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건진 생각...
삶의 시작과 끝을 예측하거나 가늠하기 힘들 때... 그래서 개입하기도 힘들고 그저 받아들여야 했을 때... 인간의 계산이 닿지 않는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운명... 이는 동시에 보호받는 영역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언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지 그리고 생명을 언제 마감할지 알 수 있게되고, 그래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수록 그 신비로움은 깨지기 시작한다. 이제 출생과 죽음은 인간 아니 사회가 보호해야 할 영역이 되었다. 생사여탈권은 이미 많은 부분 개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유달리 낙태나 복제, 배아연구 그리고 다른 쪽에선 안락사나 같은 극단적인 주제에 그렇게 큰 관심이 쏠리는 현상은 바로 그런 부분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그 극단적 경계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이건 뭐 난리도 아니다. 생명의 탄생과정에 대한 개입, 그리고 죽음에 대한 개입.... 엄청나다.
이것이라도 보호하자는 사회 안전성 유지의 마지막 몸짓인 것이다.
안락사나 낙태, 배아연구 같은 주제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런 극단적 주제에만 관심을 가질 때 그 극단적 경계 안쪽의 현상들을 용인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다만, 자살은 좀 구별되는 현상인 것 같다.
'수정'부터 '죽음'까지 생명의 전과정을 국가와 사회가 관리하는 시대에 자살은 그런 관리를 거부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생체권력은 어떻게든 강제적으로 때로는 규율, 내면화를 통해서 어떻게든 살도록 (bio) 살아가도록 살아내도록 애를 쓰는데, 그 때문에 그런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의미이기도 한 자살은 더 특별한 예외적인 위협적인 위기의식을 만들어내는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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