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惡+reply] 신어
[명사]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하여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을 담아서 올린 댓글."
'악성 댓글'이라고도 한다. 오늘 아침 최진실씨 자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이런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 둔감해진 탓인지 충격이 그리 크지 않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담담한 것. 쯧쯧...]. 자, 악플이 자살한 연예들을 죽였을까? 語不成說이다. 평소에 잔인한 컴퓨터 게임을 즐기던 청소년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컴퓨터게임에 책임을 묻는 것과 같은 논리다. 선풍기 틀어 놓은 채 자다가 사망했을 때 선풍기는 단순히 그 옆에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론 선풍기, 컴퓨터게임, 악플 모두 특정 결과에 영향을 어느 정도는 미쳤을 것이다. 간혹 그것이 유일무이한 직접 원인일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허나 어디 인간 심리체계가 그렇데 단순한 것이던가. Stimulus -> Reaction, 악플 -> 자살, 컴퓨터 게임 -> 살인? 인간 심리체계의 작동양태를 여전히 잘 모르는 인간들이 설명하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만들어낸 논리다. 어딘간에 원인은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 그런 저급한 논리를 재생산하며 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서 날뛰는, 결국 연예인을 두 번 죽이는 악플러보다 더 못한 찌라시 신문들 얘기는 접어둔다 (이에 대한 프레시안 기사 참조). 하지만 달리 뾰족한 설명을 대안으로 내놓지 못하는 이상 그런 식의 단순한 설명방식, 희생양 만들기 메카니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세상이 복잡해지고 인간의 지능이나 설명력 혹은 통제메카니즘이 그런 복잡성을 좇아가지 못할수록 유치한 설명방식(음모론 같은)이나 도덕화, 윤리화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자율, 자정능력 운운 등등). 사실 마땅한 대안도 없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가운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네티즌'들이 힘을 살인에 동원한다는 아이디어가 인상 깊게 남아있는 영화가 있다: Untraceable (2008,
감독: Gregory Hoblit). 한국에서는 제목을 훨씬 더 자극적으로 걸었다. "kill with me" (영화 속에서 등장한 인터넷 살인 사이트 제목이다). 네티즌들의 접속 수에 따라 살인 속도가 빨라지는데도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 클릭질. 그 장면이 실시간 중계되고 '댓글'로 '감상'을 교환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어떤 blogger가 올린 글이 엽기적인데... "Where can I download this video..."

문자의 발명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시공간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시공간을 벗어난 커뮤니케션이 가져올 수 있는 극단적인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보는 체계이론가들은 의사소통매체, 기술의 발달에 주목한다. 지금까지는 문자의 발명, 활자, 인쇄술 등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인터넷 같은 신매체가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 같은 주제에 대해선 거의 손을 못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루만의 착상을 수용하면서 그 이론틀을 과감하게 연장시켜 볼 필요가 있다. 한국학자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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