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8일 수요일

" (..._ 경쟁구조는 반드시 경쟁의 격화와 가치의 획일화를 초래하게 되어있다. (...) 근본적으로 반문화적인 것이다. 아이유가 효린을 눌렀나, 아니면 효린이 아이유를 눌렀나 하는 식으로 둘 사이에 등수를 매기는 사고방식은 앞에서 말했듯이 폭력에 불과하다.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개성을 하나의 가치에 구겨 넣어 재단하는 폭력. 서열화 경쟁은 이렇게 시청자들이 폭력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이미 현실화되었다.
한국의 정치권, 교육전문가들이 이런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10년 이상 다양성 교육을 하겠다며 온갖 개혁이 진행됐지만 우리 교육현실이 여전히 '개판 5분전'이다. 지식사회를 맞이해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율적 교육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다양성과 경쟁이 서로 상극이란 것을 간과했다. 입시경쟁 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심지어 고교입시 등 경쟁구조를 더 강화해가면서 다양성 개혁을 했기 때문에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경쟁구조의 파괴력은 그렇게 무섭다. (...
)" (하재근)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경쟁구조'가 가져올 수 있는 유익을 강조하는 견해에도 동의하게 될 것이다. 강조점의 문제다. 워낙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한국 현실에서 대중 문화 영역에서까지 경쟁구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지긋지긋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음악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 시장중심적 경쟁구도 - 새로운 형태의 경쟁구도 - 관중심적 경쟁구도 - 를 도입해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다양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경쟁의 맥락, 경쟁의 다양성에 주목하지 않고 '경쟁은 무조건 나쁘다'는 결론만 되풀이 한다면 좀 답답한 일이다.
자본주의 기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길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원천적으로 불평등 (양극화!) 심화 등 부정적 결과를 많이 낼 수밖에 없는 체계인 건 분명하지만, 그걸 단숨에 철폐할 수 있겠는가? 사회주의 국가가 보여주었던 계획적 경제체계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없을테고 복지국가 정도가 대안이 될텐데... 그건 어짜피 자본주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거시 영역에서 자본주의 기제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자본주의', '자본'을 허수아비처럼 때려서 좀 얻어내는 게 있거나, 정신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런 전략은 좀 진부하다 (김기덕의 '반자본주의적' 영화제작 방식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 경향신문 논평 "[문화수첩] 열정만 먹고 살 수 없는 영화계 막내들도 있다" 참고).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자본주의는 그런 식으로 통칭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자본축적, 불평등 심화 그런 차원이 아닌 아주 기초적 차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화폐경제, 시장경제체계인데 그런 차원을 무시하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감독도 어쨌든 수익이 나면 나눠주겠다는 얘기인데 그것 역시 자본주의적 기제에 속하는 것이다. 철저한 반자본주의적 방식이라면 수익을 필요한 사람이 나눠갖도록 해야겠지. 감독이나 주연배우라고 더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경쟁, 자본주의 = 경쟁자본주의. 여하튼 이기는 것 ,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 그런 경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는 일은 더 많아져야 하겠지만, 세상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으니 그걸 표현하고 비판하는 방식도 좀 더 복잡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단순화는 정치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긴 하지만... 어휴...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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