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0일 토요일

이스라엘의 왜곡된 건국신화

경향신문에 실린 서울대 역사학과 최갑수 교수의 칼럼 중 일부이다. 최근 우리 2MB 씨도 '열씨미' 역사 '바로세우기'에 몰입하시는 것처럼, 역사와 정치는 참 동고동락하는 사이인 모양이다. 특히, 갈등 관계에 있는 인접 국가들끼리 바로 역사 이해의 갈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는 조금 더 복잡한데, 유대교도나 기독교도에게 그저 단순한, 사료나 해석에 따라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볼 수 있는 '역사적 사실' 이상인, 신앙의 근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종교, 정치, 또 학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難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이 학교 교육을 통해 가르치는 ‘유대민족사’를 보면,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토라’(율법)를 받은 이후 줄곧 존재해 온 유대 민족의 유일한 직계 후예다. 유대인들은 ‘출애급’ 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해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왕국을 세우나, 이후 왕국의 분할과 함께 결국 두 차례(기원전 6세기와 기원후 70년)의 유배생활을 경험한다. 2000년에 걸친 방랑(‘이산’)으로 유대인들은 예멘, 모로코, 스페인,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지로 퍼져갔는데, 하지만 언제나 혈연적 관계를 유지해 민족성을 결코 상실하지 않았다.


이 역사관이 신화에 불과한 것임을 입증하는 책들이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신 역사가들’의 논지를 요약한다. 먼저 성경을 역사서로 볼 수 있느냐이다. 종교적 진리를 민족교육의 토대로 만든 것이 19세기 후반기의 시온주의 역사가들인데, 최근 ‘신 고고학’ 등의 연구는 출애급과 관련한 ‘모세 오경’의 사실적 근거를 의심하며, 솔로몬의 왕국도 ‘영화’를 운위하기에는 소왕국에 불과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바빌론 유수’에 대해서는 소수의 지배층만이 유배당했고, 기원후 70년의 ‘제2차 성전 파괴’로 유다왕국의 주민들이 유랑생활을 겪기는커녕 그대로 살다가 일부는 4세기에 기독교로, 대부분은 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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