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2일 금요일
스포츠와 연애의 공통점
오늘 한일전 야구 준결승 소식을 들으면 든 생각. 8회말 2대 2, 상황에서 이승엽의 홈런으로 극적인 역전. 캬... 왜 이럴 때 아나운서들이 쓰는 상투적 표현이 있지 않은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어쩜 실제로 '시청자'는 스포츠와 드라마를 같은 맥락에서 소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맥락이란 게 뭘까? 특히 전문화된 운동경기는 왜 그렇게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상상하기 힘든 엄창난 액수가 오가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가? 드라마나 전문스포츠가 갖는 기능을 '예측불가능한 상황, 극적인 상황의 체험'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사회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근대화는 합리화, 분화의 과정이다. 베버는 합리화를 탈주술화, 예측가능성 증대 등으로 표현한다. 예측가능성의 극대화가 근대를 이끌어 낸 힘의 원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합리적으로 치부되던 모든 것들이 원천적으로 배제되거나 관리가능한 영역 안으로 포섭된다. 광기, 감정, 신분, 도덕, 육체 등등. 허나 모든 게 예측가능한 사회란 또 얼마나 지루한가. 그렇다고 우연, 예측불가능성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상황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 공황, 외환시장 붕괴 등을 생각해 보라. '재미있게'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드라마적인 요소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욕구를 합리적인 방식, 관리가능한 범위에서 채울 수 있는 방식으로 전문 운동경기가 등장한 것은 아닌지... 드라마, 영화도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지 않는가? 누구나 불륜, 일탈, 복수 등을 꿈꾸지만 그런 욕망은 통제당한다. 안전한 방식으로 극적인 상황을 간접체험하게 해주는 기능을 하는 건 아닌지. 우리 마교수님의 지론이 '문학의 기능은 대리배설'아니었던가? 문학, 영화, 스포츠는 어짜피 '문화상품', '소비재'라는 점에서 경제체계와 연동된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연애도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 신분 이동 혹은 신분확인, 경제적 안정성, 경제력 확보 등에 대한 부담에서 해방된 현대 연애는 어떤 면에서 스포츠, 드라마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실제로 체험한다는 것. 아, 실제로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것도 그런 욕망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담 결국 인간일까? 인간의 욕망? 허나 그 욕망이란 것도 본원적으로 주어진 것만은 아니니, 결론은 다시 共進化인가? 욕망과 사회의 공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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