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0일 목요일

4.1. 돌리 이후 복제논쟁에서 생명윤리 (1997 - 1998)

사실 복제양 돌리의 출생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윌머트 등 그 연구 참여자들은 반향이 그 정도로 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돌리 출생이 알려진 1997년 2월 이후 비슷한 해석이 세계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생명과학 관련 이슈 중 이렇게 즉각 세계적인 사건이 된 사례는 이전에 없었다. 세계화의 결과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뉴스의 전파와 함께 비슷한 해석이 곁들여진다는 것.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언론, 정치, 학계, 종교 모두...). 인간복제금지에 대한 합의에는 쉽게 도달하였다 (지난 수십년 간의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 역사를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복제연구의 생명윤리 혹은 생명공학윤리,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위협으로 이해된다. 그 이후 이제 해석/의견이 분화된다. 인간복제는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하지만, 그때문에 생명과학, 생명공학 연구 자체가 위축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과, 이참에 생명공학이 안고 있는 안정성, 윤리 문제를 전반적으로 규제하는 법을 만들자는 입장으로. 재미있게도 황우석 씨가 후자적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아니, 황교수는 줄곧 이런 입장을 견지했다. 사회적 규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연구를 제한하지 않는 한. 사회적 지지를 얻어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공학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자면 도대체 어떤 것을 얘기하는 것인가? 초기에는 분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언론은 그런 구체적 생명윤리의 내용에 대한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언론이 그런 이슈를 앞장서서 제시하겠는가? 뉴스가치가 별로 없는 것 아닌가? 아직 본격적인 갈등 전선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이미 돌리의 충격이 있었던 터라 어지간한 거로는 뉴스가 안된다).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인간복제금제 입법화를 시도한다. 허나 문제에 봉착한다.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만들면서 인간복제만 달랑 금지하기 힘든 것이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술, 연구 방식이 이제 확대되기 시작한다. 당연히 외국의 사례들을 참조한다. 거기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은 우려를 표방한다. 다른 한 편 정부에서도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연구를 전문가들에게 위탁한다. 그들의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외국에서 다뤘졌던 생명윤리 문제가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된다.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맘먹고 생명공학을 이슈로 만들려는 그룹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당연히 이슈 확대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아직까진 결정적인 갈등으로 확대되지 않는다. 인간복제금지가 주요이슈로 남아있다
돌리가 한국 내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논쟁의 지속을 설명하긴 힘들다. 몇 가지 국내적 요인을 언급할 수 있다. 우선, 생명공학의 위험성 논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유전자 조작 생물체, 곡물, 식품 등의 안정성 문제가 제기된 것. 가장 핵심에 있었던 시민단체 네트워크가 '생명안전 윤리 연대'로 이름을 붙인 것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GMO와 복제는 생명공학이 뭔가 문제가 있는 기술이라는 해석을 이끌어 내는 데 상생작용을 한 것이다. 논쟁 지속성의 또 다른 원인은 논쟁의 대상이 국내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가능한 일로 치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1998년 8월 GM곡물이 한국에 수입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 해 12월 경희대 불임클리닉에서 체세포복제를 해서 4세포기 배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더 이상 규제를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 그 후 2개월 후 2월 12일 '영롱이'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제 인간개체복제 금지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속력있는 정책은 아니지만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을 꼽을 수 있는데, 생명윤리학회가 1999년 3월 28일에 발표한 '생명복제에 관한 1999년 생명윤리선언' (흥미롭게도 황우석 박사의 이름이 명단에 보인다), 4월 30일,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생명복제 연구지침(안), 6월 5일엔 한국 철학회에서 발표한 '생명의료윤리에 관한 1999년 한국철학회 선언'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간복제금지에 대한 합의는 실제 논쟁에서 큰 의미가 없다. '복제기술', '생명윤리' 라는 '양파'를 까면서 이제 갈등이 불거지는 것이다. 어디까지 규제를 할 것인지, 어디까지가 생명윤리를 지키는 것인지 등등.
인간복제라는 충격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이슈는 이제 본격적 논쟁에 자리를 내 준다. '생명윤리'도 이제 그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생명윤리는 최첨단 생명공학 분야의 윤리문제에 대한 해석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가 차츰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생명윤리는 구체적인 윤리적 기준에 대한 판단을 제공한다기 보다는 어떤 이슈가 윤리적 문제가 되는 지를 지칭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되겠다. 이런 경우 지극히 서구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대안적 의미론이라고 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민족주의? 불교? 유교?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그 때만해도 그런 입장에서 복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거리가 별로 없었다. 나중에 생명윤리학이 분화되면서 지역적 생명윤리를 찾으려 하지 중요한 행위자인 생명과학자들 스스로 생명윤리의 틀 자체는 오히려 인정하고 있는 편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