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지멜? 짐멜?

여전히(!)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훓어보았다. "사회이론의 역사" (캘리니코스 저, 박형신 외 역, 한울 2010). 2007년에 나온 2판을 번역했다 (1판 번역서는 일신사에서 출간됨 2007?). 목차를 보니 제목 그대로 '사회이론의 역사'다. 글쎄 교과서로 쓰기에 좋을 지 모르겠지만 - 번역, 출판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인? - 이런 접근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그냥 덮으려는 찰나 낯선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지멜. 하, scohn wieder.... 초기 독일 사회학자 Simmel을 그렇게 옮겨 놓으셨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Simmel은 '짐멜'로 부르는게 온당하다 (한국어로 된 다른 '사회학' 문헌에서 Simmel을 지멜로 표기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Simmel 지멜'로 검색하니까 상당히 많은 결과물이 뜨긴 하지만.. 쩝...). 독일사람이고 독일에서 그렇게 부르니까... 미국식으로 읽으면 지멜인가? 글쎄...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부르는 것 같지 않지만 Max Weber의 경우 한동안 '베버'가 아닌 '웨버'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런 유형의 오독일까? Marx의 경우 여전히 대부분 '마르크스'라고 쓰지만 '맑스'라고 옮기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Durkheim의 경우 뒤르껭,뒤르카임 등도 쓰였는데 최근에는 '뒤르켐'으로 정착되는 것 같고. 남의 나라 이름을 우리말로 옮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책도 아니고 '사회이론의 역사'를 다룬, 그것도 '짐멜'의 '돈의 철학'을 낸 '한울'에서 나온 책에서 Simmel을 '지멜'로 옮기는 건 좀 실망이다. [음. '돈의 철학'은 한길사에서 나왔다. 착각^^ 그걸 지적한 댓글을 누가 달았던 것 같은데 사라졌음. 여하튼 감사...]

ps1) 헌데 상표 이름 'Tommy Hilfiger'를 '타미 힐피거'로 표기하는 걸 보고선 좀 당황했다. '타미'라... 미국상표고 미국에서 그렇게 부르니까? 흠. 쉽지 않다.

ps2) 아마 고유명사 표기 원칙은 "고유명사의 출신국가에서 발음되는대로 가깝게...".. 대략 그렇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Ronaldo도가 호나우도가 되었고... 어쩌면 난 그게 불편한 모양이다. 독일어, 영어를 떠나서 가능하면 a -> ㅏ, o -> ㅗ 등으로 일관되게 표기하는 게 옳은 것 같다. 독일어 발음은 우연히 그런 표기방식에 더 가까운 것이고.(...) 아니, 그것도 쉽지 않은게 영어권 이름 Jane을 '자네'라고 표기할 순 없는 것 아닌가?

ps3) '원칙적'으로 고유명사는 말 그대로 고유한 것, 유일한 것이니 발음과 표기도 '가능한' 그 고유성을 최대한 지켜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각 언어권에서는 그 나름대로 - 고유하게 - 외래 명사를 읽는 방식을 정할 수 있고 또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두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 예컨대 미국에선 그네들이 읽는 방식을 좇아 Max Weber를 [막스 웨버]로 부를 수도 있고, 우리가 W -> [ㅇ]으로 표기하기로 했다면 '웨버'로 적을 수 있는 문제다. 내 경우 Kwang-Jin이 독일에서 '크방인'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고 심지어 스스로 그렇게 소개하기도 했으니까 (몇몇 한국인은 이런 내 '행태'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Kwang-Jin은 이미 '광진'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담... Simmel을 '지멜'로 표기할 수도 있단 말인가? 아니! 이 경우엔 'm'이 두 개니까 '짐멜'로 쓰는 게 한국식 라틴알파벳 읽는 습관에 비추어 볼 때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결론: 혹 미국에서 Simmel을 [지멜]로 부를 수는 있겠지만, 한국어로는 어찌되었건 '짐멜'이어야 한다.

ps4) 잠실 루터회관에 루터 상이 있는데 한글로 '말틴 루터'라고 써 놓은 걸 확인했다. Marx를 맑스로, Martin을 말틴으로 쓰는 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인데 '맑스'만큼 자부 보지 않아서인지 어색하다. 왜 이 경우엔 '마르틴' 혹은 '마틴'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지? 도대체 내 원칙은 뭔가? 내게 익숙한 것? -_- '
그러다 맑스'란 표기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발견했다.

대단히 비정상적인 표기입니다. 우리말에서 ㄺ 받침이 있을 때 뒤에 모음이 오면 (예를 들어 '맑은'에서 처럼) ㄹ과 ㄱ 발음이 다 나지만 뒤에 자음이 오면 ('맑다') ㄹ을 발음하지 않습니다. Marx는 발음이 [marks]인데 자음이 세 개가 연이어 있지요. 우리 말에서는 그런 경우는 없기때문에 중간에 ㅡ(으) 모음을 넣지요. 따라서 말크스나 마릌스, 마르크스는 가능해도 맑스는 불가능한 표기법입니다. 그런데 말크스는 r 발음이 나지 않고 l 발음이 나기때문에 원음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쓰이지 않지요. 마릌스 역시 '릌'자가 생소하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표기는 당연히 마르크스여야 겠지요. Marx를 영어식으로 발음할 때는 물론 r 발음이 혀를 마는 정도로만 발음이 되지만 그렇다고 맑스라고 쓸 수 없는 것은 우리말에는 그런 발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의 ㄹ은 r 또는 l 의 음가를 갖지만 ㄺ에서의 ㄹ은 소리날 때 항상 l 의 음가만을 갖습니다. 비슷한 예로 독일 화폐 단위는 Mark인데 이것을 '맑'이라고 쓰는 경우는 없지요. 흠... 어렵다. 국립국어원은 '맑스'가 아닌 '마르크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실제 원어 발음은 '칼 막스'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카를 마르크스'가 맞다. x를 '크스'라고 쓰기 때문이다."

ps5) 'enjoy'를 '엔조이'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실수도 아니고 원어민 발음을 몰랐기 때문도 아니라 스스로세운 표기 원칙에 따른 것 같은데... (김용옥). (왜 '즐기다'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굳이 '엔조이'라는 표현을 가져다 쓰는 지는 논외). 어떤 원칙일까? 그가 일본어, 중국어에 관해선 아내와 함께 CK-표기법을 만든 건 알고 있는데, 그 밖 외국어를 표기하는 것에 대해선 어떤지... CK표기법의 원칙을 '원음주의'라고 하던데 "enjoy"를 "엔조이"로 쓰는 건 그 원칙을 따르는 게 아니잖은가?

ps6) 이참에 '공식' 외래어 표기법을 찾아 보았다. 그 문제에 대해서 오랫 동안 고민한 사람들이 분명한 원칙을 마련해 둔 걸 확인했고 앞으로 그 원칙을 존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표기의 기본 원칙"으로

제1항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
제2항 외래어의 1음운은 원칙적으로 1기호로 적는다.
제3항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제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

제3항에 따르면 '맑스'로는 쓸 수가 없다.
또,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도 언어별로 다르게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인 Luther, Martin는 "루터, 마르틴"이지만 미국인 "King, Martin Luther Jr."는 "킹, 마틴 루서"다.

ps7) 조관희 교수의 글 중에서...[중국어 한글표기법 논의를 바라보는 한 시각]. "필자가 중국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나 필자를 “조관희”가 아니라 “자오콴시(趙寬熙)”라 부른다. 하지만 고유명사라는 것은 “말 그대로 둘이 아닌 오직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에 붙이는 이름일진대, ‘조관희’는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조관희’일 따름일 뿐, 그 어떤 별도의 독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중국인들만이 나의 이름을 ‘자오콴시’라 부 르고 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더 이상 ‘서울’이 ‘한청(漢城)’이 아닌 ‘서우얼(首爾)’이듯, 나의 이름도 ‘자오콴시’가 아닌 ‘조관희’일 따름이다.” 흠... 이것도 일리가 있는 말인데. 그렇다면 나는 독일인들이 내 이름을 "크방인"이라고 부를 때 가능한 그들 발음을 교정했어야 했나? 흠... 다음 말도 일리가 있다. "결국 이상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 찾을 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한 변화의 한 사례로 우리는 모택동에서 등소평 또는 덩샤오핑을 거쳐 쟝쩌민과 후진타오에 이르는 하나의 흐름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毛澤東’은 ‘마오쩌둥’이라는 명칭보다는 ‘모택동’ 쪽이 더 친숙한데 반해, ‘鄧小平’의 경우는 ‘등소평’이나 ‘덩샤오핑’ 모두 익숙하다. ‘江澤民’의 경우도 ‘鄧小平’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胡錦濤’에 이르면 상황은 그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미 ‘胡錦濤’는 ‘후진타오’가 익숙하지 ‘호금도’라는 ‘소리’는 아주 낯설게 들리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원음주의를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현실은 이미 원음 그대로 읽는 것이 하나의 대세로 굳어가도 있다는 것이다."

ps8) 이 글에 ps를 계속 달면서 정리하고 있는 중인데, 물론 전문가들이 애써서 만들어 놓은 '외래어표기법'을 존중하는 게 옳을 것이다. 쓸만하기만 하다면... 기본적으로 '원음주의'를 원칙으로 삼으면서 각 언어권에 따라 표기하는 방법을 구분해서 구체적으로 마련해 놓은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헛점 투성이다. Luther를 독일어권 이름인 경우 '루터', 영어권 이름은 '루서'로 하도록 한 모양인데, 왜 그런 이해할만한 규정이 'mm' 같은 복자음엔 적용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Simmel이나 Zimmermann을 '지멜'이나 '치머만'으로 쓰게 되어 있는 건 무슨 속인지 원... (글자 중간에 있는 복자음은 하나만 인정한다! 뭐 그런 원칙인가? 헐... ) 재미있는 건 Zimmermann의 'Zi-'를 '치'로 쓰는 것. 왜? 차라리 '지머만'이라고 하지? Weber도 '웨버'라고 하고! 맑스'가 아니라 '마르크스', '함부억' '함부릌' '함부륵'이 아니라 '함부르크'로 쓰게 하는 건 이해할만한데 왜 '지멜', '치머만'?

ps9) Simmel을 '지멜'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동지'를 만났다 (여기). 최근에 출간된 '화폐 인문학'을 소개하면서 이 블로그 주인은 이렇게 써 놓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 역자가 짐멜 Simmel을 지멜이라 명명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 짧은 언급에 달린 댓글이 또 재미있다.

동수 2010-12-29 11:48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지멜(O), 짐멜(X)" 입니다. http://www.korean.go.kr/09_new/dic/rule/rule_foreign.jsp

faai 2011-01-04 09:36
'에 따르면'은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습니다. 영어 'according to'를 일본어로 번역한 후, 이를 우리말로 직역한 표현이라 합니다. 한문 투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 speller.cs.pusan.ac.kr


ps9) 아마 마지막 부기가 될 듯. 내 나름 결론을 내렸으니. 독일어에서 자음이 중복되는 경우라고 항상 발음되는 것은 아니다. 나름 헤아려 보니 'mm' 과 'nn'이 이에 해당하는 것 같다. 외래어 표기법은 이걸 인정하지 않으니 Simmel은 지멜, Immanuel Kant는 이마누엘 칸트, Anna는 아나, Emma는 에나, Zimmerman은 침머만이 되어야 옳은 것이다. 참 기가막히고 코가막힌다, 그죠? 외래어 표기법을 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 속에서 아주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같은 자음이 겹쳤을 때에는 겹치지 않은 경우와 같이 적는다. 다만, -mm-, -nn-의 경우는 ‘ㅁㅁ’, ‘ㄴㄴ’으로 적는다." 캬. 그럼 게임 끝인가? 모두 이 구절을 몰랐단 말인가? No! 왜냐하면 위 내용은 이태리어, 스웨덴어, 노르웨이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타이어 표기법에서만 발견된다. 예를 들어 스웨덴어 이름 'Bromma'는 '브롬마'라고 예까지 들어 주고 있다. 왜 이런 내용이 독일어 발음에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참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상한 규정때문에 칸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이마누엘'이라고 불러야 하다니... 무슨 호부호형 못하던 홍길동도 아니고, 참...

ps10) 약간의 충격..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 지금까지 독일어 발음을 잘못 알고 있었단 말인가?

"자음이 중복될 때는 단자음과 음가가 같지만 앞의 모음이 짧은음이 됩니다.
ⓐ ff [f] : hoffen [h f n] (= to hope)
ⓑ ll [l] : Brille [bril ] (= glasses)
ⓒ mm [m] : kommen [k m n] (= to come)
ⓓ nn [n] : nennen [nέn n] (= to call) (...)
"

"Double consonants (FF, LL, MM, NN, PP, RR, TT, rarely BB, DD, GG, KK, WW, ZZ) are always pronounced as one. They indicate that the preceding vowel is short. The only exception to this rule is SS."

독일어 발음이 병기되어 있는 사전을 찾아 보니 역시 같은 내용이다. 정말 그런가? 믿기 힘들다... 칸트의 이름은 이마누엘이고, 고전 사회학자는 지멜이었나? 잘못된 언어 습관, 선입견이 그동안 엉뚱하게 듣게 한 걸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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