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복잡하다... 중심, 머리가 없이 그저 '고만고만한' 다양한 체계들, 조직들이 서로 얽혀 있고 각자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려고 한다... 그 복잡함 속에서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 다양한 메카니즘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겨우 유지되는 질서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고... 어쨌든 유지되는 것 자체가 개연성이 낮은, 그러니까 신기한 일이고...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사회가 진화되면서 인간이 얻은 건 인권, 개인의 권리, '법 앞의' 평등.... 아니,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진화의 요건에 가깝다. 기능체계가 수평적으로 분화되기 위해서 인간은 일단 사회 바깥으로 나가 줘야 하고 특정한 체계의 상황, 세팅에 따라 특정한 역할, 인격으로 호명되는데 체계가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 참여 가능성은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니까... 물론 인권 같은 평등 뿐 아니라 각종 근본주의, 집단주의적 정체성, 성별 차이, 경제적 능력에 따른 차이 (계급) 등 각종 차이 역시 근대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동등한 주권을 갖는 주권 국가 중심 근대 정치 체계의 형성은 '내셔널리즘'의 형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데 사실 '내셜널리즘'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인권, 개인주의와 친할래야 친할 수 없는 이념이니...
다시 말해 현대사회는 사회구조적으로 복잡할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더 할 나위 없이 복잡하고 산만하다. 서로 다른 정체성, 문화, 이념, 사상들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애써서 어느 한 쪽으로 통합하려고 하면 할수록 부작용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현대적 사회구조, 문화를 잘 달래가면서 써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그 때 그 때 '스마트'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파국을 면할 수 있다. 어느 한 체계, 한 문화를 강조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삼는 순간 이 위태로운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게 경제가 되었건, 국가가 되었건.... 종교 근본주의던, 국가주의던 간에...
기능적 분화 이론이 다른 이론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결정론'을 배격한다는 데 있다. 경제 결정론 (계급, 양극화 강조하는...)은 물론이고 문화 결정론도 배격한다 (언어학적 전회, 문화적 전회 이후로... ). 주체, 인간 중심주의는 물론이고 구조 결정론과도 거리를 둔다. 어떤 종류 어떤 이름이건 '결정론'은 배척의 대상이다. 구성주의! 물론 구성주의 안에도 여러 입장이 있지만 여하튼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구성주의적 조건 위에서 구체적으로 구조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급진적 구성주의와도 구분이 되고...
그렇다면 다른 입장은? 구성주의가 득세를 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구체적 사회 분석에선 여전히 실재론, 결정론이 주류다. 경제 중심 설명 (계급, 양극화,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이고 - 흥미롭게 그런 입장엔 좌우가 모두 공감한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거나 비판하거나.. - 혹은 세대 중심 설명도 큰 고민없이 쉽게 수용되는 것 같다 (아래 경제학과 학부생들 발표에 대해서 언급한 것 참고).
재미있는 건 근대적 조건, 즉 사회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는 그 조건이 오히려 결정론, 결정론적인 설명을 선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세상이 이미 복잡한대 - 사실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사실! - 거기에다 사회학자라는 사람들이, 네 맞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복잡하고 어디로 튈 지, 어느 방향으로 진화할 지 알 수 없습니다 - 라고 얘기한대서 누가 좋아하겠는가.... 결과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걸 다 알면서도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환영받는 사실! 경제학자들, 혹은 통계적, 수리적 설명을 지향하는 학문들이 환영을 받는 현실... 기능 분화 이론의 논의를 빌면 기능 분화 이론이 각광 받지 못하는 이런 현실까지 설명할 수 있다.
(기능적 분화 이론을 기초로 삼는) 체계이론 연구자의 과제는 이처럼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는 - 구름 위 비행 같은 - 논지를 땅쪽으로 끌어 내리는 일이다. 기능 분화, 다양성의 공존, 패러독스, 딜레마, 구성, 공진화... 다 좋아. 근대 그래서 어쨌다구??!! ㅠㅠ 팔장끼고서 냉소적 시선으로 내려다 보며 이렇게 묻는 이에게 - 체계이론 논지에 대해서 '냉소', '반감'도 모자라서 '적의'(敵意)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 - 좀 더 손에 잡히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메조' (meso) 차원이라고 할까... 혹은 중범위 (middle range)...
국가론, 조정 (steering, Steuerung)논의가 활발 할 때 '조정 비관주의', 세계화 논의가 활발할 때 세계사회론이 괜찮았고, 그 이후 환경문제나 위험 관련 논의 시장에서 루만식 체계이론이 꽤 짤짤하게 팔렸었다. 수년 전부터 가장 각광을 받는 주제는 아마 복지, 정체성 논의와 관련하여서 '포함/배제 (inclusion/ exclusion)'가 아닌가 싶다. 물론 조정 논의는 거버넌스와 관련해서 계속 얘기할 수 있고, 세계화도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예전만큼 흥미롭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복지, 포함/배제 논의도 사실 그 정점을 지난 것 같고... (역시 지나가고 있는 주제인듯한) 지식사회 논의에 이르면 벌써 체계이론 담론의 핵심에서 많이 벗어나게 된다. 9.11. 이후에 반짝 근본주의 등을 '통합 의미론' 으로 풀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내 생각에 좀 더 '파먹을' 수 있는 여지가 남은 주제 중 하나는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체계이론적 설명이다. 신자유주의는 전형적인 경제 결정론적, 경제 중심적 설명 방식인데 거기에 대해서 꽤 그럴듯한 대안적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논의 맥락을 한국으로 가지고 오면...
한국을 기능적으로 분화된 세계사회라는 틀 속에서 이해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체계이론이 끼어 들어서 기여(?)할 수 있는 논쟁적 주제가 어떤 게 있을까?
시사성은 떨어지지만 예나 지금이나 의미있는 주제들로는...
- 한국의 민주화, 민주주의
- 시민사회, 사회운동, NGOs...
- 한국 근대화, 근대성, 근대의 다양성, 다중 근대성 논의와 연결해서....
좀 더 시사적인 주제들로는...
신자유주의? 거버넌스? 국가론? 인권? 개인화? 포함/배제? 복지국가? 국가 역할? 정의, 공정성, 신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