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자이언트' 종영

허다한 드라마들 중에서 유일하게 챙겨 보던 드라마였다. 그 '자이언트'가 어제 끝났다. '자이언트'는 결코 수준 높은 드라마였다고 얘기할 수 없다. '홍길동전' 이후 이어내려오던 고전소설의 핵심 특징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21세기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였다. 영우, 우연성, 권선징악... 주인공 '이강모'는 쫙 붙는 타이즈를 입거나 날지 않을 뿐 그 능력으로 따지자면 거의 슈퍼맨급이었다. 그리고 주요 장면에선 기가 막힌 시점에 필요한 인물들이 저만치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고... 대부분 차 속에서. 물론 그들이 들키는 법은 없다. 강모와 성모, 이 둘이 형제라는 사실은 '적들'에겐 끝무렵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그렇게 대놓고 만나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이 드라마의 주제를 한 마다디로 요약하자면? 자, 밑줄 그을 준비하시고... 권선징악! 악역을 잘 소화했다고 자자한 칭찬을 받는 정보석이 연기한 '조필연'. 시종일관 악인의 본분에서 벗어나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반대에 있는 이강모 역시 건설업에 종사하면서도 준법정신 투철하고 의리로 똘똘뭉친 매력남이다. 마지막 회에서 착한 쪽에 속하는 '성모'가 죽긴하지만 그런 것 마저 없었더라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뻔했다. 이런 불평 거리가 적지 않음에도 괜찮은 면도 찾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차마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적지 않은 드라마들과 구별된다.

우선, 역사적 사실을 개인사와 잘 엮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강남개발과 5공, 6공이 주 배경인데 그 시절 현대사를 잘 모를 이들에게는 꽤 의미있는 간접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대극의 경우엔 차라리 '권선징악'의 구도가 더 시원한 경우가 있다. 드라마에서 드라난 작가 혹은 피디가 그 시기를 보는 관점은 어쩌면 상식에 가까운 것이지만 쥐정부 시절이고 더구나 SBS 아닌가? 게다가 SBS 창사 20년 특집극이라니... 혹시 SBS '수뇌부'들이나, '방송통신위원회', 문화부에 계시는 김회장네 둘째 아들, 푸른 지붕 아래에서 사시는 분들 모두 공사가 다망하셔서 이 드라마를 챙겨보지 못하신 탓이 아닌가 싶다. 어찌 2010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드라마가 공공연한게 방영되며 그것도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단 말인가. 수시로 가스통 들고 세종로, 종로로 진출하시던 우리 구국의 용사 할아버지들은 왜 그리 조용하셨던지... 모두 현대사 지식이 박약한 관계로 조필연의 멸망에 박수를 보내는 '우'를 범하신 것은 아닌지...

드라마가 무척 구식이긴 했지만 워낙 시절이 거꾸로 가는 터라 그 우직한 권선징악의 정신마저 그지 없이 반가웠던 것 같다. 이강모 같은 사나이가 정말 그리워지는 때 아닌가. 이제 승부가 끝나고 경찰에게 잡혀가면서 조필연이 이강모에게 얘기한다. "이제, 네 놈이 날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에 대한 우리의 이강모 형님의 멘트 "난 한 번도 널 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어. 난 너 같은 사람이 큰 소리치는 이 세상과 싸워보고 싶었던 거야..."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 캬- 이 얘기 듣고 난 완전히 '감동' 먹었다.

자고로 이런 게 대중문화의 미덕이다. 인간, 역사에 대해서 깊게 파고드는 고급예술은 이렇게 쉽게 싸지르기가 힘들다. 대중문화는 그냥 대중의 힘을 믿고서 뭔가 부조리하고, 고여있고, 썩은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시원하게 내지를 수 있어야 한다. 속이 뻥 뚤리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게 해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난 그 누구보다 피디와 작가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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