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4일 토요일

사진: 의외성



중심가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모처럼 카메라를 '帶同'했다. 틈나는 대로 이 동네 풍경을 좀 찍어 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헌데... 날이 흐린 탓인지, 또 너무도 '심플'한 카메라 탓인지... 별 소득이 없었다. 그나마 얻은 거라면 윗 사진. 구시가지에 있는 Nicolai-Kirche에 들어갔다 제단 옆에 놓여 있는 촛불군을 찍은 것. 사진만이 주는 묘미라면 이런 의외성 아닐까? 늘 보던 익숙한 사물이나 풍경이라고 하더라도 확대하거나, 혹은 일부만 잘라내서 보거나, 혹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낯설게 느껴지지 않던가. 일상의 재발견, 혹은 낯설게하기... 새로운 framing... (사실 사회과학에서 쓰는 frame이란 용어가 액자라는 frame의 원뜻에서 전용된 사례 아닌가) 여권용 사진처럼 눈으로 보이는 현상에 대한 대용품으로서 사진과 감상용 사진을 구분할 수 있을 텐데, 이런 framing 그리고 그 framing 즐기기, 해석하기야말로 사진을 감상용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기독교와 정치적 보수주의

"기독교 문화가 계몽과 정치적 진보의 토양을 제공한 적도 있었다. 개화기에는 계몽적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7~8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의 터널 속에서는 양심의 전광판 노릇을 하기도 했다. 아니, 상업주의 일색의 문화가 새로운 시대의 형이상학으로 등극한 이 세속의 시대에서도,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빛과 소금의 푯대 아래 조용한 살신성인의 행보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민감한 정치사회적 현안일수록 기독교인들의 시각과 동선(動線)은 안으로 굽는다. 만하임(K. Mannheim)은 ‘보수주의는 아예 이론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로 종교적 파토스(pathos)의 집단주의적 정서는 아예 생각 자체를 무화시킴으로써 사회참여를 위한 합리적 에토스(ethos)를 강직화한다. 가령 나치즘과 일제 파시즘, 그리고 북한의 유일체제가 모두 종교주의적 파토스를 동력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한번쯤 되새겨볼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철학적 인간주의는 이론이 없는 상태에서 결여된 이론의 느낌만을 제공한다’고 했던 알튀세(L. Althusser)를 원용한다면, 과도한 종교신앙적 파토스 역시 ‘결여된 이론의 느낌’만으로 이론을 대체함으로써 현실정치적 판단의 잣대나 기준을 스스로 먹어치운다.

이른바 ‘타율적 종교’라는 기독교의 속성 역시 현실정치적 자율성을 방치하거나 훼손시킨다는 혐의를 둘만하다.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일반이 여전히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기운을 오히려 부추기는 경향이 있으며, 이 반지성주의에는 ‘스스로 사유할 용기와 합리성’으로서의 계몽에 역행함으로써 정치적 자율성을 무력화시킬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계몽을 겪어내지 못한 종교가 야만으로 치달은 경우를 역사는 누누이 증거한다.

신화나 종교는 모두 유서깊은 법(nomos)의 원형적 형식들로서 그 일차적 기능은 의당 삶의 질서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다. 신화나 종교의 체계 속에 타부나 지옥(地獄)같은 ‘협박의 장치’들이 한결같이 구비되어 있는 이유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이 질서와 조화의 욕구가 이데올로기화되면서 현실정치판의 기득권 세력에 삼투되거나 습합된다는 데에서 생긴다. 여기에 기독교인들의 ‘사랑타령’과 ‘은혜타령’의 문화가 실은 무정견(無定見)의 정견(政見)을 분식하는 허위의식으로 전락하곤 하는 이유가 자명해진다. 종교는 무차별의 포용이라는 미망(迷妄)을 이상으로 내세우지만, 정치는 지악(至惡)을 쉼없이 배제해야 하는 냉엄한 선택의 현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를 꼽자면, 역시 개체 교회들의 자본주의화일 것이다. 물신(物神)과의 싸움에서 가장 견결해야 할 (대형)교회들의 물신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많은 설교자들은 세속적 부(富)의 축적을 영적 체계 속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의 적나라한 표현을 빌면, “돈이 없으면 교회 속에서도 사람대접받지 못하는” 풍토가 엄연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정치를 포함한 만사를 좌지우지하는 세상에서, 교회마저 자본주의와 적극적으로 결탁할 경우, 신자들은 일반 서민들의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적 선택으로 휘몰려갈 위험에 빠지게 된다. 혹자가 성직자들을 일러 현대의 양반계급이라고 특칭했듯이, 신자들 역시 영적 부르주아 계급으로 재체계화되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을 무비판적으로 추인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원시인과 유아에게 특유한 사고방식을 ‘술어적(述語的) 사고’라고 불렀는데, 이는 술어 사이의 유사성을 곧 주어 사이의 유사성으로 오인하는 인지구조를 가리킨다. 가령 ‘영적 신앙을 지킨다’는 보수(保守)와 ‘정치적 기득권을 지킨다’는 보수는 둘 다 ‘지킨다’는 술어를 공유하지만, 그 주어적 가치는 전혀 다르다. 기독교의 정치적 보수화는 이처럼 우선 보수에 대한 혼동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

새전북 신문(2004년 4월 5일자)에 실렸나 보다. 글쓴이는 김영민교수. 평소 내 생각을 너무도 정확하게 대변해 주는 글이라 옮겨 둔다. 굳이 주변적인 걸 가지고 트집을 잡자면... 아마 신문 시평으로 쓴 글 같은데 굳이 만하임, 알뛰세, 프로이트 같은 거장들을 등장시켜야 했을까? 독자들 주눅들게 해서 자신의 논지를 방어하려는 지적 장치일까?

Aber-glaube

"독일어로 미신(迷信)을 '아버-글라우베(Aber-glaube)'라고 하는데, 그 뜻은 '그래도/그러나) 믿(고보)자!'라는 것"

꽤 큰 文名을 떨치고 있는 철학자가 자신 홈피에 - 댓글로 - 쓴 글에서 따왔다. 독일어 어원 설명이 왠지 미심쩍어 독일이 자랑하는 Duden 사전 (디지탈판, 2000)에서 그 단어 설명을 찾아보았다. 어원을 이렇게 설명해 놓고 있다: "Aberglaube, der; -(...) [ aber in der veralteten Bed. falsch, schlecht; vgl. Aberwitz, Abersinn]" 흠 그럼 그렇지. aber라는 표현이 과거에는 '틀린, 나쁜'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는 얘기고, 그 뜻을 좇으면 Aberglaube는 잘못된 믿음, 신앙 아닌가. 이 철학자는 'aber'의 현대적 의미를 기초로 일종의 상상의 나래를 편 것. 이 양반 원래 언어유희에 가까운 현란한 언어 구사로 유명한 양반이긴 하다. 어쩜 '아버-글라우베'도 그냥 장난한 번 쳐 '보신' 것일 수도 있겠다. 특히, 그 이후 이어지는 문장을 고려한다면...

"‘황우(黃牛)석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국민연합’이 대구에서 발기(!)했다는 사실은 그 나름대로 심오하다. 누른 소(黃牛)가 노닐기에는 필시 큰 언덕(大邱)이 안성마춤일 것! 거기다가, 남한의 남근이라면 응당 대구 언덕이 아니겠는가?"

황우(석), 대구, 발기... 그럼 '아버-글라우베'에 대한 독창적 어원설명은 이런 말들에 유유히 장난을 걸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나?

[09.09.23. aber 를 찾아보니 [aber, aver, eigtl. = weiter weg; später; noch einmal wieder]란 설명도 나와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좀 지나친 해석이다. 그는 人文學이 아닌 - "삶(사람)의 무늬를 탐색하는 공부"라는 뜻으로 - 人紋學을 얘기하기도 하고, "문화(文化)의 문화(紋和: 무늬의 어울림)론"을 제창한다고도 하는데, 언어유희에 일가견이 있는 건 분명하나... 過猶不及...
물론 옛단어나 개념일수록 정확한 어원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사전은 어쩌면 매우 어원학이 밝혀낸 것들 중 매우 '보수적'인 해석을 선호할 것이니, 학자들이 상상력을 좀 발휘하는 것 너그럽게 봐 주도록 하자. 하지만 나는 "개념사"적 접근까지는 수용을 하겠는데,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어원학엔 좀 불편하다.

2009년 1월 14일 수요일

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

함소영의 '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이란 글이 오늘자 조선일보 홈피에 연결되어 있어서 찾아 봤다. 그 양반이 기자인지 알 길은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라 일부 옮겨 둔다. 우선 사진 두장. 바로 밑에 있는 사진은 데뷔 전, 이후는 데뷔 후 사진. 두 사진 모두 앳된 모습이긴 한대, 바로 아래 사진이 막 밴드 결성해서 어설프게 터프해 보이려는 애송이들 같다면, 그 아래는 좀 더 '관리'된 티가 역력하게 난다.

"60년대 초 미국은 아직 전쟁 뒤 보수의 물결이 잦아들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선정적인 몸짓과 성적 매력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당시 인종 차별의 장벽에 시달리던 흑인 음악가들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는 있었지만 전 세대를 포괄하는 인기를 얻기는 어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음악을 '외설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미국의 사춘기 청소년들(베이비붐 세대)는 이러한 부모 세대의 억압적, 보수적인 기질에 반항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그룹이 비틀즈입니다. 당시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녔으나 외관상 (기성세대들의 눈에) 불량스러운 다른 밴드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비틀즈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이라는 뛰어난 사업가적 기질을 지닌 매니저를 만나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엡스타인은 가죽 자켓을 입고 거칠게 행동하던 '비트족(beat) 비틀즈'를 보수적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게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예의바른 청년의 이미지로 '조작'하기 시작합니다.이리하여 비틀즈는 가죽 자켓을 벗고 '비틀수트'라고 불리는 깔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또 뒤로 빗어 넘긴 불량스러운 헤어스타일 대신 귀엽고 단정한 더벅머리로 변신하지요.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비틀즈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가진 '포장 기술'의 적절한 융화는 미국 대중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
'가죽 자켓' 시절의 도발적이고 솔직한 가사에 ,소녀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귀여운 미소년의 외양을 갖춘 비틀즈. 비틀즈가 1964년 싱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가지고 미국으로 상륙했을 때, 십대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도 비틀즈의 단정한 이미지에 반하게 됩니다
."

데뷔시절 비틀즈의 천진난만한 미소년 이미지는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었던 것. 요새 수만 형님, 진영이 하는 짓거리가 사실 나름 뼈대를 찾을 수 있는 그런 활동이라는 말씀 (물론 비틀즈가 처음이라는 얘긴아니고...). 허나 그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아저씨들 소녀 취향 만족시켜 주는 아이들과 당대 '언니들' 만족시켜 주던 비틀즈가 다른 점이 있을텐데 뭐겠는가? '음악성' 아니겠는가? 비틀즈만해도 아직 가수의 시대가 낸 자식들이었던 것. 아니 전문 직업으로서 '(대중)가수', '밴드'가 막 만들어지던 시기 아니었을까... 그들은 팝음악 최초의 컨셉 앨범이라고 불리는, 이름도 괴상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를 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시대 아닌가 (이 말의 원전을 따지지는 말자). 가수라면 음악성이 우선 뛰어냐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도 버릴 수 있는... 수만, 진영, 그네들은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요.

바흐를 좋아하세요?

"음악을 듣는 동기, 목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나에게 그것을 묻는다면 ‘심미적 즐거움’과 ‘경건한 삶의 회복’, 두 가지로 간명하게 대답하겠다. ‘경건한 삶의 회복’이 대체 무슨 뜻인가? 많은 사람들이 종교생활을 지향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현재 특정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 하나의 대안으로 음악에서 위안을 구하는 것이다. 바흐의 음악은 ‘심미적 즐거움’과 ‘경건한 삶의 회복’ 이 모두를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켜준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바흐 음악은 음악 자체이고 그것을 듣는 것은 음악 자체를 듣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소설가 송영의 에세이 ''바흐를 좋아하세요?'' 중 일부다. 가끔씩 왜 내 속에 들어있는 무엇인가가 나오려고 근질거리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는가. 그것을 artikulieren 하려면 그 근질거림의 원인을 파헤치려 더 깊이 생각해보거나, 아님 어떤 계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이 artikulieren해 놓은 것을 읽거나 듣고서 그제서야 맞장구치거나. 바흐 음악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 근질거림이 있었고, 송영 선생의 견해를 듣고서야 나름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난 '클래식' 뿐 아니라 '팝', '재즈'를 들을 때도 그렇지 않나 싶다. 때로는 어설픈 혹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CCM (Christian Contemporary Music) 보다 폐인처럼 살다 간 Chet Baker의 트럼펫 소리나 'my funny valentine', 끈적끈적한 Jeff Buckley의 'hallelujah'에서 오히려 '경건한 삶의 회복'을 위한 동기를 부여받기도 하니까...

2009년 1월 13일 화요일

환경미화원이 될 뻔한 박사 (수료자)

며칠전 '"환경미화원 모집에 물리학 박사도 지원" 했다는 소식을 소개했었는데, 그 '양반' 탈락했단다. 오늘 뉴스엔 박사가 아니라 박사과정 수료자로 나온다. 아무렴... 박사과정 수료와 박사학위 취득의 차는, 흠,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 쪽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 크다. 그것도 꽤, 많이... 실험하느라 체력관리를 소흘히 했던지 체력시험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고... "공채에서는 쓰레기 나르는 능력을 볼 뿐 박사·학사 학위에 가산점을 주지는 않는다”던 강서구청 '관계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환경미화원 공채시험에 지원해 화제를 모은 모 대학원의 물리학 박사과정 수료자가 결국 체력시험의 벽을 넘지 못했다.
13일 서울 강서구청에 따르면 박사과정 수료자 김모(37)씨는 전날 최종선발인원(5명)의 3배수를 뽑는 체력시험에서 합격선보다 4초가량 늦은 22초38을 기록, 응시자 63명 중 하위권에 머물러 낙방했다.
체력시험은 20㎏짜리 모래주머니 2개를 88㎝ 높이에 올려놓은 뒤 나머지 1개를 메고 왕복 50m를 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합격자 대부분은 17~18초대를 기록했다고 강서구 관계자는 전했다.
강서구는 오는 20일 체력시험을 통과한 15명을 상대로 면접시험을 치른 뒤 22일 최종합격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한편 김씨가 환경미화원 공채시험에 지원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지방의 한 화공약품 제조업체 대표는 연합뉴스에 전화를 걸어와 "김씨를 직접 채용하고 싶다"며 김씨와의 연결을 주선해줄 것을 요청했다.
강서구청은 환경미화원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김씨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the difference between women & men?

내가 feminism 혹은 '여성주의' 논의에 대해선 완전 문외한임을 전제로 하고서 내 관찰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전투적 여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런 입장은 점점 공공 커뮤니케이션에서 지지를 덜 받고 있는 것 아닌지.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에서 언제 한 번이라도 '전투적 여성주의'가 제대로 인정이냐 받았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만...). 남녀 성별 차이를 최대한 덜 인정하는 것이 그 동안 역사에서 늘 불이익을 당했던 여성의 약자로서 지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전파되었다. 분명 그런 여파 탓이었을텐데,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던 여학생들이 드문 드문 있었다. 아마 그런 '종족'은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지 않을까? 또 내가 '살아보니' 남성, 여성은 분명히 다르다. 그 원인은 진화생물학적, 사회생물학적으로 보면 분명하다. 양성생식을 하는 생물 종은 남녀, 암수 성별의 구분이 종다양성 확보를 통한 종 재생산과 유지에 중요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른 바 생식세포의 감수분열. 2n이 n이 되고, n과 n이 만나서 새로운 유전자 배열을 갖는 후손 (2n)을 만들어 내는 방식. 남, 녀 간의 차이를 얘기하더라도 얘기해도 따가운 시선을 덜 받는 그런 시기가 도래하지 않아나 생각한다.

벘뜨, 모든 구분하는 카테고리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폭력적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움으로서 '잡종'의 존재를 배제하고, 그 때문에 '잡종'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들에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는 것. 생물학적 기준으로 남성/여성을 구분하는 데에야 대단한 이견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남성성/여성성의 구분은 어떠한가? 윗 그림을 보면 남성성/여성성의 차이를 매우 명쾌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이런 류의 주장은 널리 수용되고 있고, 21세기의 환경에서 큰 부담없이 유통되고 있는 것 같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생각체계가 널리 유통, 소비되고 있는 것처럼. 설득려이 없기야 하겠는가 마는, 왠지 저런 단순한 구분을 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것이다. 과연 그런가? 혹, 저런 담론이 실천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여하튼, 그냥 '맞아, 맞아'하며 낄낄댈 일만은 아니다. 분명히...
(그림 출처는 '여기')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La Condition humaine' (René Magritte, 1933)

Escher 그림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Magritte의 그림 중 하나. 내 눈엔 Escher보다 더 모던해 보인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조건'. 어쩌면 일종의 '낚시밥' 일 수도... ^^ (그림 출처)

'Print Gallery' (M.C. Escher, 1956)


"에셔의 작품인 ≪판화 화랑(Print Gallery)≫입니다. 소년이 화랑에서 전시된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림에는 항구가 있고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2층의 창가에는 소년의 어머니라는 설이 있는 아주머니가 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의 1층은 바로 소년이 있는 화랑이네요. 이 그림에서 소년은 보는 주체일까요, 보이는 대상일까요? 소년이 관람객으로 그림을 보고 있지만 소년 자신이 그림의 일부로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른바 야릇한 고리를 집대성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성, 상상력과 논리, 과학의 발전과 자연의 해석 따위 문제가 포괄적으로 그려져 있는 듯합니다." (물리학자 최무영 교수)

성공의 이면: 암세포, 자본주의

물리학은 보편이론 탐구를 지향한다더니 그런 사고가 생물현상, 사회현상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건지... 서울대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의 성찰이다. 성공의 뒷면에 대한...

"전체 생태계를 개체에 비유하면 생태계에서 인류는 개체에서 세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 가능성은 암세포와 신경세포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신경세포는 두뇌에서 우리 몸 전체를 파악하고 정신현상을 포함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는 메타 수준에서 인류를 포함한 전체 생태계와 우주를 고찰하게 됨을 뜻하지요. 반면에 암세포란 자신을 포함해서 전체를 파멸로 이끌고 갑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인간이 암세포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이네요.
현대사회는 사회주의보다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자본주의가 우월하다고 증언하는 듯합니다. 사회주의라는 체재(sic!)는 모두 망했습니다. 옛 소련은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지만, 아무튼 망해서 러시아라는 자본주의 국가가 됐고 중국도 명백하게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온세계가 자본주의로 된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워낙 우수하고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필연이고 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사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대략 200년 남짓한가요? 길게 잡아도 300년에는 미치지 않으니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수백만 년이고, 역사 시대만 고려해도 수천 년이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봉건체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했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어느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자본주의도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으므로 언젠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세포가 정상 세포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암세포는 매우 우수한 세포입니다. 생존과 번식 등 생명의 기본 속성에서 정상 세포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암세포가 일단 생기면 정상 세포가 사라지고 모두 암세포가 됩니다. 마치 세계가 자본주의화하는 현상과 비슷하지요. 그러나 암세포의 결말이 무엇인가요? 바로 죽음입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암으로 만들어서 모두 같이 죽음으로 끌고 갑니다. 자본주의, 특히 무한경쟁을 지향해서 첫째와 꼴찌로 나누는 신자유주의는 암세포처럼 우수한 능력을 지니지만 인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一石 한돌 선생 )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A. Einstein (1879 - 1955)

그 이유는?

"For knowledge is limited to all we now know and understand, while imagination embraces the entire world, and all there ever will be to know and understand.”

2009년 1월 10일 토요일

이스라엘의 왜곡된 건국신화

경향신문에 실린 서울대 역사학과 최갑수 교수의 칼럼 중 일부이다. 최근 우리 2MB 씨도 '열씨미' 역사 '바로세우기'에 몰입하시는 것처럼, 역사와 정치는 참 동고동락하는 사이인 모양이다. 특히, 갈등 관계에 있는 인접 국가들끼리 바로 역사 이해의 갈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는 조금 더 복잡한데, 유대교도나 기독교도에게 그저 단순한, 사료나 해석에 따라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 이상인, 신앙의 근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종교, 정치, 또 학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難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이 학교 교육을 통해 가르치는 ‘유대민족사’를 보면,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토라’(율법)를 받은 이후 줄곧 존재해 온 유대 민족의 유일한 직계 후예다. 유대인들은 ‘출애급’ 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해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왕국을 세우나, 이후 왕국의 분할과 함께 결국 두 차례(기원전 6세기와 기원후 70년)의 유배생활을 경험한다. 2000년에 걸친 방랑(‘이산’)으로 유대인들은 예멘, 모로코, 스페인,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지로 퍼져갔는데, 하지만 언제나 혈연적 관계를 유지해 민족성을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


이 역사관이 신화에 불과한 것임을 입증하는 책들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신 역사가들’의 논지를 요약한다. 먼저 성경을 역사서로 볼 수 있느냐이다. 종교적 진리를 민족교육의 토대로 만든 것이 19세기 후반기의 시온주의 역사가들인데, 최근 ‘신 고고학’ 등의 연구는 출애급과 관련한 ‘모세 오경’의 사실적 근거를 의심하며, 솔로몬의 왕국도 ‘영화’를 운위하기에는 소왕국에 불과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바빌론 유수’에 대해서는 소수의 지배층만이 유배당했고, 기원후 70년의 ‘제2차 성전 파괴’로 유다왕국의 주민들이 유랑생활을 겪기는커녕 그대로 살다가 일부는 4세기에 기독교로, 대부분은 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싸우면서 닮기

다음은 '로쟈'가 모아 놓은 두 가지 다른 사건에 대한 기사와 짧은 논평을 모은 것이다 (출처). 두 사건의 연결점은? '싸우면서 닮기'.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음을 부인하기 쉬운 위치에 있다. 뭐 그런...

"한국 정부는 과거 미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 매춘부들이 미군들에 몸을 팔도록 허용했다. 한국 정부와 미군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지촌 매춘부들이 미군에 성병을 옮기지 않도록 직접 관리했다”한국의 전직 매춘부들이 과거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촌의 '매춘(Sex Trade)'을 허용하고 미군당국과 함께 매춘부들을 관리했다는 내용이다.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대부분 한국인들에겐 그리 새삼스러운 소식은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이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활용된 위안부의 추한 역사를 공격하고 있지만 이는 또다른 학대의 모습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고 기지촌 매춘부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빗대 새로운 파장도 예고되고 있다.

- 가부장적 민족주의 정서로만 종군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던 우리의 자세에 일대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입니다.<동맹 속의 섹스>가 제기하는 문제의식만 있으면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는 민족의 순결한 여성이고 기지촌 여성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지요.박노자도 <만감일기>에서 정대협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길지 않은 글이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에도 통금이 있던 시절에 정부가 직업여성에게 특별통행증을 주어 외국인 대상 매춘을 허용한 데 대한 글이 있었지요.
-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은 대한민국이 정말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은 게 아니라 일본 총독부와 미군정을 계승한 거구나, 란 거였어요. 해전사의 '재인식'이라고 할까요... "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무차별 공격에 대한 비난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바티칸 성당의 정의와 평화 장관은 이스라엘의 2주 간에 걸친 공격으로 가자 지구는 ‘거대한 수용소’로 변했다고 비판했다고 이탈리아의 한 온라인 신문이 보도했다. 바티칸 성당 쪽의 이스라엘에 대한 이런 비난은 2차 대전 당시 히틀러가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에 감금하고 수백만 명을 살해한 것을 상기시키는 날선 내용이다. 바티칸 성당 쪽은 2차대전 당시에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지금은 유대인이 가자 지구 공격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을 집단 학살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 것이다. 폴란드의 악명높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유대인 150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나치는 수용소에 감금된 유대인을 처음에는 총으로 쏴죽였으나 나중에는 가스실에 몰아넣어 한 에 수십,수백 명씩 학살을 자행했다. 이스라엘은 바티칸 성당 쪽의 언급에 대해 하마스의 선전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침묵

(...) 우리는 침묵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침묵보다 나은 말을 하여야 한다 - 피타고라스 –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2009년 1월 9일 금요일



-정현종-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흠. 알듯 말듯한... 禪詩 같은...

子曰...

공자가 말하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論語, 雍也)

"환경미화원 모집에 물리학 박사도 지원"

'취업 한파 속 환경미화원 모집에 박사학위 소지자가 응시했다'고 한다.

"서울 강서구청은 환경미화원 공채 시험에 국립 K대 출신 물리학 박사 A(37)씨가 응시했다고 9일 밝혔다. 환경미화원 5명을 새로 뽑기 위해 7~8일 이틀 동안 응시원서를 접수한 결과, A씨를 비롯한 고학력자들이 몰렸다는 것이다. 지원자 63명 중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는 11명, 전문대 졸업자는 12명이었다.

구청 환경미화원 모집에 이처럼 고학력자가 몰린 데는 이유가 있다. 구청의 정규직원 신분으로 정년인 만60세까지 근무할 수 있고, 초임부터 연봉 3200만~3300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추가·주말 근무 수당을 더할 경우 한 해 수입으로 3500만원도 올릴 수 있다. 4대 보험과 퇴직금도 물론 보장된다.

강서 구청은 이들을 상대로 오는 12일 ‘체력검정 시험’을 치를 계획이다. 모래주머니를 나르도록 한 뒤 쓰레기 수거와 상하차(上下車) 능력을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체력검정을 통과한 사람은 20일 면접을 치르게 되며, 합격자 발표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구청은 신원조회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추린 뒤 3월 1일자로 임용할 방침이다."


이 기사의 백미는 '강서구청 관계자'의 말씀이다. “물리학 박사가 환경미화원 공채에 응시할 만큼 취업난이 심각한가 싶어 안타깝다” “공채에서는 쓰레기 나르는 능력을 볼 뿐 박사·학사 학위에 가산점을 주지는 않는다

쓰레기 나르는 능력이라... 참, 이 기사, 장르가 불분명하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희비극인지, 블랙코메디인지...

2009년 1월 7일 수요일

3.1운동과 촟불시위

지난 번 촟불 시위에 대해서 그렇게 놀라던 학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매스미디어가 더 이상 놀라지 않자 덩달아 과거지사로 치부하시려는가. 하긴 여기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주로 언론을 통해서 관찰하는 탓에, 언론이 조용하면 학계도 조용한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 탓일 수도 있다. 촛불 시위는 정말이지 독특한 현상일까? 21세기형 최첨단 사회운동의 모습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온 나라를 한참 동안 떠들썩하게 해 놓고선 이렇게 반향이 없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 아닌가? 사회운동 연구자들이라면 각종 운동에 참여한 인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분석을 시도해도 재미있을 터인데, 난 아직까지 그런 연구에 대해선 들은 바 없다. 우리가 혁명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붙이는 경우는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일텐데, 그 두 '혁명'에 참여했던 민중의 수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 않았을 것이고, 혁명 과정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역사서나 혁명 연구서에 보면 그런 기본적인 정보는 들어 있겠지만, 아무리 18세기 말, 20세기 초 일이라고 하더라도 촛불시위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니, 러시아혁명 불과 수 년후에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을 생각해 보자. 당시 조선민 수가 약 2천만명이었다고 하는데, 만세 운동 참여자는 200만 명에 다다른다고 한다. 인구의 10/1이 참여한 것이다. 양적으로 보아 비교할만한 사건이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3.1. 운동은 1919년에 일어났음에도 나라를 지키자는 것이고 그 목표는 곧 조선왕조 부흥에 가깝긴 하다. 근대적 시민, 국가,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씀. 구한말 衛正斥邪, 復辟 이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이미 동학운동이 있지 않았던가. 동학의 이념은 어느 정도 민중의 의식에 남아 있었을까? 어쩌면 애국계몽운동으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3.1. 운동의 기저에는 동학, 애국계몽 운동의 아이디어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연구가 이미 많이 있겠지만 읽은 바가 없어서... 그리고 3.1.운동은 실제로 2년에 걸쳐서 일어났고,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前史, 後史가 있고, 윤관순 '누나', 민족대표 33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운형'의 역할, 신한청년당 등의 역할... ). 촛불시위의 모태는 어쩌면 멀게는 3.1. 운동이고 가깝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일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보아 짧은 시기에 일어난 사회운동의 규모를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상당수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600만명이 죽어가면서 변변히 저항해 보지 못했고, 나찌 치하에서 얼마나 독일 내 저항이 빈약했으면 젊은이 몇이서 삐라 뿌리다 잡혀 죽은 '백장미단' 사건이나 Stauffenberg이 주동한 히틀러 암살 사건을 두고 두고 울궈 먹을까 (영화로 만들어서 돈도 벌고 말이야. cf. 'valkirie'). 그 유명하다는 '68운동'은 어떤가. 도대체가 한국의 80년대 학생운동과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냔 말이다. 그런데 왜 68 운동에 대한 반향이 그렇게 클까? 68운동은 신화가 되면서 비로소 그 영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저항의 역사로 치자면 도올 선생도 언급한 바 있는 아일랜드 역사가 눈에 띈다. 영국을 상대로 약 800년간을 독립을 위해 싸운 그 '역사'... ).
한 때는 '관제' 한국사. 즉, 무궁한 자부심을 느껴 마땅하다는 투의 민족주의적 혹은 국수주의적 한국사 인식에 대한 반발로 큰 의미가 부여되던 한국사 사건을 일단 평가절하하고 보려고 한 적도 있었데, 조금 더 지식을 얻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한번 더 '턴'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국수주의적 쪽은 아니고...
역사적 사건이 지지는 의미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역사는 원래 그런 것이다. 불고불변의 역사적 사실, 진실이란 건 본원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줘도 좋을 것 같다.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는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수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cf. 독도에 대한 반응). 한 편으로 엄밀한 고증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세계사의 맥락에서 한국사를 볼 수 있는 그런 시각도 갖춰야 할 것이다. 도올 선생. 그런 점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예를 들어, 한국 독립운동사를 세계사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

2009년 1월 6일 화요일

문제적 인간: 김용옥

"청춘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청춘의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도올 -

도올 선생 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할 수 있을만한 얘기지만, 어쨌든 이런 표현으론 도올 선생에게서 들었다. 순천여고에서 한 강연에서... 저 말을 조금 비틀어 이해하면 우리는 이 순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청춘'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줄 모르거나 체감하지 못하는 '청춘'이 대부분이고, 또 좋은 시절이라고 강변하면서 사는 '좀 덜 청춘'도 있는 것이다.

도올 선생. 참으로 여러 면에서 '문제적 인간'이다 (아, 물론 '적'(的)이란 표현을 가능한 쓰지 않아야 좋은 문장이 됨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문제적 인간'이란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게 들린다. 허나 이 '문제적 인간'이란 표현은 언제부터인가 쓰이게 되었고 그 어색한 표현이 주는 독특한 맛이 붙었다. 여기에선 그런 의미로... ). 아마 진중권 선생이 같은 '과'가 아닌가 싶은데. 도발적이고, 호/불호 분명하고, 현학적이고, 계몽적이고, 다변이고, 도전적이고... 도올 선생의 열정과 확신, 사명감은 거의 종교적 수준이다. 그래서 그 양반 강연장은 늘 부흥회 분위기고, '믿슙니까?'-아멘', 이런 상황이 연출될 것만 같은... 내가 관심을 좀 '끄고' 있던 사이 EBS, KBS 등에 자주 출연하셨더만. 오해마삼. 딴지 거는 게 아니니까. 도올 선생 (그리고 진중권 선생) 정도 지식, 언변이면 밑천이 바닥날 때까지는 더 출현시켜도 좋을 것이다. 어짜피 '대중지식인'을 지향하고 있으니, 이제와서 학술적 업적이 많으니, 적으니,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논어와 공자에 대한 일부 견해에 대해선 표절 시비도 있는 모양이나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지는 모르겠다.

2009년 1월 5일 월요일

다윈, 진화론 그리고 한국

'올해는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고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국내 다윈 전문가인 최재천(54)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4일 다윈의 탄생 200주년과 관련해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얘기를 했는데, 내겐 다음 구절이 인상에 남는다.

"다윈은 서양사상사에서 이단아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은 2천년 전통의 플라톤 철학을 뒤엎은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혼불멸의 진리가 존재하고, 사물이나 동물은 그 진리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 다윈은 사물 하나하나가 허상이 아니라 중요하고 아름다운 실체라고 주장한다. 그냥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섞이고, 자손을 만들어가면서 변화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불완전한 존재다. 다윈은 불완전하지만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일종의 상대성을 말한 것이다. 이는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윈은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그의 저서를 통해 말한 적이 없다. 이는 영국의 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한 말이 다윈의 말로 와전된 것이다. 다윈이 썼다면 아마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The Survival of the Fitter)으로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윈은 모든게 최고의 경지에 올라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일정한 상대보다 잘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복잡해 보이는 걸 한 '큐'에 정리해 주는 이런 전문가들을 좋아한다. 플라톤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사상사를 다윈이 마침내 깼단다. 이 얼마나 명쾌한 구분인가.

그 밖에 이런 얘기도 했다.

"일본 도쿄대의 사쿠라 오사무 교수가 '생물철학'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진화론 수용을 분석한 적이 있다. 사쿠라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대단히 잘 수용한 편이고 중국도 때늦은 서구 문물 도입에 비해 비교적 빨리 진화론을 습득했다. 동아시아 3국 중 유독 한국만 다윈에 대한 저항이 강했다. 사쿠라 교수는 그 이유를 "기독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쿠라 교수의 의견에 덧붙이자면 한국 자연과학 발달사를 살펴봤을 때 물리학과 화학에 비해 생물학 수입이 매우 늦은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생물학은 압축성장을 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생물학 중 분자생물학이 조명을 받은 반면 상대적으로 진화생물학은 발달이 늦었던 것이다."

그런가? 진화생물학 혹은 생물학 이론으로서 진화로 수용은 늦었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기독교가 어느 정도 '기여'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화론의 결과인 '사회진화론'의 영향은 20세기 초 한국에서 대단했다고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인을 포함한 소위 선각자들이 대거 그런 입장을 취했었고. 사회생물학, 우생학과 생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진화생물학은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인간사의 질서를 중시하는 조선시대 사고방식 속에서 자리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가 인용한 일본의 그 교수가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 지 알아봐야겠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주장임에는 분명하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유명한 진화론자 스테판 굴드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굴드에 따르면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은 단순한 이론이다. 생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고 이 중 환경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장 강하게 변화한 자손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며 이 변이가 각 개체군에 축적된다는 것이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된 개체 혹은 適者는 혼자만 단독으로 살아남으려는 게 아니라 (이건 많은 인간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긴 하다), 후손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2009년 1월 4일 일요일

세계의 명문대학?

이번 연말 방학을 참 '유익하게' (ㅜ ㅜ) 보내고 있는데, 오늘은 '세계의 명문대학'이라는 SBS 다큐를 '대략' 보았다. 요새 만들어진 것 치곤 방송에 비친 학교들 기자재가 (특히 모니터) 좀 '후지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03년에 방영된 모양이다 (제작에 참여한 이의 소감을 보려면 '여기'에서). 1부에서는 주로 학생을, 2부에서는 교수와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명문대학으로 나온 학교는 미국: 하버드, MIT, 스탠포드, 중국: 칭화대, 베이징대, 일본: 도쿄대, 와세다대. (흠, 그렇다.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되지).
엽기적인 장면이 적지 않게 있었다. 아무리 시험기간이라지만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밤새워 공부하는 하버드대 학생들. 그들은 거침없이 '살아남기'란 표현을 쓰고 있었다. 또, 칭화대에선 기숙사 소등시간이 11시 반인데, 그 이후에 복도에 켜지는 미등 밑으로 학생들이 모여든다. 그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고 토론도 한다. 지금도 그럴까? 흥미로운 건, 일본 대학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 도쿄대 학생들은 적어도 1,2학년 때는 별로 공부하지 않는 모양이다. 대개 공직으로 진출하게 되고, 또 조직에 잘 융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학과공부보다 써클 활동에 열심이라고.
대학 도서관 개방 시간을 비교하면서 은근히 도쿄대를 '깐다' (캡쳐 화면 참조). 도쿄대는 8:30, 베이징대는 6:30, 하버드대엔 24시간 개방하는 도서관이 있고. 흠. '우리' 학교는? 8시! 하지만 폐관 시간이 1시임을 고려해 줘야^^

한편으로는 자극 혹은 도전이 되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열심히 살아야지. 시간관리 잘하고. 남들하고 똑같이 해서는 남을 이길 수 없겠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잖아? 그 생존경쟁의 결과 위쪽 서열에 '랭크'된 얘들은 뭔가 달라도 달라. 달리 명문대겠어? 학생도 그렇고, 교수도 그렇고...
벗뜨!! 다른 한 편 씁쓸함 혹은 불편한 감정이 밀려드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살아남기'란 표현...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들은 지금 행복한가? (실제 행복한 표정을 보이는 이들도 없진 않았다. 연구실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는 미혼 교수들의 그 '벅찬' 표정과 때마침 속보이게 깔리는 그 감동적인 배경음악이라니...) 아니면 더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인내하는 것인가? 다행히도 이 프로그램은 교수들의 모습도 많이 보여 주었는데, 어쩌면 그 학생들 중 많은 이들은 그 명문대 교수가 되어서 화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혹독한 임용, 평가, 연구비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또 다시 밤잠을 줄이고, 다른 것들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SBS가 시청자들이 감동하기를 기대하면서 보여준 그렇게 엽기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교수들이 대부분 자연계, 공대 쪽이라는 것. 꼭 그런 것만도 아니구나. '비지니스 스쿨', 경제학 그리고 북경대의 전설인 92살의 나이에도 새벽 4:30분이면 일어나서 연구한다는 그 '동양(철)학' 학자. 나름대로 다각적으로 보여주려고 애를 쓴 흔적은 보이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저 '세계의 명문대생들, 그리고 교수들은 살아 남으려고 밤잠 안자고, 열심히 한단다'는 메세지만 크게 들릴 뿐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독일 대학들은 정말이지 어떻게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일까? BA 과정이 도입되면서 학생들이 좀 정신없이 공부에 몰두하는 사뭇 낯선 풍경을 자주 보게 되긴 하지만, 그게 과연 더 나아지고 있는 모습인가? '세계의 명문대학'을 찍은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대학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허나, 과연 그런가? 그 빽빽한 시간, 그리고 시험들, 치루고 나면 다 잊어먹는 지식들.... 대개 BA에서 배우는 것들은 그렇지 않던가?
물론 잘 알고 있다. 이런 얘기도 '세계의 명문대'에서 30대 초반에 박사를 따고 30대 중반이면 교수로 임용되고, 40이 되기 전에 정년보장을 받은 이들이 해야 한다. '세계 명문대학'에 멀어도 한참 먼 대학에서,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서도 30대말에 아직 박사 학위도 '못 딴' 늙은 학생의 얘기는.... (이하 생략).

2009년 1월 2일 금요일

일신교의 기원: 사막 (?)

사막과 일신교의 기원을 연결시키는 기발한 착상을 우즈베키스탄 사막을 도보여행한 여행자의 기록에서 발견하고선 남겨둔다. 사막은 모든 것을 단순화시킨다는 것. 신에 대한 관념마저... 종교학에서 훨씬 복잡한 수사를 동원하겠지만, 유목민과 농경민들이 서로 다른 신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다. 유일신 신앙 vs. 다신 신앙 (만물정령 신앙). 심지어 중동 내에서도 그런 차이가 관찰된다 (히브리족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의 차이). 하긴 그 비쩍 마른 모래를 보면서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긴 하겠다. 또,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기 쉽지 대지의 포근함, 모성은 매우 낯선 개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일신을 신봉하는 종교는 하나 같이 엄한 아버지 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신교중 기독교 (카톨릭, 개신교)가 유대교, 이슬람교보다 그나마 넉넉해 보이는 까닭은 외경의 대상일 뿐인 아버지 하나님을 보완하는 성령, 예수, 마리아 등의 역할이 있기 때문은 아닐지. 일신교 중에서 진화된 형태라고 할까...

"사막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한낮에 1시간 동안만 혼자 사막을 걸어보면 알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없으니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걸어갈수록 멀어지는 지평선, 인정사정없는 뙤약볕은 사람의 욕구도 단순하게 만든다. 때가 되면 먹고, 밤이 되면 잔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 밖에 없다. 때로는 무더위에 분통이 터지고, 탈진 직전에 이르기도 했지만 난 벌써 다시 사막이 그리워진다. 그건 아마도 사막이 나에게 주었던 극도의 단순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고요함과 적막 때문이다. 생각과 감각도 그렇게 변해간다. 오래 전에 예언자들이 모두 사막으로 들어갔던 것도, 그 안에서 일신교가 탄생한 것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우즈베키스탄 키질쿰 사막, 사진은 그 도보여행기록에서 無斷^^ 轉載, 출처)

일신교의 등장, 기독교의 등장, 기독교에서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등장, 이런 일련의 역사적 과정이 사회의 변화와 그리고 인간의 신관념 변화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애 인격신에 대한 관념이 강하지 않았던 아시아권의 종교는 어떻게 이해해할 할까? 유교 등 신 없는 아시아의 종교가 더 발전된 종교적 사유체계라는 주장도 들어본 것 같긴 하다. 김용옥의 새 저서 '논어 한글역주'를 소개하는 한겨레 기사에 요약된 도올 선생의 주장이 흥미로와서 옮겨 놓는다.

"고대 문명 초기에 등장한 다신교적 신앙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신교 신앙으로 나아갔고, 이어 인더스·갠지스 문명을 통해 일신교 자체의 극복인 불교를 낳았다. 불교가 보여준 신 없는 종교 체계는 중국 문명에서 그대로 재현됐는데, 그것이 유교 문명이다. 공자는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유, “인문학적 윤리학”의 건설자였다. 그런 점에서 “고대 문명 세계에서 가장 콘템포러리한(현대적인) 문명”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논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사유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종교에 대한 논의 맥락에서 한 얘기는 아니지만, 동서양 문명을 비교한 내용도 흥미롭다.

"지은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논어>의 세계사적·문명사적 위치와 의미를 찾는 긴 서문을 통해 ‘인류문명’을 ‘전관’하고 있다. 이 문명사적 조망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뿌리로 삼는 서구 문명을 상대화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이라는 세계 4대 문명이 범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났음을 고려하면, 그리스·로마 문명은 그 문명권 바깥에서 일어난 역외의 문명이다. 고대문명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원류 속의 말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 문명이 오늘날 지배문명이 된 것은 ‘연역적 사유’의 발견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근대 서구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기술을 흥성시킨 것은 이 그리스 문명의 사유 방식에 기댄 성과였다. 지은이는 서구의 지배를 가능케 한 이 세 위업 가운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어느 정도 따라잡았으며,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 자연과학 분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최종적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진리’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논어>라는 서구 문명 바깥의 사유를 새로이 탐구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도올 선생은 서구의 사상을 헬레니즘과 유대-기독교 전통으로 구분한다 (어디 그만 그러겠는가마는...). 유대-기독교 전통의 출발은 유일신이고 그 유일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조주이다 (creation ex nihilio). 헬레니즘에도 신은 있지만 그 신은 유대교의 신처럼 창조주가 아니라, 세상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에 가깝다. 불변하는 것은 한 마디로 '이성'이다. 세상은 '절대'의 그림자이고 (플라톤인가 이건?). 헬네니즘과 유대-기독교 전통은 모두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이에 반해 동양적 세계관은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그것을 천자문세계관이라고 표현한다. 天地玄黃 宇宙洪荒 日月盈仄 등등.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은 현상태에서 출발. 창조주가 따로 필요없다. 해는 차고 달은 기운다. 변화하는 것을 인정하고 출발한다는 것. 도올선생이 좋아하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바로 이런 얘기아닌가 싶다. 혹은 현대 물리학이 얘기하는...

공포의 정치, 욕망의 정치, 그리고 파시즘

공포의 정치, 욕망의 정치. 억압적 정권의 행태를 이루는 두 축을 한홍구 교수가 그렇게 표현했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회과학적인 이론 틀, 개념으로 수용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공포의 정치' 축에다 부동산 투기 등 '욕망의 정치'. 양 축으로 지배를 해왔다.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공포' 축이 흔들리고 '욕망' 축이 강화됐다. 그런데 '욕망' 축마저 이번에 뉴타운까지 와서 뻥 터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욕망'를 채워줄 재간이 없다. 그러니 '공포'를 되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
지금 이명박 정부가 노리는 것은 그를 되돌리는 것이다. '욕망의 정치' 축을 되살리기 위해 대운하를 만지작거리고, '공포의 정치' 축을 되살리기 위해 국정원법 등 공안 통치를 되살리고 언론을 장악하고 전교조를 몰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꼭 필요한 것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 이 싸움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철저한 분석을 기초한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반성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


그의 경고대로 경제적 위기의 심화가 한국에서 파시즘의 도래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인간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역주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 장담하진 못하겠다. 얼마 전에 본 독일 영화 Die Welle (2008, Dennis Gansel)가 파시즘이 얼마나 쉽게 확산될 수 있는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