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8일 화요일
생명윤리 의미론의 성공, 그 두 얼굴
좀 지겹지만 다시 의미론... 이번엔 구름 위 비행을 하다, 고도를 좀 낮춰본다. 1997 - 2003년 사이에 한국에서 있었던 생의학 규제 논쟁 쪽으로. 그 논쟁은 '생명윤리'라는 글로벌 의미론이 한국에서 널리 '애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biopolitics)의 시절이 있기나 했냐는듯이 '생명윤리'라는 개념은 여러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놀랍게도 그 신개념에 대한 저항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생명윤리가 의사소통에서 해석틀로서 자리잡는 속도 역시 이례적으로 빠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생명윤리' 없는 생명정치(biopolitics)라는 표현을 한국에서 그 전까지 생명공학, 생의학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전혀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나는 '생명윤리'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개념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내용상 생명윤리 논쟁이지 않았느냐고 논박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언어, 담론, 의미론의 현실 구성력에 대해서 내가 갖는 이론적 전제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수용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생명윤리'가 사용되는 구체적 맥락, 상황을 분석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란 개념을 가져다 쓰긴 하지만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는 언론보도, 국회논쟁, 생명윤리자문위원회 회의 등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 새로운 의미론으로서 생명윤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제1원인은 바로 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생명윤리' 개념의 유연성, 모호성이다. '생명윤리'는 바로 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서로 연결시켜,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1997 - 2003년 논쟁에서 의미론으로서 생명윤리의 성공은 그것이 '생명공학', '생명과학 연구'의 대척점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 프레이밍). 그것에 대해서는 최소규제를 기대하는 집단의 핵심세력과 규제를 확대하려는 집단의 핵심세력 모두 동의하는 것이었다. 생명윤리가 생명공학의 대척점으로 이해됨으로써 이슈프레이밍 됨으로써, 특정한 방식의 생명윤리 이해는 배제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대표적으로 배제되었던 것이 종교 세력, 일부 극단적 생태주의자들이 지지했던 절대적 생명가치 보호 담론, 혹은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 등이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한국 논쟁의 독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생명윤리의 안착 이면에는 매우 특정한 방식의 생명윤리이해의 관철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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