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는 동기, 목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나에게 그것을 묻는다면 ‘심미적 즐거움’과 ‘경건한 삶의 회복’, 두 가지로 간명하게 대답하겠다. ‘경건한 삶의 회복’이 대체 무슨 뜻인가? 많은 사람들이 종교생활을 지향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말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현재 특정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 하나의 대안으로 음악에서 위안을 구하는 것이다. 바흐의 음악은 ‘심미적 즐거움’과 ‘경건한 삶의 회복’ 이 모두를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켜준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바흐 음악은 음악 자체이고 그것을 듣는 것은 음악 자체를 듣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소설가 송영의 에세이 ''바흐를 좋아하세요?'' 중 일부다. 가끔씩 왜 내 속에 들어있는 무엇인가가 나오려고 근질거리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는가. 그것을 artikulieren 하려면 그 근질거림의 원인을 파헤치려 더 깊이 생각해보거나, 아님 어떤 계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이 artikulieren해 놓은 것을 읽거나 듣고서 그제서야 맞장구치거나. 바흐 음악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 근질거림이 있었고, 송영 선생의 견해를 듣고서야 나름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난 '클래식' 뿐 아니라 '팝', '재즈'를 들을 때도 그렇지 않나 싶다. 때로는 어설픈 혹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CCM (Christian Contemporary Music) 보다 폐인처럼 살다 간 Chet Baker의 트럼펫 소리나 'my funny valentine', 끈적끈적한 Jeff Buckley의 'hallelujah'에서 오히려 '경건한 삶의 회복'을 위한 동기를 부여받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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