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5일 금요일

Be Still My Heart (Silje Nergaard, 2001)

노르웨이 사람이라는데 이름이 어렵다. Silje Nergaard. '실예 네가드' 정도? 화면발에 속지 말자, 1966년생! 이런 음악이라면 하루 종일 배경으로 깔아 두어도 지겹지 않겠다. 팝재즈란 장르가 있다면 이런 음악을 제일 먼저 끼워줘야 하지 않을까? 동요에 더 어울릴 것 같은 가볍고 '귀여운' 목소리인데 어찌된 일인지 재즈에도 어울린다 (재즈 냄새가 강하게 나는 다른 노래에서도... ). 음악이 특별히 좋아서 감춰주는 건지, 아님 내공이 잔뜩 들어있는 '위장된 가벼움'인 건지... [영상을 보고 있기가 부담스럽다. 발음에 따른 혀 위치의 변동 등을 파악하는 데는 좋을 지 모르겠겠으나... 잘 좀 만들지... ]



ps) 어떤 노래를 듣던 중 틀림없이 이 여인네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니 미쿡 출신 선배 가수였다. 이름은 Blossom Dearie (1924 – 2009). 이런 목소리도 계보가 있구만.

2008년 7월 24일 목요일

漸入佳境

국가기록원, 盧 전대통령측 10명 고발
한[나라당] "盧정부 [미쇠고기] 수입약정 밝혀져..누명 해소"
변희재 "포털의 변절은 노무현 정권 탓"
“‘MB 정부’ 하다보니 노무현 정부네”

오늘 아침 확인한 기사들이다. 참으로 '점입가경'이란 표현을 떠 올릴 수 밖에 없는 시츄에이션이다 (이 표현은 언제부터인가 반어적으로만 쓰인다). 지난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성급하게 내쳤던 틀을 다시 수용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 때문인지 노무현 컴플렉스 표출이 극에 달한 지경이다 (아니, '극'이란 표현은 아껴두자. 이 정부가 어디까지 보여줄 지 예단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배웠다). 신곡을 내긴 했는데 재미를 못 보자 지난 5년 동안 불렀던 레파토리를 다시 울궈먹고 있는 가수를 보는 것 같다. 화, 짜증 나는 단계를 지나니 이젠 '기대감'을 갖는 지경에 이른다. 도대체 이 정부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망가질 수 있을까... 또 반성도 했다. 그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리지만 어느 모로 보나 한국사회는 좋아지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었는데, 이 얼마나 성급한 발언이었던가. 또 어정쩡한 정동영이 되어 5년, 혹은 길게는 10년간 겪었던 상황의 연장전을 보느니 차라리 이명박이 되어서 바꿔봐야 어쩔 수 없는 현대 정치의 근본적 한계를 확인하는 게 더 낫다라고 했던 발언도 거둬들이고 싶다. 다른 한편,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도 깨닫게 해준 점은 고마워야 해야 할 일이다. 2MB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일 줄이야... 또, 숨죽여 엎드려 있던 기득권층들이 득세할 때 역사가 얼마나 쉽게 퇴행하는지, 그런 교훈을 얻은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참, 기가 막히고 허탈하다. 백주대낮에 강도당한 사람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볼테르와 유교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사상가 볼테르가 유교를 적극 수용하려고 했다? 영향받은 정도가 아니라? 흠. 재미있는 얘기다. 아래 소개했던 그 일본 교수 때문에 유교에 대해서 찾아보다 발견한 것인데... 동서양의 사상교류가 생각 이상 활발했었음을 대략 알고는 있는데, 아직 전체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 사실 그런 지식은 서구학문을 하는 동아시아인에게는 상식으로서 전제되어야 마땅한 내용인데도 말이다. (내가 이런 발언을 하면, P선생 좋아하겠다... ^^)

[아래 인용문을 포함하고 있는 글 원제는: 서양의 유교 이해에 대한 담론학적 분석 (이승환), 출처는 여기.]
"17세기부터 이미 선교사들에 의해 서구에 소개되어 왔던 유교사상은 ‘이성’에 의하여 세계의 ‘자연법적 질서’를 탐구하던 계몽사상가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특히 유교의 실천적이고 합리적인 도덕정치의 이념은 절대왕정에 대항하여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던 계몽사상가들에게 이상적 정치철학으로 보였으며, 예수회 선교사들이 묘사한 유교적 군주는 ‘계몽적 지도자’의 전범으로 비쳐졌다.8) 또한 계몽운동 시기에 세계를 ‘신의 질서’가 아니라 ‘이성적 질서’로 파악하려했던 독일의 이신론(理神論)과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무신론은 신유학의 ‘리(理)적 세계관’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계몽시기 프랑스에서 유교사상을 적극 수용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를 들 수 있다. 볼테르가 지닌 동양문화에 관한 지식은 그보다 조금 앞서 활약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2008년 7월 23일 수요일

소통, 진정성

만약 요즘 언론을 통해서 자주 듣는 단어, 개념 중에서 의미론 연구 대상을 꼽는다면 난 '소통'과 '진정성'을 꼽겠다. 둘 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아주 '각광받는' 개념이 되었다. 내 관찰에 따르면 이정부는 초기에 '섬기는 리더쉽', '일꾼' 이런 식으로 새정부의 틀거리를 잡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수위 때부터 능력과 철학 부족으로 갈팡질팡하자 이제 그 모든 비난의 근거가 '오해'였다고 강변하기 시작한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포 파악할 능력마저 갖추지 못한 이 인사들은 해결 방식을 이제 '진정성'을 담은 '소통'에서 찾으려고 한 모양이다. 진심을 몰라주는 야속한 국민들,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하면 오해가 풀리고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 생각해보면 이건 하버마스식 해법아닌가? 5공시절로 돌아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쩜 하버마스식 이상적 담화상황을 지향하려고 하는 이 정부의 속내를 우리가 너무 몰라주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들은 소통개념은 자신들의 일관성 없는 메세지를 어떻게든 이해시키려는 PR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상대가 전하는 메세지는 전혀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 처럼. 참으로 '소통', '진정성'이라는 개념이 부끄러워해야 할 사태다. 재미있는 건 왜 굳이 '소통', '진정성'이란 개념을 가져다 썼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 개념들은 매우 어색하고 생뚱맞아 보이는 데도 말이다. 그럴듯하게 들리니까?
내 관찰에 따르면 '진정성'은 문학평론 등 문학 언저리에서 주로 쓰이던 단어다. 그건 그나마 참아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진정성'이 들어간 표현을 더 자주 듣게 되었는데, 주로 사회운동이나 나름 진보적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이제 심지어 이 정부 인사들의 입에서 이 단어를 듣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성'이 전달하는 의미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소통이란 표현도 비슷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의사소통'은 아마도 'communication'의 번역어로서 처음 등장했을텐데, 언제부터인가 '소통'으로 줄여서 쓰는 일이 생겼다. 어쩌면 하버마스의 책 'Theorie des kommunkativen Handelns"의 한글판 제목을 '소통행위이론'으로 단 것이 그 첫 시도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역자 서문에 하버마스의 Kommunikation 은 언어적 의사소통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소통'으로 번역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건 그 무렵부터 네 글자인 의사소통의 절반만으로 비슷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경제성 때문인지, 아니면 왠지 애매모호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효과때문인지 '소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되었다. '진정성', '소통'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즐겨 선택되며,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더 자주 쓰이게 되면서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 또한 변했을까? 구조적 차원의 변화와 연결지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구조적 변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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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MB정권에 의해서 애용되고, 이 정권에 대한 비호감도가 급증하면서 '소통'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는 현상도 등장한다. 2008년 9월 27일자 기사 "김기덕 감독 '관객과의 소통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기사에 대한 반응 중:

'소통' 얘기 좀 꺼내지 말아줬으면... [1] 유빈님 08.09.26
이젠 이 단어만 들으면 무서버 그넘아 생각이 나서.

2008년 7월 22일 화요일

촛불과 선비 전통

'1988~96년 서울대에서 한국철학과 한국문화사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교토대학원 오구라 기조(49·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가 지난 6월30일치 <도쿄신문> 석간에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서 본 한국형 민주주의’로 눈길을 끌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 기사 - 촛불: 비도덕 권력 내치는 유교적 혁명.").
"오구라 교수는 <엔에이치케이>(NHK) 한글강좌 강사를 지내 일본에서 한국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조선왕조에서 성균관이라는 국립중앙유교대학의 엘리트들은 왕에게 직소할 일이 있으면 광화문에 모여 데모를 해 잘못한 왕을 바로잡았으며, 그런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지적한 그는 이 글에서 유교적 전통과 함께 반미, 멀티튜드, 휴대전화 등의 키워드를 통해 한국의 촛불시위를 분석했다. ...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의 유교는 혁명사상이 없는 데 비해 한국의 유교 전통은 윗사람이 도덕성이 없을 때 타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질서적인 세계관에서는 어떤 관계이든 윗사람에게 도덕성을 요구한다. 즉, 한국 사람에게 미국의 존재는 너무 크니까, 큰 영향력을 주는 존재이니까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흠. 제목이 아주 자극적이다: "촛불: 비도덕 권력 내치는 유교적 혁명." 일본과 차이가 분명하게 있긴 하고, 그럴듯 하기도 한대... 특히, 광화문의 상징 같은 것... 하지만 전통, 문화, 역사는 사실 매우 다양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지나치게 인과론적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거꾸로 원인을 찾으려고 마음 먹으면 무언가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 현대 한국의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잊을만하면 다시 등장하곤 한다. 한국에서 십여 년전부터 등장했다가 금융위기사태 이후 쑥 들어간 '유교 자본주의' '유교민주주의' 논의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뚜웨밍 교수 같은 주창자가 펄펄 살아있긴 하지만... 어쩌면 한국에서도 유교민주주의, 유교자본주의 같은 나름 독창적인 입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맑시즘도 마찬가지고... 좀 정정할 필요가 있겠다. 좋다. 촛불시위를 유교적 혁명으로 볼 수 있다고치자. 그 주장이 근거가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는 사회이론일 것. 牽强附會식으로 유교를 들먹거리지는 말잔 말이다.

좋은 사람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 사람이 다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마을의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요즘 부쩍 자주 접하게 되는 '착한 사람 컴플렉스 벗어나기', 혹은 '화를 세련되게 내기'도 넓게 보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담론의 필요성은 개인화의 진전을 보여주는 사례아닐까? 인간관계를 규율해주던 규칙이 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예수님도 곧잘 화를 내시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허나 화도 '잘' 내야하고, 미움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또 다른 강박기제가 아닐지...

생명윤리의 사회학

생명윤리의 사회학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선 생명윤리 자체가 60년대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72년도에 비로소 처음 등장한 개념이기 때문이고, 그 이후 생명윤리가 학제간 학문과 실천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에서건) 사회학자들의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서서히 증대된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R. De Vries). '생명윤리 내 사회학'(sociology 'in' bioethics)과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 (sociology 'of' bioethics). 생명윤리 내 사회학은 사회학적 지식, 방법을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이 경우 사회학자는 협력자 혹은 하나의 생명윤리학자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에 생명윤리의 사회학에서 생명윤리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나의 관심은 이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에 있다 (앞으로 언급할 생명윤리의 사회학이란 바로 이 측면을 가리킨다). 이 생명윤리의 사회학의 목적은 생명윤리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De Vries는 이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을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한다: 병원에서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 그리고 생명윤리의 정황. 이 논문은 관심은 후자에 있다. 생명윤리를 사회적 과정의 하나로 보는 것이고, 기존 사회학적 개념, 이론, 방법론을 사용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내부도 사실 매우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생명윤리에 대한 역사적, 거시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거시적인 관점은 사회학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발달에서 '윤리' '도덕'은 오히려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뒤르카임, 베버). 최근에 윤리적 논쟁이 중요해지면서 (환경, 과학 기술 이슈가 거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cf. Nelkin) 사회학자들 가운에 윤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난다 (Lash, Bauman, Giddens, Beck 등). 하지만 이런 거시 사회이론적 윤리에 대한 관심은 경험적 연구과 잘 만나지 못하는데, 그건 생명윤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거시적 연구는 윤리, 도덕에 대한 사회이론적 관심과도 연결될 수 있다.

public bioethics
생명윤리 자체의 변화나 생의학, 생명과학의 변화,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사회학적 적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흐름은 한 마디로 전문생명윤리에서 대중생명윤리로 전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생명윤리라는 새로운 분과학문, 생명윤리학자라는 새로운 전문직업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또 생명윤리라는 학문이 제시하는 여러 기준, 원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있다. 그리고 생명윤리학자가 주로 개입하던 병원, 의료제도 속에서 생명윤리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생명윤리'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전문적 영역을 벗어나서, 정치, 매스 미디어까지 확대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공공생명윤리라고 부른다.
생명윤리는 학술적, 전문적 담론의 경계를 너머선, 어떤 의미에서 '문화'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도덕경제'의 '通貨'(currency of global moral economy)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Salter). 체계이론의 개념을 빌면 생명윤리를 의미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라는 문화, 통화, 의미론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드러나며, 어떤 다른 문화와 경쟁하는지 그것을 밝히는 것이 공공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생명윤리의 특징 중 하나는 최신 생의학적 지식이나 기술의 발달과 그것의 규제가 윤리적 논쟁이 중심이되는 것이다. 생명윤리의 정치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공공생명윤리는 정치적 결정과 관련된 각종 생명윤리위원회다. 물론 의료현장의 생명윤리와 정치화된 생명윤리는 다루는 서로 구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별개로 취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적 생명윤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공공생명윤리에 거는 큰 기대 혹은 실망을 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문화사회에서 윤리는 필연적으로 복수일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몇몇 전문가들이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공생명윤리는 흔히 정부, 의회 등에 자문을 제공하거나 혹은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공생명윤리도 많은 문제점,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누가 참여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어짜피 전체 정책결정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 공공 생명윤리 기관들의 자문이나 보고서 내용엔 큰 차이를 찾기 힘들지만, 막상 정책적 결정 논의는 각 국가 마다 차이가 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명윤리에 대한 정치적 논의를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체계이론은 유용한 이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구조와 의미론의 구분 등 체계이론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개념은 생명윤리라는 개념을 둘러싼 복잡한 현상을 더 잘 묘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2008년 7월 10일 목요일

4.2. 갈등의 심화와 생명윤리 (1999 - 2003)

인간복제가 개체복제와 배아복제로 분화되면서 본격적으로 갈등 구도가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1999년 9월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주최로 열렸던 합의회의 (9.10 - 9.13). 16명중 14명의 반대로 배아복제에 대해서도 반대하기로 합의한 것. 이는 물론 몇몇 비전문가들이 숙고해서 만들어낸 제안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논쟁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합의회의에서 윤리적 측면, 생명윤리가 중요한 논점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연구 현황, 법적 윤리적 논점, 여러 국가의 규제 정책 현황 등 생명윤리논쟁에 대한 기본적 논의 도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생명윤리'는 서구에서 마련되었던 원칙론(4원칙) 혹은 나중에 황우석 사건 때 문제가 되는 사전동의 (informed consent) 같은 생명윤리, 의료윤리의 기본적 원칙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생명윤리는 복제, 줄기세포 등 최첨단 연구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였고, 연구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과기부, 복지부가 법제정 논의를 주도하며 경쟁하던 시기에 (2000 - 2003) '생명윤리' 의미론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다. 만들려고 하는 법을 '생명윤리법', '생명윤리기본법'으로 부르는 것 만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생명윤리는 '복제'의 윤리적 문제라는 틀을 넘어서서 생의학 여러 분야를 다루도록 전환된다. 생명공학에서 생의학 문제로 전환되는 데에는 무엇보다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컸다. 과기부와 주도권 싸움에서 결국 인간개체 복제 금지 등 최소한의 규제를 지향하던 과기부마저도 '생명윤리'가 지칭하는 내용을 확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과기부 주관으로 구성되었던 '생명윤리자문위원회' 활동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00. 11. - 2001.10.). 자문위원회 활동과 발표된 시안을 중심으로 제시되었던 논의도 배아연구 허용 범위가 핵심이었다. 윤리논쟁이 매우 특정한 이슈에 집중된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여러 생명윤리 이슈들은 별 논의없이 서구에서 널리 알려져있는 방식에 따라 수용되고, 큰 저항없이 기타 넓은 연구 분야가 규제의 대상으로 도입되게 된다. 한편으로 생명윤리의 의미가 확대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확대된 생명윤리가 여러 영역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논쟁적이었던 주제는 '배아를 이용하는 연구 허용 범위'가 되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생명윤리가 쉽게 정착되었지만 전반적으로 '생명공학육성법'을 만들었던 그 경로 위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발전, 경제성장에 걸리는 분야에 논의가 집중되는 것이다. 그게 지배적인 해석틀이고 반대를 하더라도 그 틀을 수용하는 선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공유하는 것. 그 결과 '생식 기술', '여성의 몸', '환자의 권리' 등은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생명윤리'라는 의미론이 갖는 포괄성을 이용하려는 담론연합체가 한 쪽에 있고, 다른 담론연합체는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피하려는 한다. 관철시키려는 법안의 이름이 다르다. 생명윤리법, 생명윤리기본법, 생명안전 및 윤리에 관한 법률이 한 편에, 인간복제금지에 관한 법률이 다른 한 편에.
국가 차원의 논의에서 그런 지배적인 해석틀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개인의 권리, 독일의 경우 인간 존엄성이다. 영국은 어쩌면 '관련 연구를 선도하기'일 것이다. 생명윤리 논쟁도 사실 그 큰 프레이밍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황우석 사건과 더불어 자발적 동의가 큰 문제가 되었지만 더 이상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4.1. 돌리 이후 복제논쟁에서 생명윤리 (1997 - 1998)

사실 복제양 돌리의 출생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윌머트 등 그 연구 참여자들은 반향이 그 정도로 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돌리 출생이 알려진 1997년 2월 이후 비슷한 해석이 세계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생명과학 관련 이슈 중 이렇게 즉각 세계적인 사건이 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세계화의 결과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뉴스의 전파와 함께 비슷한 해석이 곁들여진다는 것.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언론, 정치, 학계, 종교 모두...). 인간복제금지에 대한 합의에는 쉽게 도달하였다 (지난 수십년 간의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 역사를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복제연구의 생명윤리 혹은 생명공학윤리,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위협으로 이해된다. 그 이후 이제 해석/의견이 분화된다. 인간복제는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하지만, 그때문에 생명과학, 생명공학 연구 자체가 위축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과, 이참에 생명공학이 안고 있는 안정성, 윤리 문제를 전반적으로 규제하는 법을 만들자는 입장으로. 재미있게도 황우석 씨가 후자적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아니, 황교수는 줄곧 이런 입장을 견지했다. 사회적 규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연구를 제한하지 않는 한. 사회적 지지를 얻어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공학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자면 도대체 어떤 것을 얘기하는 것인가? 초기에는 분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언론은 그런 구체적 생명윤리의 내용에 대한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언론이 그런 이슈를 앞장서서 제시하겠는가? 뉴스가치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아직 본격적인 갈등 전선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이미 돌리의 충격이 있었던 터라 어지간한 거로는 뉴스가 안된다).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인간복제금제 입법화를 시도한다. 허나 문제에 봉착한다.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만들면서 인간복제만 달랑 금지하기 힘든 것이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술, 연구 방식이 이제 확대되기 시작한다. 당연히 외국의 사례들을 참조한다. 거기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은 우려를 표방한다. 다른 한 편 정부에서도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연구를 전문가들에게 위탁한다. 그들의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외국에서 다뤘졌던 생명윤리 문제가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된다.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맘먹고 생명공학을 이슈로 만들려는 그룹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당연히 이슈 확대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아직까진 결정적인 갈등으로 확대되지 않는다. 인간복제금지가 주요이슈로 남아있다
돌리가 한국 내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논쟁의 지속을 설명하긴 힘들다. 몇 가지 국내적 요인을 언급할 수 있다. 우선, 생명공학의 위험성 논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유전자 조작 생물체, 곡물, 식품 등의 안정성 문제가 제기된 것. 가장 핵심에 있었던 시민단체 네트워크가 '생명안전 윤리 연대'로 이름을 붙인 것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GMO와 복제는 생명공학이 뭔가 문제가 있는 기술이라는 해석을 이끌어 내는 데 상생작용을 한 것이다. 논쟁 지속성의 또 다른 원인은 논쟁의 대상이 국내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가능한 일로 치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1998년 8월 GM곡물이 한국에 수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 해 12월 경희대 불임클리닉에서 체세포복제를 해서 4세포기 배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더 이상 규제를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 그 후 2개월 후 2월 12일 '영롱이'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제 인간개체복제 금지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속력있는 정책은 아니지만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을 꼽을 수 있는데, 생명윤리학회가 1999년 3월 28일에 발표한 '생명복제에 관한 1999년 생명윤리선언' (흥미롭게도 황우석 박사의 이름이 명단에 보인다), 4월 30일,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생명복제 연구지침(안), 6월 5일엔 한국 철학회에서 발표한 '생명의료윤리에 관한 1999년 한국철학회 선언'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간복제금지에 대한 합의는 실제 논쟁에서 큰 의미가 없다. '복제기술', '생명윤리' 라는 '양파'를 까면서 이제 갈등이 불거지는 것이다. 어디까지 규제를 할 것인지, 어디까지가 생명윤리를 지키는 것인지 등등.
인간복제라는 충격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이슈는 이제 본격적 논쟁에 자리를 내 준다. '생명윤리'도 이제 그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생명윤리는 최첨단 생명공학 분야의 윤리문제에 대한 해석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가 차츰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생명윤리는 구체적인 윤리적 기준에 대한 판단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어떤 이슈가 윤리적 문제가 되는 지를 지칭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경우 지극히 서구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대안적 의미론이라고 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민족주의? 불교? 유교?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그 때만해도 그런 입장에서 복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거리가 별로 없었다. 나중에 생명윤리학이 분화되면서 지역적 생명윤리를 찾으려 하지 중요한 행위자인 생명과학자들 스스로 생명윤리의 틀 자체는 오히려 인정하고 있는 편이었다.

2008년 7월 9일 수요일

생각 하나

속담, 숙어, 사자성어 등이 대개 그렇지만 몇 개의 단어만 가지고서 삶의 단면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그런 문장들에 놀랄 때가 많다. Ende gut, alles gut! 은 어떤가? 다른 문화권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독일어 표현는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약간 비틀면, "Ende nicht gut, alles nicht gut"이다. 더 실감난다. 이런 심리적 기제의 작동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성경 복음서에 먼 친척뻘쯤되는 비유가 있는데,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는 내용이다. (마 7: 16 - 20). 독일 속담의 'Ende'와 복음서 '열매'는 어떤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느낌은 약간 다른 것 같다. 그 이전까지의 모든 과정(alles)을 다 정당하게 만들 그런 힘을 가진 'Ende'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성공, 출세 뭐 그런 류 아닌가? 반면에 성경의 '열매'는 좀 더 추상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문을 보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고 했으니 말이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아름답다, 아름다운 열매라... 그게 뭘까? 우선 순복음 교회의 공식 신학인 '삼박자 (혹은 삼중) 축복'은 어떤가. 삼박자란 영혼, 범사, 건강이고 예수님를 믿으면 그 3박자가 다 잘 풀린다는 좀 뜨악하게 하는 이런 것도-신학이다. 허나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애매하다. 그 중 '건강'이 좀 구체적인 것 같지만 '건강/건강하지 않음'의 구분이 얼마나 위태로운 구분인지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밖에 막스 베버가 얘기했던 개신교 윤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칼빈 교리 중 구원예정설이 있는데 그 예정의 여부는 현세의 경제적 성공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의 친화성이 있다는게 베버의 유명한 테제다. 이런 베버 테제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기독교 안에서 성공, 출세 지상주의가 강하다는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한국 기독교에서 더 그렇다는 것도... 솔직히 어디 그게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긴인가. 현대인들 중에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 탓이거나, 아님 자본주의 때문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MB가 원인제공자일수도...
좀 다른 맥락에서... 우린 여러 가면(persona)을 쓰고 살아간다. 내 속내를 드러내더라도 걸러야 한다. 어쩌면 위에서 얘기한 '성공'과 관련된 쪽으로 해석되도록... 사회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특성, 성향, 덕목, 기질은 여과없이 드러내도 되지만, 그 반대를 드러낼 때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런 조절은 잘 해야 한다. 여차하면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으로 이해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솔직해도 곤란하다. 이유는, 뭐,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이것에서 자유로운 사람 역시 별로 없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떤 가면을 쓸 지, 맨얼굴을 얼마나 보여줄 지,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아, 그리고 맨언굴과 가면, 그 구분은 실제로는 허구다. 아니 '맨얼굴'은 지평선과 같다고 하는게 더 적절하겠다. 보이긴 하지만 도달할 수는 없는...) 슬픈 현실이지만, 사는 동안 여기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희망의 바깥은 없다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 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제목 모르는 이외수 그림 (출처)

2008년 7월 8일 화요일

5. 황우석 사태에서 '생명윤리'

한국에서 1990년 중반 이후 생명윤리 의미론은 매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명윤리 담론의 확대는 그 자체로서 황우석 사태의 촉발, 해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연구원의 난자 사용, 기증자의 동의를 '제대로' 얻지 않은 채 이용된 난자 사용이라는 생명윤리, 연구윤리 위반이 황우석 사태를 촉발시켰고, 이것에 대해서 황우석 스스로도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연구원이 이타적인 동기에서 기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얻지 못했다. 왜 서구적 윤리기준을 우리가 꼭 따라야 하느냐라는 주장은 주로 황우석 지지자들 그룹에서 제기되었다. 과학자, 전문가로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는 없었다. 소위 그 정도의 생명윤리 원칙 ('informed consent')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은 것. 이전에도 황우석은 인간 개체 복제 금지 만큼은 불가하다는 입장에 있음을 여러 번 강조한다.자신의 연구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지키려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윤리의 해석 유연성' 혹은 다양성 주장은 황우석 사태에서 전혀 힘을 얻지 못한다. 비록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서는 현상이 일시 있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데이타조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재현기회를 줘라'라는 주장은 '논문 데이타 조작이 확인된 이상, Keine Chance'라는 과학체계의 윤리적 기준에 근본적 도전이 되지 못했다. 엄청나게 큰 혼란과 패닉을 가져올 것으로 보였던 황우석 사태가 어떻게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흐지부지해진 것은 설명을 요하는 사태다. 학자들은 그 동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지만 말이다. 황우석 사태의 신속한 해결은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과학, 그 과학의 자기 성찰, 자기보호를 위한 윤리 의미론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남한이라는 지리적 경계, 혹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작동의 중요한 준거인 한국 정치, 한국 언론의 경우 유권자 혹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의미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과학에 대한 성찰이론으로서 번역되지 않는한 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배아에 대한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윤리 틀 내에서도 이론이 있다.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생명윤리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동의' 혹은 '데이타 조작' 등은 매우 강한 윤리 기준이다.
두 논쟁을 종합하면, 생명윤리는 유연하면서도 그 핵심은 가지고 있다. 입법논쟁에서는 생명윤리의 틀을 가져 왔지만,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기준은 기존 한국 생명공학정책의 연속성 속에서 세워졌다. 하지만 민감한 이슈를 제외하고선 법의 나머지 조항은 대개 서구적 생명윤리의 기준들로 채워졌다. 황우석 논쟁의 경우에서는 그러한 생명윤리에서 덜 논쟁적인 기준, 그리고 거기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생명윤리법이 첨예한 갈등상황이 해소되는 데 기여를 한 셈이다. 이 사례는 결국 세계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기능적 분화에 걸맞는 의미론적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의미론의 세계화, 문화의 세계화는 의미론의 분화를 가져온다. 황우석 그룹에 속하던 생명윤리학자의 작업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중국의 경우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민족주의적인 혹은 사회주의적인 생명윤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비서구 국가들의 연구 역량이 강화될수록 세계적 차원의 생명윤리 논쟁은 더 복잡해지고, 합의를 이뤄내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비자발적 난자 기능이나 데이타 조작이 용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이 독립적 체계로 남는 한. 체계윤리의 단단한 핵심(hard core)라고나 할까.

생명윤리 의미론의 성공, 그 두 얼굴

좀 지겹지만 다시 의미론... 이번엔 구름 위 비행을 하다, 고도를 좀 낮춰본다. 1997 - 2003년 사이에 한국에서 있었던 생의학 규제 논쟁 쪽으로. 그 논쟁은 '생명윤리'라는 글로벌 의미론이 한국에서 널리 '애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biopolitics)의 시절이 있기나 했냐는듯이 '생명윤리'라는 개념은 여러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놀랍게도 그 신개념에 대한 저항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생명윤리가 의사소통에서 해석틀로서 자리잡는 속도 역시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biopolitics)라는 표현을 한국에서 그 전까지 생명공학, 생의학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전혀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나는 '생명윤리'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개념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내용상 생명윤리 논쟁이지 않았느냐고 논박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언어, 담론, 의미론의 현실 구성력에 대해서 내가 갖는 이론적 전제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수용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생명윤리'가 사용되는 구체적 맥락, 상황을 분석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란 개념을 가져다 쓰긴 하지만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는 언론보도, 국회논쟁, 생명윤리자문위원회 회의 등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 새로운 의미론으로서 생명윤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제1원인은 바로 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생명윤리' 개념의 유연성, 모호성이다. '생명윤리'는 바로 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서로 연결시켜,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1997 - 2003년 논쟁에서 의미론으로서 생명윤리의 성공은 그것이 '생명공학', '생명과학 연구'의 대척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 프레이밍). 그것에 대해서는 최소규제를 기대하는 집단의 핵심세력과 규제를 확대하려는 집단의 핵심세력 모두 동의하는 것이었다. 생명윤리가 생명공학의 대척점으로 이해됨으로써 이슈프레이밍 됨으로써, 특정한 방식의 생명윤리 이해는 배제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대표적으로 배제되었던 것이 종교 세력, 일부 극단적 생태주의자들이 지지했던 절대적 생명가치 보호 담론, 혹은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 등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한국 논쟁의 독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생명윤리의 안착 이면에는 매우 특정한 방식의 생명윤리이해의 관철이 있었던 것이다.

풍경



유채꽃 바다 위의 섬들... 묵은 사진이지만... for...

2008년 7월 7일 월요일

판단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 7:12),
매우 추상적인 표현이라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바로 그 이유때문에 이런 가르침에 거부감을 느낄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과연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며 살아가는가? 그게 문제다. 이것을 나름 철저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 계산적이라거나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만큼 남에게 기대하기, 혹은 "안 주고, 안 받기"로 해석될 수도 있으니, 그런 건 누가 봐도 계산적인 것 사실이다. 어떤 다른 경우가 있을까? 대접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매우 이타적인 삶은 사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어떤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기대하는 경우. 이 정도도 귀엽게 봐 줄 수 있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타인에 대해 자기가 기대하는 바와 자신의 타인에 대한 언행 사이의 차이가 크게 날 때다. 자신에 대한 조그마한 비판 혹은 충고에 분해하면서, 막상 타인의 삶에 대해 너무나 친절하게 훈수를 두는 경우를 볼 때마다 놀란다. 이런 경우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망이 큰 탓이겠지만, 대개 뭔가를 가지려는 욕망이 강하게 작동하는 대개 그건 오히려 내 손을 벗어나지 않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가르침은: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태 7: 3)

Selbstreflektion

문자적 의사소통 매체의 발달 혹은 변화에 따라 글의 형식, 내용의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중세, 근대?) 서신교환은 매우 공식적인 학술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였다. 그 전통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주변적이다. 반면에 인터넷 기반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모든 의사소통 영역에서 그 중요성을 얻어갈 것이다. 과학의 경우 황우석 사건 때 Bric에서 이루어졌던 커뮤니케이션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한다면, 요즘 인터넷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저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시간이란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한 자연과학 연구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먼저 발표되고 인쇄판은 도서관 보관용의 의미로 축소되고 있다. 개별 연구자들은 대개 pdf파일로 저장한다. 물론 인문, 사회과학의 경우 종이버전에 대한 선호는 한참 더 지속되리라 예측할 수 있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사회학도로서 문서, 책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장선생이 선구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종이가 지니는 장점을 전자문서가 얼만큼 효과적으로 흡수하느냐인 것 같다.
이 블로그에 쓰는 글은 어쩌면 기존의 방식으로 쉽게 구분하기 힘들지 않을까? 새로운 장르? 일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남에게 읽힐 작정을 하고 쓰는 것도 아닌... 어떤 의미에서 privat/öffentlich의 구분이 이 경우 희미해지는 것 아닌가...
솔직히 고백하면 점심먹고 오후근무를 시작하러 도서관에 들어오긴 했는데 야 도무지 몸과 마음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잠시 도서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참이다. 허나 여전히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월요일이라서 더 그런가...

2008년 7월 3일 목요일

正義가 강 같이 흐르는 나라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될 것이다." (마태 7: 25, 33)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며칠 전부터 시청 앞에서 시국미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정의 구현이라... 거기서 정의는 무엇일까? '하느(나)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 그것일까?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수천년 세월을 보내면서 살아남은 성서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사제단의 정의와 역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 장로 혹은 조용기 목사 등의 '義' 사이의 거리가 무척 넓은 건 오히려 자연스럽다. 개신교에서는 대개 '정의' 보다는 '의'를 선호하며 보통 신과 개인의 관계로 해석한다. '정의'라는 단어는 '사회적 의'를 위해 남겨둔 것 같다. 公義라는 단어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 성경에서 정의, 공의는 사실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특히,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발언에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2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자잘한 것에 목매지 말고, 좀 큰 스케일로 살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 정의, 공의...

2008년 7월 2일 수요일

이어지는 촛불 시위에 대한 관찰, 해석

촛불 시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논의가 아주 재미있다. 한 편에 어찌되었건 정당정치, 특히 양당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최장집 교수가 있고, 그를 최 교수를 서구 민주주의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보수적 제도민주주의학파의 일원으로로 보며 촛불시위를 창조적 대안으로 이해하려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오늘 오마이 뉴스 기사에서는 '지행네트워크'의 이명원, 오창은 씨가 소개되었다 ('오마이' 성공비결은 시민기자에 있는 것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임기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기사작성법 정도는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인터뷰까지 한 걸 봐서 전임기자가 쓴 것 같은데,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져 온 글, 인터뷰, 자기 견해 등이 난삽하게 짜집기 되어 있다. 이런 것도 제도화된 기사작성의 틀을 깨보려는 창조적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내 지론이기도 하지만 이런 얘기는 이제 전문가들이 주도해야 한다. 이명원, 오창은 모두 국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혹 그들이 속해있는 지행네트워크가 민주주의, 사회운동 같은 주제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단체라면 달리 생각할 볼 일이고, 다른 사실 정치학, 사회운동 전문가들 중에서 경청할만한 일관된 견해나 창조적 해석을 내놓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을 고려하면, 오마이를 통해서라도 이런 얘길 듣게 되는 걸 고마워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상상력이 부족, and/or, '서구' 모델에 경도된 탓인지 나도 최장집 교수 견해에 동의하는 편인데, 아침부터 더 따지고 들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아서,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기회되면 가까이에 있는 사회(운동)전문가들의 견해도 들을 수 있게 되길...

최장집:

최장집 전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와 정책결정에 결정적 제약을 가했다"고 촛불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운동만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불충분하다"고 일갈했다.
"하나의 정책이슈를 운동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쇠고기 수입협상문제가 끝나면, 민영화, 교육 등 이슈가 출현할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와 운동간의 충돌로 일관하게 된다."
최 전 교수는 "무엇보다도 현대민주주의는 대의제민주주의라는 점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며 "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이익과 요구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 결사체들을 통해 최대한 광범하게 정책과정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지론인 '정당정치의 복원-활성화'를 강조했다
최 교수가 언급한 '운동의 5가지 한계'란 ①대안을 형성하거나 여러 대안들을 조정해 결정하기 어렵고, ②각 이슈들의 중요성을 위계적으로 배열해 일상적으로 정책을 추구하기 어렵고, ③다른 이슈들이 등장할 때마다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고, ④강열한 열정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고, ⑤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등이다.

이명원:

결국 '양당체제의 복원'이라는 대의제의 '신화화'에 끈길기게 구속되어 있다. 이들의 민주주의론은 내 판단에 이제는 '낡은 보수주의'다. 그들은 광장에서 이론을 구성하지 않고, 이론에서 광장을 유추하고 있다.
이런 텍스트 자유주의가 한국정치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이외에 과연 대안이 있는가. 여의도 국회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촛불을 그 낡아빠진 '이론'의 안경을 벗고 볼 수는 없는 걸까. 정치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말보다는 '상상력의 빈곤'이라는 것.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오창은:
"촛불시위는 경험의 반복이면서도 운동의 형식 등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있다. 운동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의 시위나 집회와 다르다. 무거운 이슈임에도 거리에서 소통하는 방식은 밝고 즐겁다. 촛불에는 구호로서가 아니라 행위로서 낙천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대상을 질타하는 방식과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오 연구위원은 "촛불을 정치적 저항이라기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봐야 한다"며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하겠다는 데서 벗어나 생명의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사안을 두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것을 포용해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강박이다. 그런 강박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 강박은 애시당초 '촛불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됐다. 의미, 수습, 성과 등에 너무 조급해하면 안 된다. 그런 강박이 촛불을 수그러들게 하고 자발적 진화에 걸림돌이 된다. 자연발생했기 때문에 갈 때까지 가는 것이다. 질적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의 일이다."
"정당질서와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로는 '비상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군주제 시절에도 시민의 동의는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요구되었다. 국가는 시민의 동의없이 운영될 수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적 질서 속에서 시민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정책이 강압적으로 추진되었고, 시민의 저항에도 무심할 뿐이니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동의의 원칙'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의민주주의의 복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최 교수의 태도는 '교과서적 강박'일 뿐이다."
오 연구위원은 "더 큰 문제는 최 교수의 시각이 현 상황을 오로지 정치영역만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데 있다"며 "광범위한 영역에서 생명의 정치, 일상의 정치, 광장의 문화정치가 싹트고 있는데도 이러한 가능성을 제도정치라는 온실 속으로만 옮기려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촛불의 진로를) 제도의 민주주의로 수렴하려는 것은 (촛불의) 미래를 가두는 것"이라며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사회는 서구사회가 가지 않는 길을 만드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우리의 모델일 수는 없다. 한국의 길은 전혀 다른 길일 수 있다. 그걸 두려워하지 말자. 시민의 직접행동과 주체의 판단에 따라 정치적 상황이 바뀌고, 한 공동체의 진로가 바뀌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촛불시위는) 한국 사람들이 가진 역량과 우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해온 서구의 근대적 정치질서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대의제 민주주의론'에 천착해온 최 전 교수를 겨냥한 것이다. 그가 서구의 민주주의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는 "최 전 교수가 제도권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지적까지 내놓았다.
"최 전 교수가 대의정치를 강조했던 80-90년대와 2000년대의 맥락은 다르다. 2000년대 들어서 시민의 직접 의사표현이 강해졌다. 대의제에 대한 실망이 쌓이면서 직접 얘기해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의제의 오작동 상태가 아니라 대의제의 비상상태다. 권력을 위임받는 쪽에서 주권자의 요구와 무관하게 행동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은 주권자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2008년 7월 1일 화요일

사람이었네


지난 겨울에 우연히 알게 된 노래. 가수는 루시드 폴, 조윤석의 1인 밴드인데, 지금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유학 중이라고... 전공이 화학이라나... '사람이었네'라는 제목이 좀 심상치 않다 생각하긴 했는데 최근에야 가사를 알아 볼 마음을 먹게되었다. 듣기만 할 때는 무슨 암호 같던 소리들에 의미가 부여되고 보니... 약간의 놀라움... 이런 가사였다니... 대견하네... ATTAC 주제가로 써도 되겠다. 더 직설적인 노래들도 많겠지만 (소위 '민가'류), 가요가 이 정도면 됐다, 아니 훌륭하다. 하지만 이 노래가 좋아서 루시드 폴의 다른 노래들을 좀 찾아서 들어 봤는데 별로다. 가사도 너무 가볍고 음악도 밋밋하다.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이 버전은 윤도현 러브레터에서 불렀던 장면인데 '홍대 앞' 출신이라면 live에 약할리 없건만 왠일인지 여러 곳에서 음이 불안정하다. 카메라 앞이라 긴장했나^^

어느 문닫은 상점 길게 늘어진 카페트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방안에 갇힌 14살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빛 커피 향을 자세히 맡으니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열매의 주인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내 가슴팍에 기대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공장 속에서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어느날 문득 이 옷이 되어 팔려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