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8일 목요일

다른 사무실에 있는 나보다 한참 어린 남자 직원과 점심 후 산책을 함께 했다. 자주 보진 않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도는 나누는 편인데... 요즘 그 친구 애정전선에 이상이 있음을 아는 터라 자연스럽게 그 얘길 나누게 되었다. 이런 저런 나누는 중에... 그 친구의 마음을 확인해 보려고 처음 사귈 때 여자친구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를 물어봤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지금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를 물어 봤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선뜻하지 못하였다. 결론은.... 이미 스스로 내린 것 같았다. 모든 점에서 날 만족시키는 사람은 세상에 있을 수 없지만, 좋은 점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터...

'오버'(과장)의 사회학

아침에 라디오 뉴스를 듣는 중 "...도를 넘어섰습니다"란 표현이 귀에 쏙 들어왔다. 도대체 언론의 이 과장하는 못된 버릇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언론은 어지간한 일에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도를 넘어섰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언론만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정치 담론에서 현상황을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해 부정적으로 기술하는 경우가 잦고, 과학 담론에서도 연구 대상이나 연구 결과에 대해서 극단적 언어가 자주 덧붙여진다. 일상 대화에서도 "과장"은 그야말로 일상적이다. 예를 들어 "너무 좋다"라는 표현은 "너무도"(!) 널리 씌여서 이젠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 이런 "과장의 일상화" 현상은 사회구조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기능적 분화, 개인화 같은... 중심과 정점이 없고, 원칙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확보하고,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한 가장 쉬운 방편이 "과장"일 테니까.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관심사가 넓은 편이지만 그 넓은 관심사는 편향되어 있다. 그 편향된 관심사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여간해서는 흥미를 못 느끼고, 그런 주제를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지면 대개 침묵을 택하는 편이다(mundfaul). 또...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저녁 메뉴를 무엇으로 정할 지에 대해서.. 난 정말 뭘 먹어도 상관없다구...  그런 '무심한' 태도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듯.... 스스로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긴 안목에서 볼 때...

2013년 3월 19일 화요일

미학적 아름다움까지 보여주는 거시이론... 복잡한  아니 지저분하기까지 한 현실. 이 둘은 차라리 서로 섞일 수 없는 다른 세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연결해보려는 시도는... 번번히 좌절되고 있다. 그래서 중범위 이론을 이야기하는지도... 한계는 오래 전부터 관찰되었다. 돌파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자살 소식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아프다. 사실 자살 보도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긴하다. "자살 예방"이라는 얘기를 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살을 더 자주 생각하고, 떠올리게 된다. 일어난 일들을 아애 모른 척 할 수는 없고, 심지어 언론 입장에서는 매우 요긴한 기사거리겠지만... 자살이 어떤 방식으로 보도되어야하는지 언론인들도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한국이 더 살만한 사회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러 생명이 어울려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서 "공익이라는 이름의 폭력"(윤진)은 쉽게 관찰된다. "미성숙한 정치일수록 개인의 욕망 자체를, 개인의 행복 추구를 단죄하고, 나의 욕망이 가족의 이익, 집단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라는 절대선을 가로막는다는 죄책감을 불어넣는다." 이 지적은 물론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반쪽에 대한 것이다. 다른 반쪽의 현실은... "야만적" 사익추구다. "비대해진 공익"의 이면은 "야만적인, 즉 통제되지 않은 개인의 윤리적 자율성"의 기괴한 공존이었다. 공적 이익을 그토록 강조하는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익 추구의 통로를 오히려 더 넓게 만들었다. 공공연하게... 그런 이중적 기준, 위선으로 사실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표현하자면... "순기능" 측면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이중적 질서가 설령 사회 질서 유지에 긍정적 기능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인주의이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조정하는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다. "게임의 법칙"에 대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욕망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윤진). 윤진은 "본격적인 사회화를 통해 '욕망 길들이기'가 시작되는 곳은 학교"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곳은 "가정"이다. 차츰 자기 욕심(욕망?)이 생기는 생후 4개월된 아이를 놓고 벌써 그 욕심(고집, 욕망?)을 조절하도록 가르치게 된다. 이는 무엇보다 양육자의 입장에서 좀 더 편해보려는 또 다른 욕심 때문이다.
욕심, 욕망, 고집이 이 맥락에서 떠오르는데 구분해야 할 개념들이다. "욕심"은 필요에 의해서 마지못해 갖게 되는 심리상태인 경우도 많다(양육자의 욕심). 욕망은 그보다는 훨씬 더 본능적이고, 발산되기만을 기대하는 어떤 상태다. 고집은... 개인적인 성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욕망'의 억제다. 부모, 선생 등의 양육자는 (혹은 이런 관계까 확대되면 '국가') 피양육자/국민의 욕망을 억제하려 든다. 어떤 양육자는 다른 양육자 관점에서 보면 피양육자이기도 하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모든 국민이 양육, 계몽의 대상이다(양육과 계몽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을 갖는 것 같다).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모처럼 달렸다. 성내천을 따라 한강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왕복 16km 정도... 오랜만이라서 힘에 부쳐 나중엔 한참 걷기도 했는데 결국 근육이 뭉치기까지... 일찍 자려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질 않아 거실에 나와있다. 공부를 하기는 뭣해서 클래식 라디오방송을 틀고 노트북을 켠다.  봄비가 아주 차분하게 내리고 있어서 음악이 퍽 어울린다. 다행히(?) '매취순' 남은 게 조금 있어서 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처음마셔보는데... 매실향이 좋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보고 또 본다. 아. 뉴스도 본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본다. 어떤 기사, 어떤 내용에 마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2013년 3월 16일 토요일

"윤리화"(ethicization)과 "윤리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ethics)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던것... 윤리의 제도화는 상대적으로 분명한 개념이다. 윤리강령, 윤리위원회 등 구체적인 제도의 도입, 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윤리화는 폭이 더 넓은 개념이다. 공적 담론에서 윤리적 프레미잉이 더 중시되는 경향과, 윤리의 제도화까지 포함한다. 윤리의 제도화는 매우 공식적인 활동에 대한 것이다. 재미가 덜하다. 윤리화, 혹은 "윤리 붐 boom" 같은 것이라야 사회학적으로 할 얘기가 더 많다.
공적 담론의 윤리화는 견해가 서로 다름(dissent)에 대한 공적 인정을 전제로 한다. 합의된 가치를 일방적인 관철시키려는 계몽의 의지의 발현인 도덕, 도덕화와 구별할 수 있다. 도덕과 윤리를 이런 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현실 분석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이 구분은 A. Bogner에게서 들은 것이지만 , 최병구의 "1920년대 초반 '사회주의'의 등장과 '행복' 담론의 변화"에서도 비슷한 구절을 발견했다. 아주 반갑게도...

"그런데 이러한 도덕주의는 '윤리'와 엄격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 외부로부터 부과되는 규율과 법칙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기 자신을 성찰대상으로 올리는 '윤리'와 다르게 도덕주의는 외적인 규율을 수용하고 그 안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 뿐이다." (p.47)
IMF 구제금융사태가 한국에 미친 영향이 그토록 클까?

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중학생인듯한 여학생들의 치마가 너무 짧다. 예뻐보일 수있는 선을 넘으니 민망함보다 혐오감이 앞선다. 성숙함의 형식 밖으로 삐져나오는, 감출 수 없는 미성숙함... 부조화때문이다. 에휴.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나보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조직의 힘, 그리고 세팅의 힘은 놀랍다. 조직의 임원을 퇴근버스나 식당에서 만났을 때와 임원실에서 만났을 때의 느낌은 극에서 극이다. 임원실이라는 세팅이 주는 중압감이라니...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왜 제도화된 연구윤리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대부분 여전히 규제가 약하다던지, 이중적이라던지... 그런 식의 접근이 지배적이다. 그보다는 도대체 규제가 왜 필요한가? 반드시 필요한가? 어떤 기능을 하기에 제도화된 윤리가 새롭게 등장하는가? 같은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왜 스스로를 제한하는가? 정치는 왜 스스로를 제한하는가? 서구의 경우 상호관찰을 통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
동아시아, 아니 적어도 한국의 특징은 있다. 중심부의 경우, 제도화된 윤리는 자율성을 지닌 체계들 간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라면("기능" 지향), 한국 같은 반주변부의 경우에 이는 경제적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최소한 갖추고 있어야 하는 메커니즘의 의미가 크다("성과" 지향).
즉, 일부 제도화된 윤리는 과학체계가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 연구의 지속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연구활동의 일부를 스스로 제한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기능" 지향). 한국의 과학 정치는그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최근의 변화는 "성과"지향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측면이 크다(이 때 수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가, 국가의 결단!).
오늘은 새벽기도회를 다녀오지 않았고, 스토트님의 오늘치 묵상은 겨우 읽었다. 하지만 커피는 기쁘게 챙겨 마신다. 신맛이 약간 섞여서 아쉬움은 있지만... 마음 속 불편함, 그리고 문제라면 문제들이 생각난다. 한숨만 나오는...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옆에 앉게되는 "아는 분들"에 대해서 - 크게 아쉬울 것이 없지만  - 내가 먼저 얘기를, 그것도 적극적으로 꺼냈어야 했다. 그건 이해관계, 상하관계를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다. 아무리 mundfaul이라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한 편이긴하다. 그렇게 말을 아껴서... 다른 쪽에 에너지를 집중하려는 것이냐?
며칠째 진중권님이 분당 오가는 길의 동반자다. 어제는 "미디어아트"에 대해서 오늘은 "교수대 위의 까치"에 대해서... 인상은 참... 좋지 않은 편이다.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 얄미운... 특히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 질문자의 나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데도 -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식으로 묵살하는 태도... 물론 바람직하진 않다. 하지만 겸손하고, 점잖고, 세심한 지식인들이 너무 많은 터라, 저런 할말을 다하는 "싸가지 없는" 지식인의 존재는 심지어 고맙기까지 한 것이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현대인은 Individuum이 아니라 Dividuum이다!

- Der Soziologe Ulrich Beck spricht ironisch vom "Dividuum", wenn er den in viele Rollen und unverbundene Teilpersönlichkeiten zerfallenen Menschen charakterisiert.
- Der Soziologie und Systemtheoretiker Peter Fuchs bezeichnet damit eine Differenzierung der sozialen Adresse (ein theoretischer Terminus, dessen theoretische Rolle im Rahmen systemtheoretischer Kommunikationstheorie einfängt, was sonst meist unter den Begriff "Person" gebucht wird)

Peter Fuchs는 (특히, 상호작용 차원에서의) 유연성, 집단지향성 같은 일본의 정서가 주체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서구의 정서보다 오히려 체계이론이 주장하는 근대의 Dividualismus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일본(혹은 아시아인)이 더 근대적?
유연성이 있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유연성이 대개 상호작용 차원에서는 잘 작동하는데, 오히려 조직 지향성이 체계적 차원으로 확대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다양한 체계들에서 요구되는 역할, 인격을 갖추는 유연성으로 확장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유연성은 오히려 기능체계부패로 이어진다. 그러니 푹스의 견해는 결함이 많은 것.


cf. 
Peter Fuchs (1995). Die Umschrift
Ulrich Heinze (2013). System Theory as Global Sociology - Japanese Ramifications of Parsonian and Luhmannian Thought.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사안에 따라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어느 한 쪽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주위 사람들도 가끔씩 지적을 하기도 하고... 이는... 최대한 많은 걸 고려하려 하기 때문이다. 성급하게 설익은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독단적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의 여지,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논문이 오래 걸리는 데에 그런 성향 탓이 크다. 어떤 한 측면을 때로는 과장하면서 강조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어떤 주제에 집중할 것인지 여전히 고민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장점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복잡한 것을 복잡한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 내가 루만의 체계이론에 느끼는 매력이 바로 그런 점이다. 그런 접근의 단점은... 확실한 진술을 끌어내기 힘들다는 것. (...)
모처럼 새벽기도회를 다녀오다. 로아가 새벽에 깨어나서 울어준 덕분에... 게다가 일찍 나와서 수영까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엔 죤 스토트, 본회퍼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덤으로 페친이 소개해서 구입한 비스와아 쉼보르스카의 시도 몇 편 읽었다. 음. 번역시는... 좀... 거시기 하다. 언어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힘든 것. 요즘 아침 저녁 오가는 길에 팟캐스트를 듣는 데 재미를 붙였다. 어제 오늘은 진중권 선생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매우 유익하다. 오늘은 왠지 모든 게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다만 엇저녁부터 느껴지는 위염 초기 증세가 좀 걸리고, 아침부터 쿠크다스 두 개를 먹은 것도 걸린다. 지난 수 개월 동안 불어난 약 2kg은 완전히 자리를 제대로 잡은 듯 여간해서 빠지지 않는다. 더 늘지도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여하튼 오늘은 그렇다.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훑어보다. 한국의 정치 문제을 역사적으로,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문제를 전체적으로 돌아보기에는 터무니없지 부족하다. 왜? 한국 사회는 "정치" 문제, 혹은 정치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 뿐 아니라 이러 저리한, 그리고 서로 연계되어 있는  매우 다양한 성격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활성화되고, 개인주의, 공화주의가 제대로 자리잡는대고 더 좋은 사회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정치학자의 한계인가?
(1) 지난 주 금요일 예기치 않은 곳에서 세 시간 강의를 해야 했었다. "사회적 인정"(^^)을 받는 일이어서 큰 고민하지 않고 제안을 덥썩 받아들였다. "사회문제"가 주제지만 그냥 사회학 언저리에서 아무 얘기나 해도 좋다고 했고, 대상은 경찰서에 근무하는 행정관들... 한 마디로 "일반인"! 
아무 얘기나 할 수 없어서 나름 사회문제, 범죄를 중심으로 준비를 해 봤다. 결국 전날은 밤을 꼬박 새야했고... 결과적으로 재미도 있었고 나름 보람도 있었다. 한국사회 현실을 설명하고 내 지론을 얘기할 때는 심지어 "짜릿함"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한계도 드러났다. 특히 "일반인"들과 교감하는 법에 대해서... 덜 진지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달하는 것은 참 재미없는 일이다. 주제가 진지할 수도 가벼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진지한 얘기를 적절한 가벼움을 섞어서 담아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대표적으로 김용옥, 김정운.. 

(2) 기도응답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옆 선배가 기도응답되지 않아서 교회를 옮겨보겠다고 농담조로 얘기해서, 효험있으면 나도 옮기겠다고 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여전도회에서 손녀 얘기를 하고 헌금을 했더니 회원들이 아주 "열심히" 기도해주셨다고 했더니... 도대체 기도응답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끊이지 않는 재앙과 사고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3월 7일 목요일

고통 총합 불변의 법칙!! 내가 지금 큰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타인이 그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딘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한다.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까지...

2013년 3월 5일 화요일

모처럼 회식한 티내며 지하철에 앉아있음. Desperado를 들으며...
1월 초에 기고했던 글에 대한 원고료가 어제서야 입금되었다. 편집장에게 두번째로 보낸 재촉성 메일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원고료는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내 전문적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고... 내가 요즘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렇게 해서 약 13만 5천원을 받았다. 역시나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아니 액수가 상당히 적음에도 기분은 좋다. 언제든 돈을 버는 일은 기분 좋은데다 더군다나 내가 전공을 제대로 살려서 한 일에 대한 보상이기에... 억지로 쓴 글이 아니라...
오는 금요일에는 아산까지 내려가서 강의를, 그것도 세 시간이나 해야 한다. 물론 보상을 받는 일이고, 주제도 사회학 언저리다. 공공기관이라 강의료는 매우 짠 것 같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돈보다도 "사회적 인정"이니까...
오늘 서로의 박사 논문에 대해서 옆자리 '선배'와 '스터디'를 했다. 내 논문 틀의 부실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내가 준 도움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난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갈 길이... 매우 멀다. 너무 서술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는데... 체계이론 중심으로 전체 틀을 재조정해야 한다. 과감하게, 도발적으로...

2013년 3월 4일 월요일

연휴가 끝나니 3월도 벌써 4일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개학을 하는 모양이고... 아내는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는 날이고... 애매한 신분으로 적을 두고 있는 기관에서는 인사발령이 있어서 오늘부터 사무실 상주인구가 세 명이나 늘어난다. 기존 5명 --> 8명. 이런 변화는 내게 별로 반갑지 않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동인으로 삼을 일이다. 화이팅!!

2013년 3월 1일 금요일

장사익의 노래를 듣는다. 그는 음을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 같다. 야구에서도 비슷한 얘길 듣는다. 김성근 감독이 자주 얘기하는 "일구일무(一球二無)" 다음 공은 없으니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노래와 야구는 좀 다르긴 하다. 노래는 짧은 시간 집중하면 되니까 음 하나 하나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 하지만 야구는? 야구하면서 정말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을 힘을 다하면 그런 선수, 그런 팀은 단 한 시즌도 제대로 버틸 수 없다. 야구 같은 경기에서는 강약 조절을 잘해야 한다. 일구이무는... 근본 마음가짐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정말... 목숨을 걸고 뭔가를 해야 하나?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나? 그래야 성공한 인생인가? 그래야 값어치 있는 삶을 산건가? 목적의식... 어쩌면 그것 역시 지극히 근대적인 발상아닌가? 그것에 도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