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연: Mathieu Amalric; Emmanuelle Seigner
"‘잠수종’은 철교의 기초 공사 따위에서,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일할 수 있도록 만든 큰 종 모양의 잠수복을 말한다."
줄거리: "프랑스 여성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보비(마티유 아말릭)는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남이자 방탕한 바람둥이다. 하지만 어느 날 뇌졸중을 일으키며 왼쪽 눈 하나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신세가 된다. “죽지는 않았지만,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됨으로써,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 이름 하여 ‘락트-인-신드롬’(locked-in-syndrome)이라는 상태가 지속된다. 장 도미니끄 보비는 이것을, 답답한 ‘잠수종’에 덕지덕지 갇혀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헌신적인 언어치료사의 도움으로 15개월 동안 무려 20만 번에 달하는 왼쪽 눈의 깜박거림으로 알파벳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수백 쪽에 이르는 회고록 <잠수종과 나비>를 완성한다. '잠수복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 길에 나선다. 시간 속으로, 혹은 공간을 넘나들며 날아다닐 수도 있다. 불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다스 왕의 황금 궁전을 거닐 수도 있다.'"
크게 더 덧붙일 내용이 없을 정도로 간결하다. 처음엔 '잠수종'이라는 생소한 단어 탓인지 형이상학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잘못 짚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오래지 않아 우리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잠수종과 나비라는 그 선명한 대비가 주는 주제와 메세지를 알게 된다. 그 순간 "설마 영화 끝까지 저걸 밀고 갈까" 생각했는데,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이 영화도 착한 영화였던 것이다, 내가 과히 즐기지 않는...어떤 영화 평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잠수종과 나비>는 기존의 고난 극복 스토리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주인공을 통해 생명력을 예찬한다." 돌발퀴즈: 이 구절을 읽고서 떠오르는 유사한 영화는? 네, 정답은: Sea Inside (2004, Alejandro Amenábar). 씨 인사이드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하거나 입으로 펜을 물어 글을 쓸 수는 있었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는 1cm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28년을 살아야 했던 라몽. 잠수종과 나비의 보비만큼, 어쩌면 그 이상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자신이 겪는 고통은 누가 보래도 본인에게는 가장 극심한 것이기에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비교해 보는 일이 부질없는 짓이다. 라몽의 경우 의사소통하고 자신의 생각은 적어도 시원하게 전달할 수 있긴 했지만, 그 상태로 보낸 28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크게 느껴진다. 한 눈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밖에 없었던 보비가 느꼈을 절망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어쨌든 둘은 모두 모던한 신파영화의 주인공답게 그런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두 주인공과 두 영화를 그 밖에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내 분류 기준을 유지자면 Sea Inside가 덜 착한 영화다. Sea Inside의 라몽은 어떻게든 꿋꿋하게 살지 않고 결국 안락사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분명 큰 슬픔으로 남았을 것이다. 반면에 보비는 죽고 싶다고 치료사에게 한 번 이야기했다가 '야단'을 맞은 후 다시는 그런 내색을 비치지 않았고 온 힘을 다해 책을 완성했다. (라몽도 책을 내긴 했다. 비슷한 점이 많네. 둘 다 실화라는 점도 그렇고.). 보비의 독백 중 이런 구절이 있다. "I decided to stop pitying myself. Other than my eye, two things aren't paralyzed, my imagination and my memory." 확실히 이 영화는 착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인간시대'류... 생각할 거리는 씨인사이드가 훨씬 많이 던져준다. 상식에 도전하는 것이다. 휴먼 드라마를 만들려면 차라리 '인간시대' 식 다큐멘타리가 훨씬 낳은 것 같다. 이런 박한 평을 읽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분명히 '영화가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네'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 잘 만든 영화다. 찌임새도 있고, 그리 지겹지도 않고, 다들 연기도 잘 하고... 볼 만하다. 영화적으로 가장 큰 소득은 초반부의 영상일 것이다. 보비가 보는 시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보비가 보는 것처럼 촬영, 편집한 것이다. 매우 신선한 시도였고,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라는 장르만이 시도해볼 수 있는 것. 장 도미니크 보비는 책이 출판된 지 딱 10일이 지난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보비에게 경의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