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사회체계는 이중 우연성이 지배하기 때문에 (die Unwahrscheinlichkeit der Kommunikation) 자기준거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체계는 때때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심리체계와 심리체계가 직접 부딪히는 '상호작용'의 경우에 당혹감을 주고 받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오고 가는 정보가 이해되는 가능성의 경우 수를 줄여주는 매체가 - e.g. '신뢰' '프레임' '스크립트' 등 -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당혹감은 상호작용 참여자가 상호작용의 독특한 코드를 찾거나 좇는 대신 심리체계의 코드에 충실하는 경우다. 그러면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이 끊기며 분위기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당혹감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선 자신이 준거로 삼는 의미틀로 당혹스러운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규정, 처리하려는 유형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지배적 커뮤니케이터'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권위적인 '어른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에 당혹스럽게 느껴질만한 상황의 발생 빈도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심리체계가 준거로 삼는 의미의 공간을 '평소에' 넓혀두어여 한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 그저 흘러 보내지 않고 - 심리체계의 준거로 삼을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넓은 영토을 확보할 수 있다 (상호작용 참여자에 대한 이해, 혹은 다양한 심리체계에 대한 이해... ). 그런 경우를 두고 '세련된' 혹은 '능숙한' 커뮤니케이터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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