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연체료 대박을 맞았다. 일당을 조금 넘는 거액... 흑흑. 잠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지만 이내 '제정신'을 찾았다. 너무도 쉽게 이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내 심리체계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난 그런 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미련을 별로 두지 않고 쉽게 잘 잊는다. 흔히 하는 얘기로 '정신 건강에 아주 좋은' 태도임에 분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태도는 권장된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속담 혹은 관용구가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독일어 표현에 "was passiert ist, ist passiert", 영어에선 "It's no good/use crying over spilt milk" ... 우리말에서는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원래 우리 속담일까?) 혹은 '모던'한 버전으로 "버스지나간 후 손들어 봐야 소용없다" 정도? 어쨌든 일종의 심리적 기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우리가 mechanism의 번역어로 자주 사용하는 '기제'(機制)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있지 않다. 옳은 표현이 아닌가? 어쨌거나 '기제'는 서로 다른 상황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행동 방식, 심리적 (해석) 유형을 일컫는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과는 다르게 사회학에는 사실 '기제' 혹은 'mechanism'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 같진 않다. 특별히 ethnomethodology 의 methodology를 그런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Oder irre ich mich an diesem Punkt?] 어느 정도 정형화된 심리기제라고 하면 심리학 비전문가로서 당장 '신포도 기제'나 엽기적 인질 사건 보도에 흔히 언급되던 '스톡홀름 증후군' 정도를 떠 올릴 수 있다. 우리 심리체계가 경험하는 건 많은 경우 기제라고까지 얘기하기 힘든 개인적 경향, 태도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연체료 대박' 처럼 가끔씩 겪는 사건, 사고는 쉽게 수용한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사람과 관련되어 일어난 일은 좀 오래 마음에 두는 편이다. 예를 들어 며칠 전 Steh-Cafe 에서 '아줌마'에게 어떤 말을 건냈는데 못 알아듣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세 번째 'turn'에서 [ㅎㅎ 어제 들은 걸 활용했다] 상황 정리가 끝났지만, 바로 옆에 서 있던 독일 녀석 둘이서 내 말을 자기들도 잘못 알아들었다면 지들끼리 얘기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 어떤 말을 해 줘야 할 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 갔는데, 몇 걸음 떼지 않아서 그냥 넘어갈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해 줄 말이 생각나고... 하지만 그 몇 초의 시간이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들어 버려서 다시 돌아가서 걔들 나무라기가 참 어색하게 되어 버렸다 [의사소통에서 1초, 2초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는 시간이다. 그 순간은 분명한 메세지를 전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싸울 때나 농담을 할 때. 순간, 타이밍을 놓치면 싸움도, 유머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으로서 외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을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대개 공감할텐데... 수업에서 문답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서 끼어들어 보려고 기회를 노린 적이 있는데 그 몇 초를 놓쳐서 결국 한 마디도 못하고 말았던 적....] 적어도 그날은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고 해 주었으면 좋았을 말들이 떠 오르는 것이다. 모국어가 아니라서 더 그렇기도 했겠지만 난 원래 말싸움 할 때도 가끔씩은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적절한 단어, 표현이 생각나서 뒤늦게 분해하는 편이다. 언제가도 썼듯이 관계를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 답답함, 분함을 처리하는 심리적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분함이나 억울함을 풀지 못하는 경우에는 -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그 독일 녀석들처럼 -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해결해 주도록 맡기는 수 밖에 없지만, 그 상대가 친밀한 사람일 경우 어떤 식으로든 나중에라도 내 생각, 심정을 털어놓는 편이다. 가까운 사람과 오해나 불만을 다 처리하지 못하고선 도무지 관계지속이 어렵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움직여가는 것을 관찰하면 난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났거나 되돌이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고, 개선이나 해소할 여지가 있는 사람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는 편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ps) 생생한 그 느낌을 그래로 남겨두고자 아침부터 컴앞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이미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런 일은 누굴 원망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내 결정의 결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질 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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