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만의 체계이론에서 중심부, 주변부 같은 구분이 쓰이기는 한다. 대표적으로 국가차원의 정치체계가 다시 중심부와 주변부로 구분된다는 그런 이야기. 중심부는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조직과 커뮤니케이션이고 주변부는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주제를 선별하고, 정치화시키는 그런 조직과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왈러스틴류의 세계사회론이 주장하는 그런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 혹은 근대의 중심부 혹은 근대의 주변부 같은 그런 지역적 구분은 아니다. 그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루만은 중심과 주변부가 특정 지역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체계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음을 지적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의 경우 세계경제에서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봐도 좋지만, 정치에 이르면 훨씬 덜 한 편이고, 스포츠체계 같은 것도 종목에 따라 중심부, 주변부가 다르니까. 미국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니까... 경제중심론적 관점에서 미국, 중국을 G2로 부르면서, 세계정치도 경제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그런 접근은 좀 지겹고 식상하다. 현시기를 위기로 부르는 그런 접근도... 최근 비판사회학대회에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정태인 원장이 주장했다는 그런 위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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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국제 통화체제, 패권교체, 에너지·생태 위기가 중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각 위기의 고유한 해결책을 찾되, 2012년은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속가능한 사회국가’가 지향해야 할 비전으로 제시되었고, 시장경제-공공경제-사회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시민 주도의 생태적 복지국가’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화된 사회는 위기를 관리하고 분산시키는 메커니즘 역시 동시에 발전시켜왔다. 특히, 국가의 역할, 국제적 공조... 수년간 지속된 위기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에 정권교체나 어떤 특단적 조치로 위기가 쉽사리 극복될 수도 없다. "위기, 위험의 일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위기=위험인가?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
다시 중심부, 주변부로 돌아가면... 한국의 경우 이미 많은 기능 체계에서 중심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문화! 다만 문화적 차원에서 그런 구조적 변화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 이 구조와 문화는 서구중심적인가? 노우! 서구라고 모두 체계의 중심부인 것은 아니다. 한류는 어떤가? 한류에 열광하는 모습? 서구 스스로 대중예술/문화체계의 중심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한국은 주변부적 열등감에서 좀 벗어나도 좋다. 다만 문화적으로 세련될 필요는 있다. 서구가 그래도 크게 보아 중심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 다른 무엇보다 문화적 차원에서 여전히 주도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인권 같은 문화, 담론들 (문화=담론인가? 이것 역시 나중에...). 이제 문화 차원에서도 중심부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선진 담론,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Why not? 그러려면 다른 수가 없다. 우선 그 선진 문화를 수용하고 내면화해야 한다. 다만, 비판적으로... 그러다보면 '한류'처럼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문화/담론/가치가 툭하고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니... 실제로 지금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문화는 다양성과 혁신에 충분히 열려있다. 그렇지 않고 문화제국주의적이라면 그런 위치를 차지하거나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런 성향을 보이는 순간... 이미 중심적 위치를 잃게 되니까... 서구문화에서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위기의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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