확인하고 한동안 패닉 상태에서 찾아다녔다. 결국 누군가가 챙겨두어서 통화 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내가 패닉 상태에 있는 동안 에도 세상은 너무도 평온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듯이... 핸드폰을 돌려 받은 후에 나도 금새 복귀할 수 있었던 그 평온한 일상...

아마 세월호 유족들, 삼성반도체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그런 심정이 아닐런지. 아니 그들은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고, 공감을 얻고 있지 않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가 생각난다. 죽음을 결심한 그들은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그 세상 속의 사람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2014년 8월 8일 금요일

흠. 장하준 교수. 비판도 많이 받는데... 대부분 맞는 얘기 아닌가?  예를 들어...

"삼성의 비리에 격분한 시민 중 일부는 ‘삼성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그것은 삼성(이라는 대기업 집단)을 재벌 가문으로부터 빼앗아서 해외 자본에 헌납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겨우 빼앗아서 왜 외국에 주나. 차라리 국유화하자고 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을지 몰라도) 훨씬 정당성 있다."
벌써 초가을 분위기다. 아니. 이번 여름은 왜 이렇게 싱거운지. 여름인가 했더니 벌써... 이제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사회의 과학"

과학 제자리 찾아주기의 핵심은 "사회의 과학"이다. 과학은 독립된 영역이나 사회의 한 영역일 뿐이다.
(1) 사회의 한 영역일 뿐이기 때문에... 과학을 마치 사회의 밖인양 신성시 할 필요도 없고, 과학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
(2) 사회의 한 영역을 보장해줘야 한다. 과학을 너무 닥달하는 것도 문제다.

2014년 8월 7일 목요일

몇 주를 끌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상황 일찍 종료!!
1. 얼마 전 오래 전에 쓴 글에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이런 소릴 "지껄이느냐"는 비아냥... 지우긴 했는데 뭐 틀린 말도 아니다. 그냥 놔 둘 걸 그랬나?

2. 긍정적인 태도 자체야 좋으나 그게 관성적인 반응으로 보이면 좀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늘 긍정적으로만 보고 또 좋게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런 싸이클까지 맞으면 좋을텐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3. 특정한 상황에서 알게된 사람일 경우, 그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특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모습으로 그 사람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쉬운데... 그런 모습을 깨고 드러내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그럼. 사람이 감추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

2014년 8월 6일 수요일

그리 많지도 않은 인원인데도 갈등이 있다. 두드러지는 갈등은 두 건. 나는 대략 당사자들 중간적인 위치에 있어서 양쪽 이야기를 다 듣는 편이다. 따지고보면 우스운 일들인데... 유치할 수도 있는... 어쩌랴. 그렇게 사는 것임을. 이게 사는 것임을.

2014년 8월 5일 화요일

"그러므로 나는, 이제 여러분이 이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 일상의 삶 - 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 - 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문화에 너무 잘 순응하여 아무 생각 없이 동화되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대신에, 여러분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그러면 속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고, 조금도 머뭇거리지 말고 거기에 응하십시오.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늘 여러분을 미숙한 수준으로 낮추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에게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 내시고 여러분 안에 멋진 성숙을 길러 주십니다"(로마서 12: 1-2, 메시지성경)

"So here's what I want you to do, God helping you: Take your everyday, ordinary life - your sleeping, eating, going-to-work, and walking-around life  - and place it before God as a offering. Embracing what God does for you is the best ting you can do for him. Don't become so well-adjusted to your culture that you fit into it without even thinking. Instead, fix your attention on God. You'll be changed from the inside out. Readily recognize what he wants from you, and quickly respond to it. Unlike the culture around you, always dragging you down to its level of immaturity, God brings the best out of you, develops well-formed maturity in you."(The Message)

"I appeal to you therefor, brothers and sister,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s, so that you may discern what is the will of God -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NRSV)


"그러므로 兄弟(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慈悲(자비)하심으로 너희를 勸(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祭祀(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靈的(령적) 禮拜(예배)니라 너희는 이 世代(세대)를 本(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變化(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善(선)하시고 기뻐하시고 穩全(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分別(분별)하도록 하라"

2014년 8월 3일 일요일

두번째 휴가가 끝났다. 목금토일.... 수요일 저녁에 중요한 일을 하나 처리하고선... 그 핑계로 그냥 신나게 놀았다. 여행도 가고, 식구들하고도 놀고... 열심히 놀았으니 다시 본업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노는 건 한정없이 놀고 싶고, 본업 생업으로 돌아가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하루를 놀건 한 달을 놀건 간에... 전환기의 괴로움은 겪어내는 수밖에...

그동안 느낀 바가 있어서 내일부턴 변화를 주려고 한다. 벌써 8월이니까.

인생... 참 어려운 노래여라...

2014년 8월 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