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영웅이 된 과학자...

국민 영웅이 되어 날다가 추락한 과학자를 아시오... 그렇다. 황우석 이야기다. 하지만 동서고금 영웅이 된 과학자 목록은 꽤 길다. 황우석처럼 극적인 부침을 겪은 이도 포함해서...(예를 들어 구소련의 생물학자 리셴코).
오늘 동아일보 기사 제목이다 "한 과학자의 죽음에 13억 중국이 울었다". 첸쉐썬(錢學森) 이란 원로과학자가 지난 달 31일 죽음을 맞이한 것 같은데. 기사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 시에서 1911년 12월 출생한 첸 박사는 상하이자오퉁(上海交通)대를 1934년 졸업한 후 칭화(淸華)대 유학생에 선발돼 중국대륙이 혁명과 항일전쟁으로 들끓던 당시 미국으로 갔다. 1939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항공우주 및 수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에서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우수 두뇌 유출을 막으려는 미 당국이 귀국을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6·25전쟁에서 중국에 붙잡힌 미군 조종사와 1955년 교환되면서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후 중 국방부 전략미사일 개발프로그램에 참여해 핵무기 및 우주개발을 ... "

"첸 박사가 중국인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우주과학에 대한 기여 못지않게 중국인에게 애국심과 자부심 등을 심어주었기 때문. “내가 미국에서 배우고 일한 기간은 모두 조국으로 돌아가 인민을 위해 일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왜냐면 나는 중국인이니까” “외국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인도 다 할 수 있다” 같은 말 들은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전형적인, 아니 너무도 선정적인 민족주의/국가주의적 레토릭이다. 이런 기사는 내 평온하던 속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과학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국경/조국이 있다"던 그 황교주님 말씀이 생각나서다. '전국민과학화'를 주창하시던 우리 박총통의 지령이 떠올라서다. '헌재' 수준이나, '조중동' 수준이나. 참...

영웅으로 만들어진 과학자는 적지 않다. 특히, 노벨상이나 최초로 뭘 발견한 사람들은 대개 그 반열에 쉽게 오르고, 또 최초 우주인도 대개 영웅, 적어도 유명인사로 대접 받는다 (최근 발견한 논문은 스웨덴 최초 우주인 Christer Fuglesang을 다루고 있는데 제목이... "Gunnarsson (2009), The First Swede in Space - the making of f a public science hero" 1992년에 우주에 간 모양).
이제 위인전 따위는 얘들 손에서 뺏을 필요가 있는데, 진리만을 추구하던 숭고한 과학자상을 만들어내는 과학사 역시 서가에서 치워야 한다. 첸쉐썬 옹이 정말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는지 모를 일이다.

18세기 역사학자 비코(Vico)는 역사의 전개를 순화과정으로 보았는데 그 한 사이클은 이렇다: 신의 시대 - 영웅의 시대 - 인간의 시대 - 야만의 시대. 어이, 동아일보여, 좀 미련이 남더라도 '영웅 시대'는 이제 좀 보내줘도 되지 않을까?

ps)'영웅' 혹은 '열사(烈士)가 필요한 시대가 있다. 혼란기, 이념 갈등이 치열할 경우. 영우이 필요 없는 시기가 태평성대. 허나... 근대는 기본적으로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다. 없는 싸움, 위기도 만들어 내야 굴러가는... 언론, 정치, 학문이 대표적. 위기라고 해야 대안(세력)이 필요하거나 재집권해서 안정시켜야 되고 (정치), 싸움이 있는 것처럼 구성해야 얘기가 더 재미있어 지고 (언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 태어난 체계 (학문).... 위기가 일상화되면 '인간의 시대'는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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