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예능'이란 카테고리...

유선 방송에선 도무지 언제 적 최초 방영된 것인지 알기 힘든 묵은 영상들이 어지럽게 오고 간다. 그 유선 방송용 프로그램 시장에서 이른 바 '예능'프로그램이 가장 환영받고 있음은 不問可知... 내용을 보고서 재방인지 구분할 능력이 떨어지는 내겐 어짜피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다. 어쨌든 어제 본 '패밀리가 떴다'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있어서 기록해 두고자 한다. 고정 출연자들이 있는데다 이승철이 초대 손님(?)이었다. 공교롭게 유재석을 제외하면 나머진 대부분 가수 출신이었다. 가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이승철의 정체성은 '대선배'다. 개그맨 '출신'이자 프로그램을 이끌다시피하는 유재석에겐 그저 여러 손님 중 하나거나 '방송계' 선배 정도 (물론 '형님'이라고 부르긴 한다). 커뮤니케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중 출연자들이 가수와 개그맨이라는 정체성 중심으로 배치되기 시작하고, 유일한 개그맨 '출신'인 유재석이 소외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중간 중간 정체성에 대한 다른 해석이 충돌하는데... 유재석은 윤종신에게 '예능계' 후배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려 하고, 이승철은 가수라는 정체성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어하는 윤종신에게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이라고 하면서 배제하려고 한다.

'예능'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이 흥미로운 사회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얘기한 적이 있었고, 그 특징 중 하나로 '고향' 장르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이들이 '예능'이라는 새로운 - 혼성적인, 애매한... - 영역에서 빼어난 활동을 보이는 경우를 언급했다. 어쩌면 정반대에 위치시킬 수 있는 다른 특징을 발견했는데, 즉, '예능'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도 '고향' 장르의 정체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니 '예능'은 바로 고향 장르와 긴장감 때문에 새로운 장르로서 유지될 수 있다.

비슷한 해석은 학문 커뮤니케이션에도 적용된다. 분과학문의 경계와 학제간 연구나 새로운 학문의 경계 혹은 정체성에 대한 논의에서... 학제간 연구는 분과학문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고 존재할 때만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경계를 뛰어 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잡종적 현상이 많아지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제한된 복잡성만을 감내할 수 있기 때문에 익숙한 경계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부여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주목받고, 성공할 수 있는 유형의 활동이나 인간성이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고향 장르에 연결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면 장기적으로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예능'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핵심은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한 울타리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긴장감은 아닐지... [흡사 군대 내무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도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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