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4일 수요일

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

함소영의 '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이란 글이 오늘자 조선일보 홈피에 연결되어 있어서 찾아 봤다. 그 양반이 기자인지 알 길은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이라 일부 옮겨 둔다. 우선 사진 두장. 바로 밑에 있는 사진은 데뷔 전, 이후는 데뷔 후 사진. 두 사진 모두 앳된 모습이긴 한대, 바로 아래 사진이 막 밴드 결성해서 어설프게 터프해 보이려는 애송이들 같다면, 그 아래는 좀 더 '관리'된 티가 역력하게 난다.

"60년대 초 미국은 아직 전쟁 뒤 보수의 물결이 잦아들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선정적인 몸짓과 성적 매력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당시 인종 차별의 장벽에 시달리던 흑인 음악가들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는 있었지만 전 세대를 포괄하는 인기를 얻기는 어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음악을 '외설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미국의 사춘기 청소년들(베이비붐 세대)는 이러한 부모 세대의 억압적, 보수적인 기질에 반항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그룹이 비틀즈입니다. 당시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녔으나 외관상 (기성세대들의 눈에) 불량스러운 다른 밴드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비틀즈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이라는 뛰어난 사업가적 기질을 지닌 매니저를 만나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엡스타인은 가죽 자켓을 입고 거칠게 행동하던 '비트족(beat) 비틀즈'를 보수적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게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예의바른 청년의 이미지로 '조작'하기 시작합니다.이리하여 비틀즈는 가죽 자켓을 벗고 '비틀수트'라고 불리는 깔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또 뒤로 빗어 넘긴 불량스러운 헤어스타일 대신 귀엽고 단정한 더벅머리로 변신하지요.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비틀즈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가진 '포장 기술'의 적절한 융화는 미국 대중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
'가죽 자켓' 시절의 도발적이고 솔직한 가사에 ,소녀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귀여운 미소년의 외양을 갖춘 비틀즈. 비틀즈가 1964년 싱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가지고 미국으로 상륙했을 때, 십대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도 비틀즈의 단정한 이미지에 반하게 됩니다
."

데뷔시절 비틀즈의 천진난만한 미소년 이미지는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었던 것. 요새 수만 형님, 진영이 하는 짓거리가 사실 나름 뼈대를 찾을 수 있는 그런 활동이라는 말씀 (물론 비틀즈가 처음이라는 얘긴아니고...). 허나 그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아저씨들 소녀 취향 만족시켜 주는 아이들과 당대 '언니들' 만족시켜 주던 비틀즈가 다른 점이 있을텐데 뭐겠는가? '음악성' 아니겠는가? 비틀즈만해도 아직 가수의 시대가 낸 자식들이었던 것. 아니 전문 직업으로서 '(대중)가수', '밴드'가 막 만들어지던 시기 아니었을까... 그들은 팝음악 최초의 컨셉 앨범이라고 불리는, 이름도 괴상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를 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시대 아닌가 (이 말의 원전을 따지지는 말자). 가수라면 음악성이 우선 뛰어냐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도 버릴 수 있는... 수만, 진영, 그네들은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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