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2일 화요일

생명윤리의 사회학

생명윤리의 사회학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선 생명윤리 자체가 60년대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72년도에 비로소 처음 등장한 개념이기 때문이고, 그 이후 생명윤리가 학제간 학문과 실천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에서건) 사회학자들의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서서히 증대된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R. De Vries). '생명윤리 내 사회학'(sociology 'in' bioethics)과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 (sociology 'of' bioethics). 생명윤리 내 사회학은 사회학적 지식, 방법을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이 경우 사회학자는 협력자 혹은 하나의 생명윤리학자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에 생명윤리의 사회학에서 생명윤리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나의 관심은 이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에 있다 (앞으로 언급할 생명윤리의 사회학이란 바로 이 측면을 가리킨다). 이 생명윤리의 사회학의 목적은 생명윤리가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De Vries는 이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을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한다: 병원에서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 그리고 생명윤리의 정황. 이 논문은 관심은 후자에 있다. 생명윤리를 사회적 과정의 하나로 보는 것이고, 기존 사회학적 개념, 이론, 방법론을 사용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내부도 사실 매우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생명윤리에 대한 역사적, 거시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거시적인 관점은 사회학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발달에서 '윤리' '도덕'은 오히려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뒤르카임, 베버). 최근에 윤리적 논쟁이 중요해지면서 (환경, 과학 기술 이슈가 거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cf. Nelkin) 사회학자들 가운에 윤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난다 (Lash, Bauman, Giddens, Beck 등). 하지만 이런 거시 사회이론적 윤리에 대한 관심은 경험적 연구과 잘 만나지 못하는데, 그건 생명윤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거시적 연구는 윤리, 도덕에 대한 사회이론적 관심과도 연결될 수 있다.

public bioethics
생명윤리 자체의 변화나 생의학, 생명과학의 변화,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사회학적 적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흐름은 한 마디로 전문생명윤리에서 대중생명윤리로 전환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생명윤리라는 새로운 분과학문, 생명윤리학자라는 새로운 전문직업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또 생명윤리라는 학문이 제시하는 여러 기준, 원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있다. 그리고 생명윤리학자가 주로 개입하던 병원, 의료제도 속에서 생명윤리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생명윤리'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전문적 영역을 벗어나서, 정치, 매스 미디어까지 확대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것을 공공생명윤리라고 부른다.
생명윤리는 학술적, 전문적 담론의 경계를 너머선, 어떤 의미에서 '문화'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도덕경제'의 '通貨'(currency of global moral economy)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Salter). 체계이론의 개념을 빌면 생명윤리를 의미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라는 문화, 통화, 의미론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드러나며, 어떤 다른 문화와 경쟁하는지 그것을 밝히는 것이 공공생명윤리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생명윤리의 특징 중 하나는 최신 생의학적 지식이나 기술의 발달과 그것의 규제가 윤리적 논쟁이 중심이되는 것이다. 생명윤리의 정치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공공생명윤리는 정치적 결정과 관련된 각종 생명윤리위원회다. 물론 의료현장의 생명윤리와 정치화된 생명윤리는 다루는 서로 구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별개로 취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적 생명윤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공공생명윤리에 거는 큰 기대 혹은 실망을 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문화사회에서 윤리는 필연적으로 복수일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몇몇 전문가들이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공생명윤리는 흔히 정부, 의회 등에 자문을 제공하거나 혹은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공생명윤리도 많은 문제점,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누가 참여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고, 어짜피 전체 정책결정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 공공 생명윤리 기관들의 자문이나 보고서 내용엔 큰 차이를 찾기 힘들지만, 막상 정책적 결정 논의는 각 국가 마다 차이가 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명윤리에 대한 정치적 논의를 사회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체계이론은 유용한 이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구조와 의미론의 구분 등 체계이론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개념은 생명윤리라는 개념을 둘러싼 복잡한 현상을 더 잘 묘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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