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ps) 이 시는 안치환의 노래로 먼저 알게 되었다 ( 안치환 9.5집, '정호승을 노래하다', 2008). 뭐랄까... 좀 촌스러운 느낌? '서울의 예수'의 정호승과 '소금인형'의 안치환의 노래는 좋으나 21세기에 들어선지도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아니, 예전보다 더 '통속적'이된 그 모습을 확인하는 일엔 반가움보단, 뭐랄까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런데 이 촌스럽고 통속적인 노래가 오늘따라 생각났다. 그래... 촌스러움에 힘이 있는 것 아니겠어? 우연에 우연으로 점철되어 줄거리만 듣고선 도무지 볼 것 같지 않지 않은 드라마가 '국민 드라마'가 되는데 이유가 있지 않겠어? 이러다 어느날 '뽕짝' 가사가 절절하게 내 가슴 속을 파고드는 일이 생길지 누가 알랴...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삶의 그늘','우울' 이런 걸 연상하게되는데 - 나도 그랬다 - 그게 아니라 햇볕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 얘기다 (아, 이 무슨 '아낌없는 나무'같은 상상력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없다. 모든 속내를 다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 모두 구라다. 아니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그냥 들어만 주면 되는데... 그리고 표내지 않으면 되는데... 대개 그러질 못하니까 아애 말을 꺼내기 힘든 것 아닌가... (특히, '어른'들이 그냥 듣고만 있질 못한다. )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혼자 속으로 삭혀야할 일이 생겼는데, 그 상황에서 이 노래가 떠올랐고, 그래서 멀쩡한 안치환, 정호승 제씨가 불려나와 싫은 소릴 듣고 계시는 중...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