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1990년 중반 이후 생명윤리 의미론은 매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명윤리 담론의 확대는 그 자체로서 황우석 사태의 촉발, 해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연구원의 난자 사용, 기증자의 동의를 '제대로' 얻지 않은 채 이용된 난자 사용이라는 생명윤리, 연구윤리 위반이 황우석 사태를 촉발시켰고, 이것에 대해서 황우석 스스로도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연구원이 이타적인 동기에서 기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얻지 못했다. 왜 서구적 윤리기준을 우리가 꼭 따라야 하느냐라는 주장은 주로 황우석 지지자들 그룹에서 제기되었다. 과학자, 전문가로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는 없었다. 소위 그 정도의 생명윤리 원칙 ('informed consent')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은 것. 이전에도 황우석은 인간 개체 복제 금지 만큼은 불가하다는 입장에 있음을 여러 번 강조한다.자신의 연구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은 지키려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윤리의 해석 유연성' 혹은 다양성 주장은 황우석 사태에서 전혀 힘을 얻지 못한다. 비록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서는 현상이 일시 있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데이타조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재현기회를 줘라'라는 주장은 '논문 데이타 조작이 확인된 이상, Keine Chance'라는 과학체계의 윤리적 기준에 근본적 도전이 되지 못했다. 엄청나게 큰 혼란과 패닉을 가져올 것으로 보였던 황우석 사태가 어떻게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흐지부지해진 것은 설명을 요하는 사태다. 학자들은 그 동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스캔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지만 말이다. 황우석 사태의 신속한 해결은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과학, 그 과학의 자기 성찰, 자기보호를 위한 윤리 의미론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남한이라는 지리적 경계, 혹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작동의 중요한 준거인 한국 정치, 한국 언론의 경우 유권자 혹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의미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과학에 대한 성찰이론으로서 번역되지 않는한 궁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배아에 대한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윤리 틀 내에서도 이론이 있다.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생명윤리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동의' 혹은 '데이타 조작' 등은 매우 강한 윤리 기준이다.
두 논쟁을 종합하면, 생명윤리는 유연하면서도 그 핵심은 가지고 있다. 입법논쟁에서는 생명윤리의 틀을 가져 왔지만, 논쟁적인 이슈에 대한 기준은 기존 한국 생명공학정책의 연속성 속에서 세워졌다. 하지만 민감한 이슈를 제외하고선 법의 나머지 조항은 대개 서구적 생명윤리의 기준들로 채워졌다. 황우석 논쟁의 경우에서는 그러한 생명윤리에서 덜 논쟁적인 기준, 그리고 거기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생명윤리법이 첨예한 갈등상황이 해소되는 데 기여를 한 셈이다. 이 사례는 결국 세계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기능적 분화에 걸맞는 의미론적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의미론의 세계화, 문화의 세계화는 의미론의 분화를 가져온다. 황우석 그룹에 속하던 생명윤리학자의 작업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 중국의 경우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민족주의적인 혹은 사회주의적인 생명윤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비서구 국가들의 연구 역량이 강화될수록 세계적 차원의 생명윤리 논쟁은 더 복잡해지고, 합의를 이뤄내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비자발적 난자 기능이나 데이타 조작이 용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이 독립적 체계로 남는 한. 체계윤리의 단단한 핵심(hard core)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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