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5일 월요일

다윈, 진화론 그리고 한국

'올해는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고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국내 다윈 전문가인 최재천(54)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4일 다윈의 탄생 200주년과 관련해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얘기를 했는데, 내겐 다음 구절이 인상에 남는다.

"다윈은 서양사상사에서 이단아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사상은 2천년 전통의 플라톤 철학을 뒤엎은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혼불멸의 진리가 존재하고, 사물이나 동물은 그 진리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 다윈은 사물 하나하나가 허상이 아니라 중요하고 아름다운 실체라고 주장한다. 그냥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섞이고, 자손을 만들어가면서 변화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불완전한 존재다. 다윈은 불완전하지만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일종의 상대성을 말한 것이다. 이는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사실 다윈은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그의 저서를 통해 말한 적이 없다. 이는 영국의 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한 말이 다윈의 말로 와전된 것이다. 다윈이 썼다면 아마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The Survival of the Fitter)으로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윈은 모든게 최고의 경지에 올라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일정한 상대보다 잘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우린 복잡해 보이는 걸 한 '큐'에 정리해 주는 이런 전문가들을 좋아한다. 플라톤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사상사를 다윈이 마침내 깼단다. 이 얼마나 명쾌한 구분인가.

그 밖에 이런 얘기도 했다.

"일본 도쿄대의 사쿠라 오사무 교수가 '생물철학'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진화론 수용을 분석한 적이 있다. 사쿠라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대단히 잘 수용한 편이고 중국도 때늦은 서구 문물 도입에 비해 비교적 빨리 진화론을 습득했다. 동아시아 3국 중 유독 한국만 다윈에 대한 저항이 강했다. 사쿠라 교수는 그 이유를 "기독교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쿠라 교수의 의견에 덧붙이자면 한국 자연과학 발달사를 살펴봤을 때 물리학과 화학에 비해 생물학 수입이 매우 늦은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생물학은 압축성장을 해야했고, 그 과정에서 생물학 중 분자생물학이 조명을 받은 반면 상대적으로 진화생물학은 발달이 늦었던 것이다."

그런가? 진화생물학 혹은 생물학 이론으로서 진화로 수용은 늦었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기독교가 어느 정도 '기여'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화론의 결과인 '사회진화론'의 영향은 20세기 초 한국에서 대단했다고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인을 포함한 소위 선각자들이 대거 그런 입장을 취했었고. 사회생물학, 우생학과 생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진화생물학은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인간사의 질서를 중시하는 조선시대 사고방식 속에서 자리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가 인용한 일본의 그 교수가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 지 알아봐야겠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주장임에는 분명하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유명한 진화론자 스테판 굴드가 그의 책에서 이렇게 정의했다(고 한다)

"굴드에 따르면 다윈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은 단순한 이론이다. 생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고 이 중 환경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장 강하게 변화한 자손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며 이 변이가 각 개체군에 축적된다는 것이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된 개체 혹은 適者는 혼자만 단독으로 살아남으려는 게 아니라 (이건 많은 인간들이 보여주는 모습이긴 하다), 후손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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