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일 토요일

"The social sciences in general have been unable to deliver on their promise to explain social phenomena in terms of law-like generalizations and, in consequence, to justify technicist claims to expertize in all things 'social'"

(Smart, Barry (1991), Sociology, Ethics and the Present, in: Thesis Eleven 30: 133 – 147. p.140)


사회학 위기의 원인이고, 경제학자들이 그나마 전문가 대접을 받는 이유다 (law-like generalizations). 복잡한 세상. 전문가들에게서라도 뭔가 분명한 대답을 듣기 원하는 것 아닌가? 설령 크게 틀릴 지라도, '이것이 옳다' '이것이 진리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은 것 아닌가?어쩌면 그런 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복잡한 것을 복잡한 그대로 드러내는 학문 혹은 종교에 대한 요구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도 같다. 좀 더 성찰적인 사람들에게...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길 듣고 싶어하는... 대답, 정담, 해결책이 아닌 '질문'을 듣길 원하는 욕망... 포스트모던 과학/학문과 영성 추구하는 종교적 경향은 그런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과학/학문/종교는 이렇다! 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하기 힘들 정도로, 이미 서로 상반, 상충, 모순되는 경향의 공존! 그게 바로 현대성이다.

같은 면 몇 줄 아래에...

"As Macintyre observes, amongst other things, from the potential volatility and reality-generating capacity of (human) agency. From the fact that 'the unpredictability of certain of his own future actions by each agent individually generates another element of unpredictability as such in the social world'"

정확성, 엄밀성, 법칙은 곧 예측가능성의 다른 표현이다. 사회학의 예측가능성을 뚝 떨어뜨리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현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든스 얘기였던가. 사회학의 어려움은 바로 인간이 말을 하는 데 있다는... 얼마나 감사한가 (사회학도로서)! 동물들의 얘길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