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컴퓨터 혹은 인터넷 금단증

몇 주 전부터 골골하던 노트북 어탭터가 '드디어' 숨넘어가기 직전에 이르렀다. 켜지 않은 상태에서 배터리에 충전은 되나 컴퓨터에 전원을 넣는 순간 배터리로만 작동하는 것. 배터리만으로는 10분을 넘기기 힘드니 거의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당장 새어댑터 사려고 시내에 나섰으나, 왠걸,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다. 할 수 없이 ebay로 눈을 돌릴 수 밖에... 화요일 저녁에 비경매로 나온 매물을 구입해서 바로 입금했으나, ebay 물건구입에 대한 이전 경험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토요일인 오늘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목요일에 보냈다는데... 덕분에 며칠 간 컴퓨터 없다시피한 집에 살고 있다. 급한 일은 학교 도서관에서 처리한다. 성능 좋은 컴퓨터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고, 지금처럼 한글 입력에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사실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허나 어제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있다가 컴퓨터 없는 방에 들어서니 왜 그리 낯선지. 잠자기 전까지 인터넷 뒤적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습관이 되다시피해서, 도대체 이 밤에 뭘하지?,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 '설상가상' 텔레비전을 소유하지 않은지 벌써 오래 되었으니... 대체품도 마땅찮은 것. 결국 모처럼, 정말 모처럼 공부용이 아닌 교양용 책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과 컴퓨터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여가시간이라고 책을 읽어본 기억이 참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심지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 켜고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확인하며 아침 먹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돈 들여서 받아보고 있는 종이신문을 읽을 시간은 더 줄어들게 되었고... 또 영어 도튜멘타리를 틀어 놓고서 잠드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최근엔 리차드 도킨스 출연 다큐를 주로...). 화면을 덮어 놓은 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려고 집중하다보면 '쉽게' 잠에 빠져들곤 했다 [확실히 이런 방식으로 난 재미를 보고 있다. 난 꼭 뭔가를 들으면서 잠을 청하는데 너무 잘 들리는 내용이나 혹은 아애 안 들리는 음악 같은 것보다 집중해야 들리는 그런 내용, 영어나 독일어로 누군가 고른 음색으로 얘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한 때는 루만의 강의를 듣기도 했는데 효과적이긴 했으나, 다시 듣고 싶진 않다 ㅎㅎ]. 활자, 책, 문법, 언어 등 문자문화가 직업에 해당하는 세계라 여가시간이 영상매체로 채워지는 게 자연스럽긴 하다. 그런 저런 핑계로 영화나 재미있는 도큐 같은 것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는데...
지난 주부터 점심 시간 일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오전에는 인터넷을 보지 않고, 그래서 아침먹을 때도 신문을 읽으려고 하던 참이었다. 어댑터까지 고장나서 한편 자발적으로 다른 한편 울며겨자먹기로 컴퓨터 특히 인터넷 사용을 줄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시각적 정보가 주는 그 즐거움, 재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모든 감각기관을 동시다발적으로 적절하게 자극해 주는 그런... 언제부터인가 심지어 음악도 '보게' 되지 않았는가. 난 담백한 걸 좋아해서 컴퓨터도 최대한 슬림하고 소박한 상태로 나름 '최적화'해 놓고 있는데도 [한 가지, 프로그램은 가능한 최신 버전을 써야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게 보면 뼈속 깊이 아날로그형 인간은 아닌 지도... 이런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끄적거리... 아니 틱틱거리고 있는 것도 하나의 반증이되겠지만... ],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컴퓨터나 인터넷, 영상매체의 '유혹'에 그동안 너무 많은 자리를 내 주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반성하고 좀 더 문자적으로, 아날로그적으로, 그리고 흑백의 정신으로 살아볼 생각이다. 오전엔 인터넷없이, 자기 전 시간엔 아애 컴퓨터 없이 지내볼까 한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중독'의 특징은 당시에는 '중독'이라고 못 느낀다는 것, 또 알더라도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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