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6일 수요일

도킨스가 독일에서도 이렇게 인기일 줄...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 는 케냐 나이로비태생의 영국인 동물학자이다. 그는 현재 옥스포드 대학교의 교수이며, 생존하는 가장 저명한 생물학자중의 한 명이다." (한글 위키피디아에서)

지난 1월 30일 빌레펠트 대학 SMD (기독학생회) 주최 강연회가 있었다. 강사는 마부르크에 있는 "신앙과 학문 연구소" (Institut fuer Glaube und Wissenschaft) 위르겐 스피스 박사 (Juergen Spiess)였고, 강연 제목은 "과학이 신을 장례지냈는가? 도킨스의 신반대 논증". 이런 강연을 들으러 몇 명이나 올까 생각하며 느즈막히 H1 에 도착. 들어설 때 훅 느껴지는 열기가 예사롭지 않더니 ... 왠걸 ... 그 큰 강당이 만원인 것이다. (H1 는 Audi Max 를 제외하고 가장 큰 강당이다.). 심지어 서 있는 사람, 통로에 앉아 있는 사람들까지... 경악... 어떻게 이런 일이! 신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라면 일부 먹물 기독교인들이나 관심을 보일 법한 주제 아닌가? 계몽적, 합리적, 이성적 사고가 지구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내면화된 독일에서, 기독학생회가 주최한 강연에 강사는 신앙과 학문 연구소 소장이라니, 이 얼마나 "더 이상 uncool 하기도 힘든" 그런 시츄에이션 아닌가? 허나 이후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 날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킨스 때문에 왔던 것 같다. 도킨스에 대한 인기가 독일에서 그 정도인줄 미처 몰랐었는데, 2006년 저작 "The God Delusion" (독어제목: Der Gotteswahn/ 우리말 제목: 만들어진 신)이 독일에서도 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꽤 많이 읽히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킨스에 대한 그 '지구적' (약각 오버하자면) 열광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날 스피스는 도킨스 주장을 네 가지로 테제로 요약하고, 각 테제에 대한 나름의 반론을 다른 자연과학자들의 견해를 기초로 해서 제시하였다 (스피스 박사의 전공은 고대사).
도킨스의 기본 입장은 "나는 무신론자이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스피스 박사가 정리한 도킨스 책의 네 가지 테제는 (사실은 도킨스가 미국 어느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스스로 정리한 방식에서 빌린 것)
1. 과학으로 종교는 증명될 수 없다. 종교는 믿음일 뿐 (과학은 증명될 수 있는 지식)
2. 세상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의 결과이다. (도킨스 스스로 가장 중요한 테제라고 강조)
3. 종교가 없다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종교는 전쟁, 갈등의 원인)
4. 복음서 기사는 허구다.

강연은 내게 그리 신선한 지식을 전달해 주지는 못했다. 사실 도킨스의 주장이나 스피스의 반론이나 모두 오래 묵은 주장의 리바이벌에 가까운 것이다. 내게는 오히려 그 날 도킨스에 대한 독일인들의 그 관심을 확인했던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었다. 도킨스의 인기, 성공의 비밀은? 도킨스의 네임 밸류 때문? 자연과학으로 신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커진 걸까? 그렇게 합리적인 척하는 독일인들에게 오히려 자연과학에 기초한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드물었고, 모처럼 도킨스가 가려운 곳을 시원시원하게 긁어주었던 것일까? 독일에선 기독교가 국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니, 아무리 합리적, 이성적이고 싶어도 차마 신을 장례까지 지낼 수는 없어서 인내하고 있었던 것일까?

버트런드 러셀의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가 (1927에 행한 강연, 1957년 책으로 나온 후 유명해짐) 출간된 후 반응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저명한 학자가 용기있게 (?) 무신론을 주장할 때, 그것에 편승해 자신의 평소 신념을 부담없이 드러내는 것?! 러셀과 도킨스가 다른 점이 있다면, 도킨스는 그의 비판 대상을 시의적절하게(!)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일신을 믿는 다른 종교로 - 예를 들어 이슬람 - 확장시켰다는 사실.

p.s.) 조금 더 찾아보니 그 동안 독일에서 꽤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 그날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던 것. (교수신문 2007.10.8. 참조.)

"'슈피겔'은 지난 5월 '모든 게 신 탓이다!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십자군 전쟁' 이란 제목으로 각국의 무신론적 종교 비판을 점검하는 13페이지 가량의 글을 실은 특집호를 발간했다."

"종교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창조론과 진화론 간의 해묵은 싸움이 아니라 종교의 외피로 은폐된 정치 투쟁이자 문화 논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종교에 대한 문제제기는 자본이 전지구화된 현 세계 질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위기에 대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