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모습은 왜 어느 하늘 아래에서나 다 비슷할꼬... 순한 사람, 강한 사람, 순한것 같은데 알고보면 만만하지 않은 사람, 센 척 하지만 알고보면 따뜻한 사람, 항상 인상쓰고 다니는 사람,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사람, 왠지 같이 있기 불편한 사람. 재미있는 건 상대가 보이는 반응에 내가 기여한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점. 나와 상대의 합작이다. 어쨌든... 아마 단순한 일로 얽힌 관계에서 사람을 판단할 때는 개인적 경험에서 얻게된 판단력에 의존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누구나 경험상 사람을 구분하는 나름대로의 판단틀을 가지게 되고, 그런 판단기준은 살면서 검증받고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예측가능성은 높아진다. (관상, 점쟁이들은 특히 그런 '감'에 의존한 사람판단에 숙련된 이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이라면 과학이다. 그것도 경험과학 ^^). 하지만 이같은 판단기준에 따른 사람평가의 성공률이 높은 삶의 영역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 우선, 처리해야 할 커뮤니케이션 상황의 복잡성이 낮을수록 이런 '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는 작업장이나 혹은 스포츠 활동이 일어나는 운동장 같은 경우, 그 '場'을 지배하는 법칙이 매우 단순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놀거나 천천히 움직이면, 다른 사람이 더 일하거나 더 뛰어야 한다던지, 뭐 그런... 혹은 상대에 대해서 알고 싶은 혹은 알 필요가 있는 정보가 매우 단순하다거나.... 운동을 잘 한다/ 못한다, 나이, 독일체류기간, 결혼 여부 등, 고려할 것이 많은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금기시되던 질문들이 여기 저기에서 날라든다.
일이 복잡해지거나, 의사소통의 내용이 복잡할수록, 제대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더 많아진다. 언어적, 비언어적 여러 수단을 통해야 하고, 한 번 꼬이면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언제가 썼듯이 이런 복잡한 의사소통의 場에서 인간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련된 언어능력과 대화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기술을 익히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들, 혹은 외국어로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선 결정적인 경우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구두 의사소통과 비교할 때 문자 의사소통은 해석의 가능성을 급격하게 줄여준다. 그나마 고마운 일 아닌가?
진중권 교수는 구두문화와와 문자문화의 구분 도식을 가지고 한국의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고 그냥 수긍하기엔 좀 내키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참 설득력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합리화와 문자문화의 발달은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서 문자를 쓰던 역사는 수천년을 헤아리지만, 아쉽게도 문자로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하던 이들의 비율은 20세기 중반을 지날 때까지 매우 제한적이었다. 최최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자랑만할 일도 아니다. 그런 활자로 고작 수십부의 책을 찍었을 뿐이니. 문자적 합리성이 채 자리잡기도 전에 그놈의 인터넷이 한국의 커뮤니케이션에 지나치게 중요한 역할을 넘겨 받았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비록 문자를 매개로 하지만 그 행태는 전형적인 구두문화의 그것이다. 진중권씨가 그런 점을 반복해서 지적하는데 난 아직도 그 주장에 대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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