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이야기 (2)
오늘 점심은 '통영굴밥'집. 이 식당은 손님에 대한 인사에 인색한 편이다. 들어설 때는 서너번에 한 번쯤, 나설 땐 거의 듣지 못한다. 오늘은 계산하고 나설 때까지 음성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전혀 없었다. 다들 묵언수행이라도 하시는지, 집단적으로 고요함을 유지하는 영적 훈련이라고 하는지 인사를 너무 아낀다. 손님과 직원들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너무 한다싶어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는 것으로 소심하게 내 의사를 표시하려고 한다.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사실은 더 심한 집도 겪어봤다. 근처 분식집. 주인이거나 혹은 주인의 딸처럼 보이는 젊은 아가씨는 김밥을 썰다가 들어서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바로 시선 외면... 예상했던 대로 그 집을 나설 때 어떤 인사도 듣지 못했다. 물론 그 뒤로 그 집에 가지 않았다. 음식의 질, 맛, 청결 이런 걸 떠나서 손님 아니 인간에 대한 예의에 무지한 식당은 그렇게라도 '응징'해야 한다.
한국생활이 '재미'있는 건 그 반대 경우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 근처 우리은행의 경비 겸 안내 담당인듯한 젊은 청년. 말쑥하게 차려입고서 손님이 '입장'할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서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문제는 조용한 은행 안이 그 때마다 쩌렁쩌렁 울린다는 것. 또 대형마트에 들어설 때마다 깊숙하게 숙여서 건네는 인사를 받는 것도 그리 달갑지 않다. 들어서는 손님 대부분은 무슨 인사기계나 투명인간을 보는 듯 무시한다. 그렇게 인사하도록 시키는 것 역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처사다. 그런 대형마트는 어떻게 '응징'하지?
인사커뮤니케이션의 이런 모자람과 과도함의 공존엔 우연이나 개인차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구조적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언제가 전화 통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어 커뮤니케이션에 인사 문화 혹은 인사 코드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게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탓이 아닐런지. 특히 안면이 없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에 대해서... 공공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공공영역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 조정 메카니즘이 부실해 보이는 것이다. 예절, 문화, 코드... 뭐라고 이름 붙이든. 식당이나 지하철서 같은 데서 천방지축 나대는 아이를 나무랐다간 그 부모로부터 이런 얘긴 듣기 십상이다. "당신이 뭔데, 남의 애한데..."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또 재미있는 현상은 가깝고 친밀한 사이에서 의사소통 코드는 여전히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친족이나 직장, 학교 등 조직에 속한 사람들기리 언어 예절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위계적이고 사람들은 세밀한 표현 차이를 기가막힐 정도로 잘 포착해 낸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직계 가족간의 관계에선 갈수록 자유분방해져서 반말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참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ps)아래 영성에 대해서 써 놓은 글이 자꾸 목덜미를 끌어당긴다. 특히 '응징' 운운하는 태도가 과연 '영성'과 어울리는 지에 대해서... 영성의 본질을 '사랑의 각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손님에 대한 인사에 인색한 식당을 다른 방식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거나 나올 때면 "덕분에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같은 인사를 환한 미소와 함께 사랑의 마음을 담아 건넨다던지... 상상만해도 닭살 돋는 '시츄에이션'이지만 과연 그게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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