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7일 일요일

실용주의, 레토릭 혹은 현실

"'요즘 왜 이렇게 못하냐?' 뒷말 나오는 새정부". 이는 인터넷 신문 사이트에 등장한 기사 제목이다. 무슨 신문일까? 한겨레? 오마이뉴스? 놀랍게도 오늘 아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확인한 것이다. 자체기사는 아니고 연합신문 기사를 받아서 올린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는 운하 논쟁에서 취한 태도를 봐도 알수 있듯이 무조건 이명박 옹호는 아니었고, 최근 칼럼 등에서도 인수위와 이명방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내보낸 바 있어서 크게 놀랍진 않지만, 눈에 띄는 건 동아일보. 최근 드러나는 각종 악재, 실언에 대해 온 몸을 던져 이명박 수호천사 역을 자임해오던 터이기 때문이다. 그 동아일보마저 이제 경고 신호를 보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직 취임을 하기도 전에 지지도가 8퍼센트 떨어졌다니 그럴만도 한 것인가? 도대체 끊이지 않는 정책 혼란, 실언, 번복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나는 이명박씨를 지지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정권이 바뀌는 것이 갖는 긍정적 의미를 찾으려는 편이고, 또 이왕 당선되었으니 잘 해 줬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당선 후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보면서 새정부의 5년이 심히 걱정스럽다. 문제의 뿌리는 철학 혹은 이데올로기의 부재인 것 같다. 한국 기존의 정치 세력을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 그들은 그런 소모적 이념논쟁을 지양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용주의는 '중도'라는 표현처럼 듣기에 좋고 득표에도 도움이 될 수는 있는 지향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건 곧 좌표없음, 임기응변, 대중주의 등에 잇닿아 있는 말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정권교체'나 '경제살리기'만 외쳐도 충분했지만, 이제 국정전반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향점, 철학이 보여야 하는 것인데, 실용주의는 도대체 예측불가능한 것이다. 인수위가 쏟아내는 각종 정책을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없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 같으면서도, 특정 영역에서는 국가의 강화를 이야기 하고, 영어몰입교육과 경부운하를 같은 정권에서 추진하려는 군거를 알지 못한다. 실용주의의 한계, 허구성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정당과 정치세력들이 그래도 지향점을 분명하고 서로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는 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된다. 어쩌면 그만큼 한국사회가 성숙한 탓일 수도 있다. 80년대는 민주화가 목표였는데, 그건 결국 대통령 직선제라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취 이후 더 이상 목표가 될 수 없었다. 이후 등장했던 정부들도 모두 나름대로 시대적 과제 극복과 기대가 정권 출범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노태우 정부는 직선제, 6공화국, 김영삼은 최초의 문민정부, 정경유착 근절, 과거사 재평가, 김대중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호남세력 중심 정권, 노무은 지역주의, 권위주의 극복, 분권화, 참여민주주의 등을 들 수 있다. 2008년 이명박 출범기가 이전 정부의 시작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것은 어쩌면 과거 숙제처럼 쌓여있던 많은 시대적 과제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는 역설적 상황에 기인한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정책의 내용을 가지고 승부해 볼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는 유권자, 언론, 후보자, 정당들 모두 시대적 과제와 집권 후 정책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를 놓쳤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박한 평가 때문에 '정권교체'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것이다. 행여나 열우당 세력이 재집권할까봐 이명박씨가 무엇을 할 지 묻지도 않고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 묻지마 지지의 결과를 요즘 우리가 매일 매일 목도하고 있다. 정당의 색깔, 이념이란 것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 예를 들어노무현 정권 역시 분명한 철학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한참 모자라고, 오히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차를 몬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 깜박이 비유를 유지한다면 - 좌우깜빡이를 동시에 켜고 (비상상황?) 어디로 운전대를 돌릴 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아닌가? 도대체 영어교육, 대학과 기업 자율, FTA, 운하, 작은정부, 이런 이슈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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