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7일 수요일

3.1운동과 촟불시위

지난 번 촟불 시위에 대해서 그렇게 놀라던 학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매스미디어가 더 이상 놀라지 않자 덩달아 과거지사로 치부하시려는가. 하긴 여기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주로 언론을 통해서 관찰하는 탓에, 언론이 조용하면 학계도 조용한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 탓일 수도 있다. 촛불 시위는 정말이지 독특한 현상일까? 21세기형 최첨단 사회운동의 모습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온 나라를 한참 동안 떠들썩하게 해 놓고선 이렇게 반향이 없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 아닌가? 사회운동 연구자들이라면 각종 운동에 참여한 인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분석을 시도해도 재미있을 터인데, 난 아직까지 그런 연구에 대해선 들은 바 없다. 우리가 혁명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붙이는 경우는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일텐데, 그 두 '혁명'에 참여했던 민중의 수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 않았을 것이고, 혁명 과정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역사서나 혁명 연구서에 보면 그런 기본적인 정보는 들어 있겠지만, 아무리 18세기 말, 20세기 초 일이라고 하더라도 촛불시위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니, 러시아혁명 불과 수 년후에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을 생각해 보자. 당시 조선민 수가 약 2천만명이었다고 하는데, 만세 운동 참여자는 200만 명에 다다른다고 한다. 인구의 10/1이 참여한 것이다. 양적으로 보아 비교할만한 사건이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3.1. 운동은 1919년에 일어났음에도 나라를 지키자는 것이고 그 목표는 곧 조선왕조 부흥에 가깝긴 하다. 근대적 시민, 국가, 이런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씀. 구한말 衛正斥邪, 復辟 이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이미 동학운동이 있지 않았던가. 동학의 이념은 어느 정도 민중의 의식에 남아 있었을까? 어쩌면 애국계몽운동으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3.1. 운동의 기저에는 동학, 애국계몽 운동의 아이디어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물론 연구가 이미 많이 있겠지만 읽은 바가 없어서... 그리고 3.1.운동은 실제로 2년에 걸쳐서 일어났고,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前史, 後史가 있고, 윤관순 '누나', 민족대표 33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운형'의 역할, 신한청년당 등의 역할... ). 촛불시위의 모태는 어쩌면 멀게는 3.1. 운동이고 가깝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일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보아 짧은 시기에 일어난 사회운동의 규모를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상당수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600만명이 죽어가면서 변변히 저항해 보지 못했고, 나찌 치하에서 얼마나 독일 내 저항이 빈약했으면 젊은이 몇이서 삐라 뿌리다 잡혀 죽은 '백장미단' 사건이나 Stauffenberg이 주동한 히틀러 암살 사건을 두고 두고 울궈 먹을까 (영화로 만들어서 돈도 벌고 말이야. cf. 'valkirie'). 그 유명하다는 '68운동'은 어떤가. 도대체가 한국의 80년대 학생운동과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냔 말이다. 그런데 왜 68 운동에 대한 반향이 그렇게 클까? 68운동은 신화가 되면서 비로소 그 영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저항의 역사로 치자면 도올 선생도 언급한 바 있는 아일랜드 역사가 눈에 띈다. 영국을 상대로 약 800년간을 독립을 위해 싸운 그 '역사'... ).
한 때는 '관제' 한국사. 즉, 무궁한 자부심을 느껴 마땅하다는 투의 민족주의적 혹은 국수주의적 한국사 인식에 대한 반발로 큰 의미가 부여되던 한국사 사건을 일단 평가절하하고 보려고 한 적도 있었데, 조금 더 지식을 얻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한번 더 '턴'을 하는 것 같다. 물론 국수주의적 쪽은 아니고...
역사적 사건이 지지는 의미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역사는 원래 그런 것이다. 불고불변의 역사적 사실, 진실이란 건 본원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줘도 좋을 것 같다. 매우 시급한 일이다. 이는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수사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cf. 독도에 대한 반응). 한 편으로 엄밀한 고증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세계사의 맥락에서 한국사를 볼 수 있는 그런 시각도 갖춰야 할 것이다. 도올 선생. 그런 점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예를 들어, 한국 독립운동사를 세계사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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